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3

2003.02.27

칼 빼든 무신들 ‘권력을 향하여’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3-02-20 14: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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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빼든 무신들       ‘권력을 향하여’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이오? 하면 어찌 정사를 농간한 나 같은 계집을 살려두는 것이오?” 장수 이의방(서인석 분)을 쏘아보며 한껏 목소리를 높이던 무비(김성령 분)가 갑자기 “아유, 어떡해!” 하며 손으로 볼을 감싸쥔다. 의종의 후궁으로 3남9녀를 낳으며 고려를 손아귀에 쥐었던 여인, 무비가 NG 때문에 갑자기 ‘망가지는’ 순간이다. 그러자 주조정실에 앉아 있던 윤창현 PD가 “성령씨, 대사가 너무 길지? 중간에서 한 번 잘라줄게” 하고 지원사격을 한다.

    서인석 이덕화 김성령 등 중견 연기자들에게도 움직임을 최대한 절제한 채 눈빛으로만 연기해야 하는 사극은 만만치 않은 듯싶다.

    사극 ‘무인시대’의 촬영이 한창인 2월11일 수원 KBS 드라마센터 현장이다.

    1층 스튜디오에서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2층의 주조정실에 앉은 윤창현 PD는 연기자 못지않게 바쁘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팔을 휘저으며 장면 하나하나마다 “컷!”과 “큐!”를 외쳐대는 그의 목소리가 화면 속 무인 못지않게 우렁차다. 첫 방송에서 시청률 23.6%를 기록하며 가뿐한 출발을 한 덕일까.

    첫 방송부터 시청률 23% 선전



    고려시대의 무신란을 다룬 ‘무인시대’는 2월8일 1년 6개월에 이르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시청자들은 TV 화면 속에서 재현된 수박희 등 고려시대의 격투기와 칼 대신 쌍도끼, 철퇴 등을 휘두르는 실감나는 액션 연기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첫 회에서 방송된 수박희는 고려시대의 사료를 바탕으로 창작한 것. 제작진은 앞으로도 처용무 바라춤 등 고려의 예술과 연등회 팔관회 등을 드라마 속에서 재현할 예정이다.

    1회 방송에서 대뜸 무신의 반란을 다룬 빠른 전개는 질질 늘어지기 일쑤인 TV 드라마 제작 풍토에 비교해볼 때 신선했다. 반면 몽둥이로 환관의 머리를 때려 죽이는 등 잔혹한 장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아무튼 ‘무인시대’는 첫 방송부터 시청자들의 눈길을 끄는 데에 성공한 셈이다. KBS 드라마 제작국의 안영동 주간은 “첫 야외촬영 때부터 눈이 와 좋은 그림을 만들어주더니 제작발표회 때 또 눈이 왔다. 시작부터 감이 좋았다”고 말했다.

    150부작인 ‘무인시대’는 주요 출연진만 100명이 넘는다. 우선 주인공이 한두 명이 아니다. 무신시대의 권력자인 이의방,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최충헌. 이 5인이 모두 주인공이다. 이의방, 이의민, 정중부 역에는 각각 서인석, 이덕화, 김흥기가 캐스팅되었다. 4월쯤 드라마에 합류하는 경대승과 7월에야 모습을 드러낼 최충헌 역의 연기자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

    “경대승과 최충헌으로 고려중인 연기자들은 몇몇 있습니다. 이 두 역을 염두에 두고 아예 봄 이후의 스케줄을 비워놓은 채 기다리고 있는 연기자도 서넛 된다고 해요.” 윤PD의 귀띔이다.

    첫 방송에 나란히 등장한 서인석과 이덕화는 각기 ‘태조 왕건’의 견훤과 ‘여인천하’의 윤원형으로 열연했던 주인공들. 제작진은 ‘이미 다른 사극의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경력들이 있지만, 이의방과 이의민의 역할에 가장 적합한 배우는 서인석과 이덕화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의방은 한마디로 단순무식한 건달이었죠. 그 단순함을 직설적인 연기로 보여주어야 하는데, 힘으로 밀어붙이는 연기에는 서인석씨가 적역입니다. 반면 이의민은 ‘계림황제’를 자처하며 신라의 부활을 꿈꾸죠. 또 사료에 따르면 이의민은 귀화한 월남 왕자의 5대손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덕화씨는 이런 복잡한 캐릭터를 표출하는 데 능한 연기자입니다. 눈이 깊고 눈꼬리가 올라간 이덕화씨의 눈을 보면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대번에 오거든요.” 안주간의 설명이다.

    정중부 역을 맡은 김흥기 역시 ‘제국의 아침’에서 왕식렴 역을 맡았던 사극의 단골 출연자다. 적지 않은 시청자들은 그를 ‘용의 눈물’의 정도전으로 기억한다. “한 10년 전부터 무신란을 다룬 드라마를 제작한다면, 정중부 역을 김흥기씨에게 맡기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캐스팅을 위해 김흥기씨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대뜸 ‘정중부 역이야?’ 하고 묻더군요.” 윤PD는 ‘장군이자 노회한 전술가였던 정중부 역을 연기할 사람은 김흥기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무인시대’ 제작진이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로 손꼽는 인물은 3대 집권자인 경대승이다. 제작진이 평가하는 경대승은 고뇌하는 인간이자 이상주의자. 그리고 항상 공정했던 최고의 무인. 경대승과 최충헌은 선굵은 장군 스타일보다는 문신을 연상시키는 냉철한 이미지의 배우를 캐스팅할 것이라고.

    기존의 사료들은 왕을 폐위하거나 살해하고 정권을 잡은 무신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씌어진 ‘고려사’는 아예 이들을 역적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무인시대’는 선악의 판단을 배제하고 각 인물들을 ‘삼국지’처럼 개성 있는 영웅들로 그릴 예정이다. 선악의 판단은 시청자의 몫으로 남는다.

    ‘무인시대’는 최충헌의 죽음으로 150부의 막을 내린다. 이후 원나라의 침략과 무신정권의 항전, 그리고 삼별초의 항쟁은 후속 드라마로 그릴 계획이라고. 안주간은 “무신들에게는 부정적인 면도 많았지만 세계 최고의 강대국인 원나라에 마지막 한 명까지 저항했던 삼별초도 무신이었다.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민족의 혼이다”라고 무신시대의 의의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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