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3

2003.02.27

이라크戰 찬반 격돌 … 분열하는 유럽

佛·獨 밀착 전쟁 반대 전격 선언 … 벨기에 뺀 나머지 EU 국가 미국 지지 감정싸움 양상

  • 박제균/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 phark@donga.com

    입력2003-02-20 16:0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이라크戰 찬반 격돌 … 분열하는 유럽

    이라크전을 두고 영국과 프랑스, 독일이 상반된 견해를 보이면서 유럽의 분열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라크전 최초의 사상자는 유럽’이라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유럽의 분열은 끝났다.” 지난해 말 유럽연합(EU)이 역사적인 EU 확대에 합의한 뒤 로마노 프로디 EU 집행위원장은 이렇게 선언했다. 그러나 감격에 찬 프로디 위원장의 선언이 있은 지 두 달 만에 유럽이 극심한 분열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 추진에 반대하는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과 영국을 비롯한 전쟁에 찬성하는 국가들 사이의 갈등으로 유럽이 근래 들어 볼 수 없었던 ‘대분열 위기’를 맞고 있는 것.

    2월10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회담 결과로 나온 것이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3국 선언’이다. ‘3국 선언’의 골자는 이라크에 대한 유엔의 무기사찰 강화 및 이라크 전쟁 반대. ‘대(對)이라크 유엔 사찰 실패’를 전쟁의 명분으로 밀어붙이려던 미국과 영국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셈이다.

    회담 내용도 내용이지만, 보다 눈길을 끈 것은 회담 형식이다. 프랑스와 러시아 ‘2국 정상’이 회담한 결과로 나온 것이 ‘3국 선언’이었다. 그 전날 푸틴 대통령이 베를린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를 만났다고는 해도 외교관례상 흔치 않은 일이다. 이 기묘한 회담 형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월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러시아도 미국에 정면으로 반기

    1월22일 프랑스 파리 인근 베르사유에서는 프-독 우호조약(엘리제 조약) 4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2차대전의 적성 관계를 청산한 엘리제 조약 40주년 기념식에서 프랑스와 독일은 그 어느 때보다 밀착한 모습을 보였다. 시라크 대통령과 슈뢰더 총리가 프-독 하원 합동회의를 주재했는가 하면, ‘장관 스와핑(역할 교대)’에까지 합의했다. 물론 합의 내용 중에는 ‘이라크전 반대’도 들어 있었다.



    두 나라의 밀착과 이라크전 반대 합의는 유럽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통합을 이끌어온 두 나라가 ‘이라크전 반대’라는 한목소리를 낸 것은 ‘EU 공동 외교정책 수립’을 목표로 해온 유럽 국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그러나 8일 후 프랑스와 독일은 전혀 예기치 못했던 역습을 받았다. 1월30일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덴마크 포르투갈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EU 회원 및 가입 예정 8개국 정상이 미국과 유럽의 주요 언론을 통해 ‘이라크전 지지’를 기습 선언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와 독일 두 나라와는 물론 EU 의장국인 그리스와도 전혀 협의가 없었다.

    당황한 프랑스와 독일은 “EU 회원 또는 가입 예정 25개국 가운데 8개국은 3분의 1도 안 된다”며 의미를 축소했다. 그러나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폴란드 등 독일과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의 강대국이 모두 참여한 선언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월5일에는 동유럽 10개국이 “이라크가 유엔 결의를 위반했다는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의 유엔 연설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사실상의 이라크전 지지 선언이었다. 불과 열흘 만에 프랑스와 독일 두 나라는 ‘유럽통합의 기관차’에서 ‘유럽의 왕따’로 전락하게 된 셈.

    두 나라가 러시아라는 ‘거인’을 끌어들여 ‘3국 선언’이라는 거창한 합의를 이끌어내려 노심초사한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시라크 대통령이 통상 엘리제 궁에서 국빈을 맞는 관례를 깨고 푸틴 대통령을 맞으러 샤를 드골 공항까지 달려간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2월10일 ‘3국 선언’으로 ‘반격’의 기회를 잡은 프랑스 독일과 벨기에는 같은 날 미국과 터키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요청한 터키 방위계획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터키 방위계획은 이라크전이 발발할 경우 이라크가 미군에 기지를 제공한 터키를 공격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나온 것. 사실상 NATO에 대한 이라크전 협조 요청이었다.

    프랑스 독일 벨기에 세 나라의 거부권 행사로 그렇지 않아도 ‘무용론(無用論)’이 나오던 NATO의 앞날은 더욱 혼미해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도 사실상 NATO를 배제한 채 전쟁을 치렀던 미국은 ‘그렇다면 이번에도 독자적으로 전쟁을 치르겠다’며 다른 NATO 회원국들을 을러대고 있다. 터키의 한 언론은 “NATO가 사담(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저주를 받았다”고 썼다.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이라크 전쟁의 첫번째 사상자는 유럽”이라고 개탄했다.

    유럽이 왜 두 달 만에 이 지경이 됐을까. 우선은 미국의 눈치를 보느냐, 마느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이라크전이라는 ‘발등의 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 3강’의 끝없는 불신과 경쟁, 유럽통합에 대한 시각차에 있다고 유럽 언론들은 분석한다.

    프랑스와 독일은 ‘유럽의 독자성’을 강조하며 유럽통합을 견인해왔다. 그러나 유럽대륙에서 한발 떨어져 있는 영국은 끊임없이 유럽통합에 대해 회의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대서양 건너 미국을 바라다봤다. 윈스턴 처칠이 “영국의 미래는 대서양(미국)에 있다”고 선언한 이후 친미(親美)는 영국의 정치 전통이 됐다. 그런 영국이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동유럽의 약소국가와 서유럽 일부 국가를 꼬드겨 이라크전 찬성 줄에 서게 했다’는 게 프랑스와 독일측 시각이다.

    반면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2월6일자는 유럽 분열은 프랑스의 잘못된 EU 주도권 장악 전략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EU 확대로 유럽 내 주도권 상실을 우려한 프랑스가 프-독 2강구도로 유럽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독일에 밀착했다는 것. 그 결과 다른 유럽국가들의 경계심을 자아냈고, 결국 8개국의 기습 선언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아닌 게 아니라 스페인의 아나 팔라치오 외무장관은 엘리제 조약 40주년 기념식 이후 “프랑스와 독일의 일방적인 밀착은 다른 유럽국가들과의 관계를 해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어떤 분석이 옳은지는 차치하고라도문제는 유럽의 미래다. 이번 파동을 겪으면서 유럽통합을 주도해온 프랑스와 독일이 심각한 내상을 입어 앞으로 유럽을 대표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이라크전 때문에 갈라진 유럽국가의 국민과 언론 사이에도 반목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영국의 대중지 ‘선’은 프랑스 독일과 함께 이라크전 반대 진영에 선 벨기에에 대해 “좀팽이 벨기에인들(the Pipsqueak Belgians)’이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유럽연합 의장국인 그리스는 이 같은 분열상을 해소하기 위해 2월17일 긴급 EU 정상회의를 소집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이상이었던 ‘하나의 유럽’을 향한 길은 멀고도 험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