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4

2002.12.19

왜 스트라이프 넥타이인가

다른 사람에게 자기 주장을 할 때 권하는 코디 … 눈빛, 손짓 하나도 국민 감동 위한 전략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2-12-11 14:4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왜 스트라이프 넥타이인가

    감색 슈트에 스트라이프 넥타이 차림으로 첫 TV 합동토론회에 나선 세 후보. 비슷한 듯 다른 패션감각을 선보였다.

    11월3일 16대 대통령 선출을 위한 첫 TV 합동토론회. 왼쪽부터 노무현, 권영길, 이회창 후보 순으로 반원형을 그리며 좌석이 배치됐고 그 순서대로 기조연설이 시작됐다. 노무현, 권영길 두 후보는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이회창 후보는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말문을 열었다. 국민들에게 인사를 할 때도 노·권 후보가 “저 노무현” “저 권영길”로 자신의 존재를 좀더 강조하려고 노력한 반면, 이후보는 “5년 전 저는 대선에서 실패했습니다”라는 인사말로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기조연설에서 세 후보의 모습이 차례로 클로즈업됐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을 끈 것은 넥타이였다. 약간의 톤 차이만 있을 뿐 세 후보 모두 깔끔한 감색 슈트와 흰색 계통의 셔츠를 선택했으나 넥타이에서만큼은 조금씩 개성을 드러냈다.

    감색 정장으로 통일, 헤어스타일은 모두 달라

    일단 세 후보뿐만 아니라 사회자까지도 약속이나 한 듯 사선 스트라이프 무늬 넥타이를 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넥타이만 봐도 이날 TV토론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미지21’의 하민회 대표는 “감색 정장과 스트라이프 넥타이는 코디네이션의 정석이다. 감색은 신뢰도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고, 스트라이프 넥타이는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 주장을 할 때 가장 권하는 코디”라고 설명했다. 즉 세 후보가 이번 TV토론에서 남보다 돋보이기보다 ‘정석 플레이’로 점수를 잃지 않겠다는 작전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노후보는 파란색의 블록과 펜슬 스트라이프가 섞인 넥타이를, 이후보는 와인색과 옅은 핑크를 배합한 블록 스트라이프를, 권후보는 노란색이 약간 가미된 은색 바탕에 짙은 두 줄 스트라이프 넥타이를 맸다. 이 사소한 차이를 시청자들은 어떻게 인식했을까.



    사실 세 후보 모두 넥타이를 통해 자신의 장점을 부각하고 약점을 보완하려는 의도가 역력했다. 이후보는 붉은색 계열을 선택함으로써 깔끔한 얼굴에서 풍기는 차가운 느낌과 다른 후보에 비해 나이가 많다는 약점을 가렸고, 노후보는 차가운 느낌의 파란색을 통해 지적인 이미지를 강조했으며, 권후보는 세련된 은회색으로 재야 노동운동가의 투박한 이미지를 보완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이후보는 얼굴에 비해 넥타이 색깔과 무늬가 너무 강해서 토론 중 자꾸 넥타이에 시선이 집중되는 문제가 있었고, 노후보의 파란색은 젊은 감각이긴 했지만 다소 촌스러운 인상을 주었다.

    후보들은 헤어스타일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이후보는 한때 ‘젊음’을 강조하기 위해 검게 염색을 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어 최근 연갈색의 부드러운 머리색깔로 일관하고 있다. 반면 노후보는 숱 많고 뻣뻣한 머리가 고민. 둥글둥글해서 친근감 가는 얼굴이지만 너무 딱딱한 헤어스타일 때문에 투박하고 고집스럽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권후보는 머리색깔이나 안경테가 너무 무거운 느낌이다.

    전문가들의 조언과 훈련 덕분에 이번 토론회에서 후보들 모두 잘 정돈된 외모와 패션감각을 보여주었다. 반면 무언의 언어로 불리는 제스처와 표정 면에서는 여전히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세 후보 가운데 가장 제스처를 잘 활용하는 쪽은 노후보. 손을 앞으로 내미는 자세를 자주 취하는데 이때 손바닥을 보이는 것이 포인트. 손바닥을 보여주거나 가슴에 손을 얹고 이야기하는 자세는 ‘진실성’을 강조할 때 자주 쓰인다. 노후보는 2시간 내내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 공격적이고 당당한 이미지를 보여주었으나, 막바지에 이르러 피로감을 느낀 듯 뒤로 젖히는 자세를 취해 마이너스 효과를 냈다.



    이후보는 가볍게 주먹을 쥐거나 손을 둥글게 모으는 듯한 자세를 활용한다. 침착하고 나직하게 말하다 때때로 “합시다”는 말과 함께 주먹을 살짝 내미는 제스처가 잘 어울린다는 촌평. 그러나 손이 책상 위에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해서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권후보는 재야운동가 출신답게 제스처가 가장 큰 편. 양손을 깍지껴서 세우는 듯한 자세-결합을 의미-를 자주 취하며 강조하는 부분에서 손이 어깨 높이 이상으로 올라간다. 훈련된 자세라기보다 평소 성실한 모습 그대로인 듯하나 세련된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권후보는 외양적 이미지를 계산하기보다 토론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인상이었는데 마음이 급해진 중후반 무렵 펜을 쥔 손을 내밀거나 흔드는 실수도 있었다. 시선 처리 면에서 이후보는 여전히 눈을 너무 자주 깜빡인다는 지적이 나왔고, 노후보는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편이었다. 권후보는 몇 차례 곁눈질을 해서 TV 경험이 적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김병원 포항대 교수(언어교육)는 “TV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말과 제스처가 합쳐져 상승효과를 낸다. 노후보가 설득적인 표정과 몸짓을 가장 잘 활용한 편이라면, 이후보의 제스처는 감성을 울리기에 부족했고 자꾸 메모를 읽으려는 버릇이 나타났다. 권후보는 호소력은 강했지만 공격적인 인상을 주었다”고 총평했다. 이미지21의 하민회 대표는 “이번 토론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은 유머감각”이라고 지적했다. “이후보는 예전에 비해 웃음과 여유를 보여주려 노력했지만 표정이 확실치 않아서 문제였고, 노후보는 언제나 웃고 있는 듯한 얼굴이 오히려 역효과였다. 권후보는 표정관리까지 신경 쓸 틈이 없어 보였다. 토론 내용으로 승부를 가리기 어려웠다면 도중에 한두 차례 ‘와’ 하고 웃음이 터져나올 만큼 촌철살인의 유머감각을 발휘한 후보가 단연 돋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세 후보 모두 점수를 따기보다 실점하지 않는 데 신경을 썼다.”

    김병원 교수는 “결과적으로 국민이 세 후보의 속내까지 들여다보기에 부족했던 토론이었다”고 말한다. “기계적으로 준비된 질문과 답변을 하기에 바빴고 질문과 주장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서툴렀다. 질문하는 시간에 정견 발표를 하다 시간을 놓쳐버리기 일쑤였다. 세 후보 모두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시종 자기 주장만 하는 스타일이라 하겠다. 또 번번이 제한시간을 초과하고도 개의치 않는 듯한 모습은 당당한 게 아니라 뻔뻔스러워 보였다. 후보 중 어느 누구도 ‘미안하다’는 표현을 쓴 적이 없다.”

    한 전문가는 토론을 관전할 때 후보의 혀가 꼬이는 부분만 유심히 관찰하라고 말한다. 말을 더듬는 것은 후보가 심리적으로 불안정할 때, 속으로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이 변명을 해야 할 때 자주 나타나는 실수다. 어쨌든 세 후보는 첫 TV 합동토론회에서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실패했다. 토론회 직후 한국갤럽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토론회를 보고 지지후보를 바꿨다는 응답은 3.4%에 불과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