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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보다 한 수 위, 기문둔갑 아시나요?

1800여년 이어진 ‘위기 관리의 학문’ … 운세·풍수지리·한의학 처방 등 응용범위 넓어

  •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사주보다 한 수 위, 기문둔갑 아시나요?

사주보다 한 수 위, 기문둔갑 아시나요?

기문둔갑의 전맥자인 이기목옹.

입춘절을 맞아 바야흐로 2003년 계미년의 기운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한 2월7일 밤,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어느 허름한 건물의 2층 모임터. ‘청구학당’이라는 간판이 보일 듯 말 듯 걸려 있는 이곳에서 ‘기문둔갑(奇門遁甲)’으로 2003년의 세계운과 우리 국운을 알아보는 행사가 열렸다. 기문둔갑의 스승과 소수의 제자들 사이에서만 매해 입춘절에 은밀히 행해지던 행사로,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스승인 수봉(粹峯) 이기목옹(73)이 “계미년의 연사(年事)와 국운을 풀어보겠다”고 말하자 제자들은 자세를 바로잡고 스승의 입을 주시했다. 미국의 대(對)이라크 전쟁과 북한 핵문제로 전 세계가 들썩거리는 비상시국인지라 실내에는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먼저 천하국(天下局; 세계 전체의 운)을 살펴보면 천자국(天子國)인 미국이 자리한 중궁(中宮)에 ‘서방의 금(金; 유럽을 가리킴)’들이 세력을 다투고 있는 형상이다. 이는 유럽 제국이 같은 서방인 미국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미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이끌어 나가려는 기운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동북 간방에 자리잡은 한국은 상하가 충(沖)하는 궁에 있으니 남북 모두 좌불안석의 형상이라….”

제자들은 약간 뜨악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역대 기문둔갑에서는 천하국을 풀이할 때 중궁의 천자국으로는 항상 중국을 꼽아왔기 때문. 스승은 잠시 풀이를 멈추고 제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미국이 재채기만 해도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독감에 걸리는 세상이 됐으므로 올해부터는 공식적으로 중궁의 천자국을 미국으로 바로잡음을 기문둔갑의 34대 방주의 자격으로 발표한다.”



정치인들에겐 치정의 미학

자상한 선생님처럼 차분하게 설명하던 이옹이 ‘방주’를 말하는 대목에서는 갑자기 분위기를 바꾸는 듯했다. 매의 눈처럼 형형한 안광이 돋보이는 이옹의 얼굴에서는 거스를 수 없는 방주의 위엄이 느껴졌다. 대체 기문둔갑은 무엇이며 그 방주는 어느 정도의 위치일까.

역사적으로 기문둔갑은 정치인들에게는 치정의 미학으로, 군략가에게는 용병의 무경(武經)으로 이용돼왔다. 이를테면 군주는 천문의 변화, 역모 같은 사직의 위험 여부, 국정 방향 등을 기문둔갑을 통해 점쳐왔고 전쟁시에는 병법가들이 적의 동태와 현재 상황을 파악하는 데 기문전법을 사용했던 것.

이러한 기문둔갑은 사람의 사주팔자처럼 특정한 시기를 음양오행으로 치환한 뒤 모두 9개의 궁에 각각 배속해 자신과 상대방의 운을 알아보는 방식으로 돼 있는데, 9개 궁 가운데서도 중앙인 중궁을 어떻게 보느냐가 핵심이다. 난해한 방정식을 푸는 듯한 기문둔갑의 연원은 멀리 태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역사상 우리 민족에 전해 내려온 기문둔갑의 학문적 맥은 고구려 고국천왕대의 재상 을파소(乙巴素)에서 시작됐다는 게 이옹의 설명. 을파소가 ‘청구기문좌우총방(靑邱奇門左右叢坊)’이라는 문파(門派)를 세우고 이의 부속기관으로 ‘태청궁 청구 태학당’이란 교육기관을 개설함으로써 기문둔갑의 중흥조이자 초대 도조(道祖)가 됐다는 것. 을파소는 나라의 인재들을 모아 수천년을 이어 내려온 정통 선도(仙道)인 기문둔갑을 전수했다고 한다.

을파소 이후 1800여년의 역사를 가진 기문둔갑의 맥은 현재의 이옹에 이르기까지 모두 34대의 전맥자에 의해 이어져왔다. 아쉽게도 고구려에 연원을 둔 기문둔갑은 고구려의 멸망과 함께 깊은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 극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만 전해진 까닭에 사주추명학처럼 대중화되지 못했다.

이옹 역시 어린 시절이었던 1940년대 양산 통도사 근처 영취산에 들어가 제32대 방주인 응청진인(凝淸眞人)과 제33대 기봉(奇峯) 선사로부터 5년간 기문둔갑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이때 그는 스승으로부터 34대 방주로 지정돼 ‘홍연전결’이라는 기문둔갑의 요체를 담은 죽간본을 증표로 받았는데, 현재 시중에 기문둔갑서로 유포되고 있는 ‘홍연진결’과는 내용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

사주보다 한 수 위, 기문둔갑 아시나요?

제자들 앞에서 2003년의 세계운과 국운을 기문둔갑으로 풀이하는 이기목옹. 기문둔갑에서는 가로 세로 9개의 궁을 세워놓고 운수를 설명한다(오른쪽).

“영취산 인근에는 입구는 좁은데 안으로 들어가면 9가지 길이 난 천연동굴이 숨어 있어요. 명산이라면 이런 9지 동굴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문파는 그런 동굴만 찾아다녔지요. 당시 사조(응청진인)는 세수가 134세였고, 스승인 기봉 선사는 84세였어요. 저는 기문둔갑을 비롯해 선도를 익히고 있었고 제 위로 불도로 정진하던 사형과 사제도 있었습니다. 6·25전쟁이 나면서 동굴에서 헤어진 후로는 서로 소식이 끊어져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지만요.”

이 무슨 무협소설 같은 얘긴가 싶어 의아한 표정으로 이옹의 얼굴을 바라보니 그는 “이 세상에는 거짓말 같은 참말도 있다”면서 말문을 닫았다. 사실 이옹은 전적으로 산 공부를 해온 ‘외계인’이 아니다. 세속에서 부산대 국문학과를 나와 교사와 소설가로 활동해온 경력이 있고 지금도 틈틈이 한시를 발표하는 문학인이기도 하다.

기문둔갑의 계보는 그렇다 치고 다시 계미년의 국운 진단으로 돌아가자. 이옹은 천하국으로 세계의 대세를 살핀 뒤 본격적으로 한반도국(남·북한)을 짚어 읊어나갔다.

“지역적으로 남한의 국도인 서울이 자리한 궁에 두문(杜門) 유혼(幽魂)이 찾아오므로 앉은뱅이 용쓰듯이 뜻대로 일이 이뤄지지 않는 형상이다. 간사스런 신하가 임금의 무능함을 틈타 전횡하니 세상이 어지럽겠다. 또 북한의 평양이 자리한 궁은 상극(相剋)을 일으키는 지점이라 전쟁 아니면 환란을 의미하는 무시무시한 양상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생문(生門) 복덕(福德)이 찾아오므로 대외적으로 위엄을 보이면서 체제는 유지할 수 있겠다.”

이옹은 마지막으로 남한 자체의 운을 기문둔갑으로 풀어나갔다. 한반도 운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제자들은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이옹의 말을 들었다.

“남한은 역모·저항 등 험난한 기운”

“남한의 운은 패란격이라 할 수 있다. 역모와 위계질서 문란, 피지배계층의 저항 등 험난한 기운이 강하다. 다행히 공식적으로 올해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 옮겨가므로 역모의 기운은 이것으로 해소될 수 있겠으나, 정치 지도자들이 정치적 부조리를 일으킬 경우 국민이 절대 좌시하거나 방관하지 않을 상이다. 제3세력이 나타나 어떠한 행동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남한이 싫어 떠나는 국민들도 적지 않겠다. 경제면으로는 금리나 물가가 안정되지 못하고 널뛰듯이 심하게 요동치겠다. 올 한해는 남한의 재력(財力)이 정체불명의 곳으로 흘러갈 상이니 새 정부의 대외관계를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재력이 춤을 추는 때는 사업에서는 무책이 상책이다. 다만 복권이나 증권 등 횡재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유리할 수 있겠다….”

이옹은 그렇게 말하면서 우울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아주 민감한 몇 대목에 대해서는 기자에게 절대 기사화하지 말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수학공식처럼 엄격한 규칙이 있어 개인의 주관이 개입할 수 없다는 기문둔갑은 예전 소수의 권력층이 누린 비기로서만이 아니라 대중을 위한 ‘위기 관리의 학문’으로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옹이 1970년대부터 서울에 올라와 학당을 열고 현재 여의도 동아문화센터에서 공개 강의를 해오고 있는 것도 기문둔갑을 ‘대중에 봉사하는 학문’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

이옹의 수제자 중 한 사람으로 경희대 사회교육원에서 기문둔갑을 강의하는 손혜림씨는 “기문둔갑은 기업인에게는 물가의 평단법(評斷法)으로 경기를 예측할 수 있게 하고 경영의 지침서가 되어 이익을 구할 수 있게 하며, 일반 대중들에게는 길흉화복을 추단해 생활의 반사경이 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매력 있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기문둔갑은 그 응용 범위가 대단히 넓다는 특징도 있다. 사주명리학보다 더 세밀하게 개인의 운세를 알아낼 수 있고, 명당을 논하는 풍수지리에도 응용할 수 있으며, 한의학의 처방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실제 이옹은 10여년 전 ‘육경정해’ ‘72혈도해’ 등 정밀한 이론을 바탕으로 한 풍수지리서를 세상에 내놓아 그간 사이비가 난무하던 풍수계를 진정시킨 일화로도 유명하다. 제자인 김정진 박사(경희대 한의대 겸임교수)는 “지금도 스승께 풍수지리를 문의하는 유명인들이 적잖은 걸로 알고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옹이 세간에 나와 30여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배출한 제자들은 400여명. 자기 전공 분야에서 기문둔갑을 응용해 일가를 이룬 제자들도 적지 않다. 현재 이옹은 35대 방주로 어떤 제자를 선택할지 고민중이다.



주간동아 373호 (p60~61)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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