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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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휘감는 클래식 선율 ‘띵호와’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3-04-16 17: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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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 휘감는 클래식 선율  ‘띵호와’

    윤디 리 내한 독주회 장면. 최초의 중국인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윤디 리는 CF 모델로도 활동하며 중국과 동남아 일대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윤디 리는 저랑 스타일이 많이 다르지만 참 좋아해요. 테크닉이 뛰어나지만 빨리 치려고 하지 않는, 스스로를 절제할 줄 아는 피아니스트죠.” 지난해 10월 모스크바에 있는 피아니스트 임동혁군(19)과 전화로 인터뷰를 할 때다. 임군은 “자신과는 스타일이 다르다”고 전제하면서도 중국계 피아니스트 윤디 리(21)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스승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만나서 윤디 리의 스타일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도 말했다. 인터뷰를 하던 기자가 ‘왜 이렇게 윤디 리에 대해 신경을 쓰는 걸까’ 하고 의아해했을 정도다.

    그러나 그 의구심은 오래지 않아 풀렸다. 윤디 리의 첫 내한 독주회가 열렸던 3월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god의 공연장을 방불케 하는 열기에 휩싸였다. 주로 피아노 전공생인 듯한 10대 소녀들은 윤디 리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열광하며 환호했다. 공연 후 로비에서 벌어진 팬 사인회에서는 몰려든 팬들로 인해 행사가 중단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당시 공연을 주최했던 기획사의 관계자가 “공연기획을 10년 넘게 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을 정도.

    음반사, 연주자들 계속 발굴

    그러나 이 같은 윤디 리의 인기는 중국계 연주자 돌풍의 서막인지도 모른다. 윤디 리에 이어 역시 중국 출신 피아니스트인 헬렌 황(21)과 랑랑(20)이 각기 4월18일과 20일에 호암아트홀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 독주회를 열기 때문. 이들은 윤디 리와 마찬가지로 10대 시절부터 매스컴의 주목을 받은 연주자들이다. 헬렌 황은 불과 12세에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에게 발탁되어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했던 신동.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 못지않은 화려한 데뷔였던 셈이다. 올해로 스무 살을 맞은 랑랑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35곡의 피아노 협주곡과 10회의 독주회 프로그램을 채울 만큼 방대한 레퍼토리의 보유자다. 그는 최근 윤디 리에 이어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계약을 체결했다.

    이들 외에도 줄리아드 음대 강효 교수의 제자인 바이올리니스트 하워드 창, 워너뮤직이 발굴한 12세의 신동 피아니스트 웨슬리 추 등 중국계 연주자들의 등장은 이미 대세가 된 분위기다. 한때 세계무대를 휩쓸었던 유대계, 한국계 연주자들의 자리를 중국계 연주자들이 차지할 날도 멀지 않은 듯싶다. 실제로 줄리아드 음악학교의 중국 출신 학생 수는 해마다 부쩍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미국의 음악 매니지먼트사인 ‘에스크나스 홀트’의 마틴 캠벨 화이트 사장도 최근 “회사에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매니저를 채용해 중국계 연주자 발굴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중국 출신의 연주자, 그것도 피아니스트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의 경우 성악과 현악에서 이뤄낸 성과에 비해 피아노에 있어서만은 세계적인 연주자가 드물다. 바이올린이나 첼로 등 현악기에 비해 피아노 인구가 더 많은 점을 감안해볼 때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라 피아노는 유난히 동양계 연주자에 대한 장벽이 높은 악기다. 음악 관계자들은 “선율미가 강한 한국음악이 현악기의 느낌을 주는 반면 리듬감을 강조하는 중국음악이 피아노와 비슷해서가 아니냐”는 농담 섞인 분석도 하지만, 아무래도 그 이유는 다른 데 있는 듯싶다.

    대륙 휘감는 클래식 선율  ‘띵호와’

    헬렌 황(왼쪽)과 랑랑. 중국계 피아니스트인 두 사람은 각기 4월18일과 20일에 내한 독주회를 한다.

    피아니스트 김주영씨는 “피아노는 현악기에 비해 유럽 문화권만이 가질 수 있는 스타일이나 품격 등을 중시하는 악기다. 이 점을 극복하지 못한 동양인 피아니스트들은 세계무대에 등극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윤디 리 등은 이런 동양인 피아니스트의 핸디캡을 뛰어넘어 완벽에 가깝게 쇼팽을 연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라는 민족적 특징보다는 개개 연주자들의 뛰어난 음악성이 중국계 연주자들의 돌풍을 몰고 온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스타니슬라프 부닌 이후 15년간 우승자를 배출하지 못했던 쇼팽 국제 콩쿠르의 2000년 우승자인 윤디 리의 쇼팽 연주는 테크닉뿐만 아니라 감성적으로도 매력이 넘쳤다.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출반한 그의 쇼팽 데뷔음반은 어느 서양 연주자 못지않게 귀족적이고 우아한, 그러면서도 감정 과잉을 절제한 아름다운 연주로 채워져 있다. 철저하게 쇼팽의 피아니즘을 구현한 그의 연주에 대해서는 쇼팽이 살아 있다 해도 칭찬을 아끼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중국 출신 연주자들의 약진 속에는 불황에 빠진 음반회사들의 몸부림도 숨어 있다. 지난해 세계 음반시장의 총 매출은 7%나 감소해 연 3년째 감소세를 기록했다. 장기불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음반사들이 13억이라는 중국 인구를 새로운 시장으로 개척하기 위한 발판으로 중국 연주자들을 계속 발굴하고 있는 것. 공연기획사인 크레디아의 정재옥 대표는 “중국 인구를 10억으로 잡고 그중 0.1%만 음반을 산다 해도 100만장의 음반을 팔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파바로티 등 세계적 성악가들의 공연이 열리면 1000달러짜리 티켓도 금방 매진될 만큼 클래식 음악에서도 중국 시장의 잠재력은 엄청나다”고 말했다.

    예로부터 중화(中華)주의를 내세우며 문화에서 세계의 중심임을 자처했던 중국. 이들이 이제 13억 인구를 앞세워 음악에서도 세계의 중심에 설 날이 멀지 않은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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