주간동아 381

2003.04.24

누가 뭐래도 “부럽다, 삼성”

돈·조직·브랜드 파워 No.1 질주 계속 … 재계 ‘인재풀’ 이름값 ‘결혼시장’ 최고 대접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3-04-17 13: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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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뭐래도 “부럽다, 삼성”

    삼성 독주 시대가 계속되면서 ‘삼성맨’들을 부러워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LG그룹 계열사에 근무하는 회사원 K씨(27). K씨는 3월 말 대학 동기모임에 다녀온 후로 회사에 대한 불만이 부쩍 많아졌다. 2001년 12월 LG에 입사한 K씨는 입사 후 처음 받게 되는 성과급에 기대가 많았다. 회사 선배들에게 “월급쟁이도 연말연시엔 남부럽지 않다”는 얘기를 들어온 데다, 결혼을 앞두고 있어 목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K씨의 급여통장에 들어온 성과급은 기대와 달리 기본급의 100%에 불과했다. K씨는 “삼성에 입사한 대학 동기들은 대부분 ‘목돈’을 만졌다”며 “꼭 급여가 아니더라도 삼성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K씨의 대학 동기로 삼성전자에서 일하는 L씨(27). L씨의 지난해 수입은 약 4200만원으로 비슷한 시기 대기업에 취업한 친구들에 비해 두 배 가까운 돈을 벌었다. 또래의 전문직 종사자들과 비슷한 임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동창 모임에 나갈 때마다 계산은 항상 L씨의 몫이다. L씨가 2년 남짓한 직장생활을 통해 얻은 결론은 ‘삼성만큼 배울 게 많은 조직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삼성’이란 이름값으로 어느 곳에서나 인정받는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올해로 직장생활 3년째를 맞이한 2명의 대학 동기가 털어놓은 얘기다.

    삼성은 지난 10년 동안 매출액이 8.5배 늘었고, 순이익(25배) 총자산(5.8배)도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엔 사상 최대인 137조원 매출, 15조원 순이익을 기록했다. 주식시장에서의 ‘삼성의 힘’은 또 어떤가. 삼성전자 단일종목이 시가총액의 5분의 1을 차지하며 증시의 흐름을 좌지우지한다.

    “삼성만큼 배울 게 많은 조직은 없다”

    삼성이 이처럼 승승장구하는 사이 대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라이벌이었던 현대는 경영난과 ‘왕자의 난’으로 갈기갈기 찢겼다. 최근 지주회사제도 도입 등으로 주목받고 있는 LG도 아직 삼성과 견주기엔 역부족이고, M&A 위기에 처해 있는 SK는 삼성의 입을 빌리면 ‘수출상품 하나 없는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다. 바야흐로 삼성의 독주 시대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삼성을 둘러싼 주변환경 또한 ‘맑음’ 일색이다. ‘삼성맨’인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현 정권에 입각, ‘가장 먼저, 가장 빠르게 움직인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정보력이 막강한 삼성의 또 다른 ‘안테나’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재계에선 “인사가 모두 삼성 입맛대로 됐다. 재벌개혁의 칼날이 무뎌진 상황에서 가장 큰 수혜자는 삼성이다”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또 검찰인사를 총괄하는 요직인 검찰국장에도 이건희 회장의 처남인 홍석조 검사가 기용됐다. 참여연대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는 어떤 검사든 삼성 관련 수사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처럼 ‘잘나가는’ 삼성에게도 물론 약점은 있다. 4년에 걸쳐 이뤄진 이회장의 차남 재용씨의 편법증여 문제가 바로 그것. 재용씨 문제는 삼성을 언제든 ‘부도덕한 재벌’로 몰아붙일 수 있는 ‘주홍글씨’인 셈이다.

    여하튼 “삼성맨은 좋겠네”라는 질투와 시샘 섞인 샐러리맨들의 푸념은 이래저래 계속될 것 같다. 삼성맨들은 최근 ‘때 아닌 연휴’로 다른 샐러리맨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삼성SDS에 근무하는 김모씨는 5월 초 2박3일 일정으로 부인과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김씨는 5월1일부터 5일까지 닷새간 쉴 수 있다. 삼성이 이른바 ‘샌드위치데이’(휴일 사이에 낀 평일)를 휴무일로 정했기 때문이다.

    5월의 경우 1일 근로자의 날, 3일 토요 휴무일(삼성은 매월 첫째, 셋째 토요일에 쉰다), 4일 일요일, 5일 어린이날이 겹쳐, 샌드위치데이인 2일을 포함하면 삼성맨들은 5월 초 5일간 연휴를 즐길 수 있다. 대기업이 명절 연휴를 제외하고 5일간이나 연휴에 들어가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또 6, 7, 8, 10월에도 각각 3~4일의 ‘황금연휴’가 기다리고 있다.

    삼성은 또 올 하반기 중 주5일 근무제 실시 여부를 검토중이다. 경기 위축으로 다른 대기업들이 죽는소리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은 쉬는 날을 오히려 늘리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여유가 있으면 그럴까?”라는 시샘 섞인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삼성 관계자는 “샌드위치데이에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는 점을 고려했을 뿐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누가 뭐래도 “부럽다, 삼성”

    4년에 걸쳐 이뤄진 이재용씨의 편법증여 논란은 삼성의 ‘아킬레스건’이다. 또 전자 관련 계열사를 제외하면 삼성이 내세울 곳이 있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건희 회장 가족(위)과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삼성의 ‘브랜드 파워’만큼이나 삼성맨의 브랜드 파워도 대단하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삼성맨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는 ‘지적이고 세련된 남성’이다(상자기사 참조). 잡코리아에 따르면 삼성맨들은 ‘결혼시장’에서도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다. 미혼 남녀들은 배우잣감으로 ‘삼성맨’과 ‘전문직 종사자’를 가장 선호했는데 희망 배우자로 ‘대기업 종사자’를 선택한 미혼자 중 61.5%가 삼성맨을 지목하며 뒤를 이은 SK(15.4%), LG(5.2%), 포스코(4.9%) 등을 크게 따돌렸다.

    ‘메이드 인 삼성’ 브랜드는 삼성을 떠나서도 대접받는다. 삼성 출신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받고 시작한다는 의미다. 한 삼성 출신 벤처사업가는 “삼성 출신이라면 사업 아이템이 조금 떨어져도 시장에서 일단 믿어줬다”고 말했다. 현재 삼성전자 삼성SDS 삼성물산 출신 벤처업계 사장만 100여명을 넘는다. 삼성은 이들을 네트워크화해 적극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에서 ‘물먹은’ 퇴직임원들은 주주총회 시즌마다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삼성맨들은 특히 최고경영자(CEO)로 인기가 높다. 삼성OB닷컴(www.samsungob.com) 관계자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헤드헌터들로부터 삼성 출신 임원들을 영입하고 싶다는 문의가 끊이지 않고 들어온다”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에서도 삼성맨은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최근 수년 동안 소니, 후지쓰, GE, 올림푸스 등 내로라하는 다국적기업의 한국법인 CEO를 삼성 출신들이 차지했다. 삼성이 재계의 ‘인재 사관학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급인력 많아 평범한 직원들 열등감도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졸자들이 삼성에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삼성은 대졸 우수 자원을 싹쓸이한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3학년까지 성적이 학과에서 최상위에 속하는 학생들은 4학년 초 삼성 관계자로부터 “삼성에서 일해볼 생각이 있느냐”는 전화를 받는 경우가 많다. 다른 기업이 신입사원을 뽑기 전에 선수치는 것. 삼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학생들은 대부분 ‘학점’이 높다. ‘과수석’급 학생들만 따로 모아 별도의 면접을 거쳐 신입사원을 선발하는 것이다. 면접에 나선 학생들도 “어떻게 내 성적을 알았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상위권 대학의 우수 졸업예정자가 삼성그룹으로 대거 몰리자 재계에선 “삼성이 학교측과 짜고 우수 학생을 모두 뽑아가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기도 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삼성의 신입사원 선발과정을 통과한 삼성맨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도는 비교적 높은 편이다. 삼성그룹 동기들의 유대는 육군사관학교 동기와 비교될 정도라고 한다. 삼성 직원들은 하나같이 “신입사원 교육을 통해 역시 삼성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삼성 신입사원들은 1개월 동안의 합숙을 포함해 6개월에 걸친 교육을 받는데, 이때 전 직원에게 비슷한 가치관을 심어준다. 일종의 세뇌교육인 셈이다. ‘밖에서는 절대로 회사 욕을 안 한다’는 얄미운 삼성맨 이미지도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맺어진 계열사 인맥은 창업 등의 목적으로 회사를 떠난 뒤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룹 전체로 보면 전자 관련 계열사를 제외하고 과연 삼성이 내세울 곳이 있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로 다른 샐러리맨들의 부러움을 사는 곳도 이들 계열사일 뿐이다. 잘나가는 일부 계열사를 제외하면 삼성의 임금 수준은 다른 대기업과 별반 차이가 없다. 삼성맨들도 동종업계의 경쟁사와 비교할 때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임금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삼성 직원들은 삼성의 강점은 “‘조직’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관리의 삼성’에 염증을 느끼는 사원들도 많다. 회사가 스마트카드(신용카드 기능 등을 포함한 사원증)를 나눠주자 “위치 추적 시스템을 추가해 직원들을 감시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돈 게 대표적인 사례. 또 박사 출신 등 고급인력이 많다 보니 평범한(?) 직원들이 느끼는 열등감도 크다. “용 꼬리보다는 뱀 대가리가 낫다”는 자조도 그래서 나온다. 샌드위치데이 휴무 결정에 대해서도 “휴무 토요일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연휴가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하는 직원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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