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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노무현의 청와대 비서실

소신내각, 정말 가능할까

커지고 확 바뀐 청와대에 관가 위축 … 고건 총리후보 장관 추천 영향력이 1차 척도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소신내각, 정말 가능할까

소신내각, 정말 가능할까

국무총리 집무실 내부 모습.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선장’과 ‘항해사’에 비유했다(1월18일 KBS TV토론). “항해사가 국정 흐름에 따라 안정되게 갈 것은 가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국무총리에게 내치의 상당부분을 위임해 총리가 소신껏 국정을 운영하도록 하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책임총리제’ 시행은 대통령선거 당시 노당선자의 공약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2월18일 현재 상황은 달라졌다. ‘선장실’이 꽤 커졌다. 항해사는 ‘얼굴 마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국무총리실, ‘역시나’

1월16일 국무총리실 소속 공무원들은 활기찬 발걸음으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회의실에 들어섰다. 이날 회의는 ‘권력분산형 책임총리제’ 세부 추진방안을 총리실이 인수위에 보고하는 자리였다. 노당선자가 책임총리제를 공약해놓은 마당이었으니 총리실측은 기대에 부풀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총리실은 예산처, 법제처, 국정홍보처, 국가보훈처의 장관과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위원회,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비상기획위원회,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위원장 자리에 대해 총리가 실질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총리실은 또 대통령 직속 중앙인사위원회도 총리 휘하로 전환하자고 제안했다.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가 재정, 경제, 교육, 노동 등 경제 및 사회 분야 국정을 책임지도록 하는 안도 보고에 포함돼 있었다. 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장 밑에 차관급 차장직을 신설해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총리실 관계자는 기자에게 “총리와 내각 중심의 국정운영을 구현하기 위한 실천방안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순균 인수위 대변인은 “국무총리 권한을 강화하는 책임총리제는 당선자의 공약”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총리실 보고안에 대해선 “참고자료로 검토하겠다”고만 했다. 인수위측의 냉담한 반응을 접한 뒤 총리실에선 ‘실망감’이 ‘당황스러움’으로 이어졌다. “대통령 권력의 절반을 뚝 떼서 달라”고 ‘불경한’ 제안만 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20여일 뒤인 2월11일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 내정자는 총리실이 ‘꿈’을 확실히 접도록 했다. 문내정자는 “새 정부 조직개편은 가급적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 부처간 업무조정기능을 청와대 수석에서 총리실 국무조정실장에게 넘기고 실장 아래 차관급 차장을 1~2명 두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책임총리제를 실시하겠다고 말해놓은 것도 있으니 인수위측이 총리실내 자리 신설 요구까지 거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일부 간부들은 승진 기회가 늘어 좋아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수위측은 “정부개편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축되는 내각?

청와대 비서진 내정자들의 경력은 공무원들을 놀라게 했다. DJ 정부의 초기 청와대 비서관의 경우 10명은 전 정권에서 유임됐고 22명은 공무원으로 충원됐다. 그러나 2월17일 현재 노무현 정부 청와대의 비서관 내정자 30여명 중 절대 다수는 현직 공무원이 아니다. 내정자 중 절반 정도는 학생운동을 주도한 이들이고 나머지는 민주당 당직자 등이다. 장·차관급 청와대 스태프도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자, 유인태 정무수석 내정자, 문재인 민정수석 내정자, 정찬용 인사보좌관 등 상당수가 민주화운동 경력이 있는 정치인이나 비주류권 교수 출신들로 채워질 예정이다.

소신내각, 정말 가능할까

노무현 정부 첫 내각의 위상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왼쪽).“고건 총리후보에 대해 철저하게 검증하겠다”고 밝힌 한나라당 임인배 의원.

청와대가 양적으로 커짐과 동시에 안정, 보수, 전문성 위주 성향의 공무원 조직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질적 변화’까지 함께 가져온 셈. 관가에선 “커지고 확 바뀐 청와대 앞에서 내각은 일단 위축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노무현정부의 청와대와 내각의 업무 중복이 늘어나는 부분에 대해서도 “우리가 원사이드로 밀릴 것”이라는 게 내각 쪽 의견이다. 기획예산처 한 간부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봤을 때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의 업무영역이 겹치면 ‘당연히’ 청와대가 원하는 쪽으로 일이 추진되게 되어 있다. 중복되는 영역이 많을수록 청와대가 내각을 장악하는 부분은 그만큼 커지고 총리와 장관의 역할은 줄어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초기 노무현 정부의 경우 청와대는 총선을 의식해 ‘개혁’으로 나가고 내각은 따라가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인수위는 “청와대 수석이 부처 업무를 조정하지 못하도록 해서 장관의 자율성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인수위 관계자는 “새로운 청와대 비서 진용이 부작용을 낳을지, 아니면 신임 장관들과 협력해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킬지는 지켜봐야 알 일”이라며 “성급한 평가는 자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금도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에선 노무현 당선자의 인기가 높다. 노당선자는 해수부 장관 시절 능력 위주 다면평가를 시도해 정착시켰다. 업무 방향에 있어서도 ‘관리’보다는 ‘기획’을 중시했으며 기획안이 좋으면 일단 부서장에게 맡겨두고 나중에 책임을 묻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해수부 공무원들은 “일할 맛 난다”는 반응을 보였다. 노당선자는 비슷한 방식으로 부처 장관들을 컨트롤할 공산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수부 조직을 빠른 시일 내 장악해 공무원들의 참여의식을 고취한 것이 해수부에서의 성공요인이었다. 해수부에서 통했던 노당선자의 리더십이 국가경영에서도 그대로 통할까. 인수위 관계자의 말대로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고건 총리후보의 위상과 역할은?

노당선자는 대선 당시 각료 인선에서 총리의 실질적 제청권을 보장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사실 2월25일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진행중인 인수위의 각 부 장관 후보 추천 작업에 고건 총리후보가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느냐 하는 것은 고건 내각의 성격을 가늠할 1차 척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고 총리후보는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어서 장관 추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고건 총리후보는 기자에게 “장관 추천과 관련 인수위측에서 수시로 내게 상의해오고 있으며 곧 노당선자와 함께 최종 인선에 참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총리후보 인사청문회 간사인 한나라당 임인배 의원은 “고 총리후보에 대해 철저하게 검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소속 인사청문위원들은 ‘주간동아’가 보도한 1998년 고건-최병렬 서울시장 후보 간 TV토론 녹화테이프도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기자에게 “생소한 사람 일색인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와 내각에는 통하는 라인이 거의 없다시피 한데 민정계 출신인 고 총리후보가 총리가 되면 여야관계가 원만해지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고 총리후보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경우 “내년 4월 총선에서 원내 1당이 되는 정당에게 총리임명권을 주어 책임총리제를 구현하겠다”는 노당선자의 약속은 주목받을 만하다. 이는 노무현 정부의 초대 총리의 임기가 사실상 내년 4월로 못박히는 것을 의미한다. 취임 때부터 1년 남짓으로 임기를 확정받은 점이 책임총리제 구현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책임총리제는 ‘제왕적 청와대 권력’의 부작용을 해소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지난 대통령선거를 통해 공감대가 이뤄진 정치개혁안 중 하나였다. 없던 일이 될 것인지, 아니면 ‘작은 청와대, 소신 있는 내각’이 실제로 구현될지 주목된다.



주간동아 373호 (p16~18)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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