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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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는 權 띄우고 盧는 權 외면

‘2강1약’ 토론회 정치 언어학적 분석 … 치밀한 작전 속 상대후보 지칭 횟수로 차별화 노려

  • 최윤선/ 영산대학교 교수 cys@ysu.ac.kr

    입력2002-12-11 1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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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는 權 띄우고 盧는 權 외면

    12월3일 TV 합동토론회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는 민주당 노무현, 민노당 권영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왼쪽부터).

    대통령후보들의 첫번째 TV 합동토론이 12월3일 열렸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합동토론이 예상만큼 표심의 변화에 큰 영향은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박빙의 승부에선 토론을 통해 단 1%의 유권자가 지지 후보를 바꾸더라도 당락이 바뀔 수 있다. 따라서 후보들은 남은 TV 합동토론에 전력을 다할 것이다.

    이후보가 4배 이상 더 權후보 지칭 매우 주목

    합동토론의 언어 분석에서 드러난 세 후보의 전략은 저마다 달랐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단독토론과 마찬가지 전략을 구사했다. ‘개성 억제’와 ‘연성화’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전략이 달라졌다. 이전까지 단독토론에서 보여주었던 도전적 이미지 대신 이후보와 마찬가지로 연성화를 택했다. 이, 노 두 후보는 모두 민노당 권영길 후보를 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권후보는 자신이 다른 두 후보와 차별되는 존재라는 것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정치 언술에서 핵심의 하나는 상대에 대한 지칭이다. 이때 선택되는 지칭어는 단순히 대상을 지시하는 일차적 의미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복합적 효과를 생산해내기 때문이다. 1차 합동토론에서 각 후보자별로 누가, 누구를, 그리고 얼마나 지칭하였는지를 살펴본 결과 이회창 후보는 노무현 후보를 30회, 권영길 후보를 16회 지칭했다. 노후보는 이후보를 20회, 권후보를 4회 지칭하였다. 권후보는 이후보를 24회, 노후보를 16회 지칭하였다. 이때 주요한 차이는 당선 가능한 2강 후보 대 1약 후보 사이에서 보여진다. 2강 후보의 경우 둘 다 1약인 권후보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언급하는 횟수가 적었다. 이는 비록 상대 후보를 비판하는 내용이라 할지라도 상대를 언급하는 순간부터 자신이 그와 동등한 지위에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인하는 결과를 낳게 되어, 자신이 누리고 있는 비교우위적 위치를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보가 노후보에 비해 권후보를 4배 이상 더 많이 지칭했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이후보는 상대적으로 토론 과정에서 권후보의 존재를 부각시키려고 했고, 노후보는 상대적으로 권후보를 왜소화하려고 한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반면 권후보의 경우는 자신보다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두 후보를 맹렬히 공격하였다. 상대에 대한 공격을 통하여 자신도 2강 후보자와 대등한, 선택할 만한 후보자라는 점을 유권자들에게 부각시키려는 전략이라 하겠다.



    정당과 연관된 지칭을 살펴보면, 노후보는 공격 상대로 한나라당(11), 야당(3)을 설정하였다(“5년 전에도 무슨 공작기관에서 만들어낸 문서를 가지고 상대방 후보를 공격했던 전력을 우리 이회창 후보가 가지고 계시죠. 한나라당에서 옛날부터 공작정치 하고 공안정치 하고 이런 것 하던 전문가들이 몇 분 있는가 봅니다.”). 이에 반해 이회창 후보의 공격은 좀더 광범위하다. 민주당(3), 여당(2), 김대중 정부(2), 김대중 대통령(1), 김대중 정권(1), 이 정권(5), 현 정권(1) 등과 같이 다양한 명칭을 사용하여 전방위적 공격을 하고 있다(“그러나 여러분, 이 정권은 그 사이에 권력, 부패, 비리로 온 국민을 실망시키고 좌절시켰습니다. 이제 이러한 정치로, 이러한 모양으로 다음 시대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이제 정권교체를 해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이후보는 민주당이나 노후보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보다는 현 정권을 강도 높게 공격하면서 한나라당이 기치로 내걸고 있는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李는 權 띄우고 盧는 權 외면

    TV 합동토론에 참여한 후보들이 측근과 전략을 토의하는 등 토론 준비를 하고 있다.

    전반적인 어휘 사용에 있어서는 2강과 1약 사이의 차이가 2강 사이에서보다 더 두드러졌다. 우선 권후보의 어휘는 재벌, 노동자, 농민, 서민 등과 같이 계층적 표현이 두드러진다(“국민 여러분! 이제 노동자, 농민, 서민이 정치의 주체로 일어서야 됩니다. 재벌 아들 재벌 되고, 장관 아들 장관 되고, 의사 아들 의사 되는데, 노동자 아들 노동자 되고, 농민 아들 농민 되는 이 세상, 저 권영길이 바꾸겠습니다.”). 반면 2강 후보의 경우는 ‘국민’이라는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표현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정 계층에 기반을 둔 부분적 지지로는 당선이 불가능하므로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최대한으로 넓히기 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적 언술 전략을 사용한 것이다. 결국 이것은 당선 가능성이 큰 후보와 당선 가능성이 작은 후보 사이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차이다.

    2강 사이의 차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후보의 경우 현 정권의 부정부패에 대한 질타를 통해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데에 주력한 결과 부정부패(13)라는 용어의 사용 빈도가 노후보에 비해 두드러지게 많은 반면, 노후보의 경우는 새로운 정치를 강조하는 새로운(4), 깨끗한(3) 정당 및 정치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전체적인 관점에서는 이회창-노무현 후보 사이의 부정적인 공방이 토론의 주를 이루었다. 질문시간 1분, 답변시간 1분30초, 그리고 추가 질의와 답변 각각 1분씩과 같은 제한적인 토론방식 속에서 심도 깊은 정책토론이나 검증이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또한 2강 후보는 자신의 정책에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질문을 통하여 타 후보와의 긍정적 차별화를 노리기보다는 타 후보의 약점을 극대화하는 부정적 차별화 전략을 우선시하였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권영길 후보의 어부지리였다. “정치개혁을 논하고 있는 자리에서 이회창 후보, 노무현 후보께서 아까부터 주제와 관련 없는 것을 서로 질문하고 계시는데 정치개혁의 장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여러 차례 제가 토론을 건설적으로 좀 진행합시다고 두 후보께 제안을 해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저는 부패척결을 위한 방안을 하나 제시하겠습니다. 오늘 거듭거듭 건설적 대안을 요구하고 있는데 대안은 안 나오고 있습니다.” 등과 같이 그는 2강 후보 사이에서 벌어지는 소모적 상호비판의 틈새를 파고들어 자신이야말로 구체적이고 건설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는 후보라는 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카메라 전면 위치 權후보가 가장 자연스런 느낌

    TV는 아주 작은 소리나 어투, 얼굴의 작은 경련, 눈 깜박이는 버릇, 말 더듬는 실수 따위를 확대경을 통해 보듯이 전달해준다. 대중 집회에서 대통령후보에게 두 손을 높이 치켜들고, 주요 대목에서는 목청을 돋우는 식의 과장된 자기표현이 필요했다면, TV 브라운관상에서는 ‘확대’를 염두에 둔 절제된 제스처, 음성, 표정이 요구되는 것이다.

    12월3일 TV 토론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 후보는 권영길 후보였다. 이는 권후보의 좌석이 추첨에 의해 가운데에 위치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기인한다. 그는 사회자 및 카메라와 정면으로 위치하여 TV화면의 중앙에서 시청자들과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면서 발언할 수 있었다. 반면 측면의 두 후보의 경우 카메라와 상대 후보를 번갈아보며 답변하게 되어 중요한 순간에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던 것으로 보인다.

    노후보의 경우 진행에 있어서 미숙함을 보였다. 토론 방식에 거북해하는 표정이 간혹 눈에 띄기도 했다. 또한 노후보는 자신이 발언할 순서에 이르면 약 2~3초간 시간적 공백을 두는 일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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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민주당, 민노당 관계자들(왼쪽부터)이 TV 합동토론을 보면서 소속 정당 후보가 발언할 때 박수를 치는 등 성원하고 있다.

    반면 이후보는 상대적으로 자연스러움을 유지한 것으로 평가된다. 진행에 있어서도 “노무현 후보께 또 여쭤보겠습니다. (웃음) 좀 이제 부드럽게 하지요.”와 같이 말하며 토론의 완급 조절도 해나갔다. 그렇지만 하나의 답변을 끝내자마자 다음 답변을 준비하기 위해 빨리 고개를 숙이는 부자연스러운 장면이 간혹 화면에 잡히기도 했다.

    후보들이 자신이 속한 당의 정치적 자산과 부채를 어느 정도 승계하느냐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에 따라 언어 전략의 큰 부분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노후보 진영의 원칙적 입장은 이해득실을 넘어 자산과 부채를 모두 승계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원칙에 그치고 있으며, 실제로는 노후보와 민주당 사이의 눈에 띄는 연대를 피함으로써 승계하기 어려운 부채는 최소화한다는 언어 전략을 세운 듯하다. 이러한 전략은 12월3일의 합동토론에서 노후보가 자신이 속한 당을 지칭하는 언술 속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분석 결과 한나라당 후보와 민주당 후보의 차이를 확연히 발견할 수 있었다. 이후보는 한나라당(5회)이라는 당명보다는 우리 당(7), 저희 당(4), 우리 야당(5)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후보자 자신과 당과의 정체성이 일치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저나 저희 당의 통일 방안은 역대 정부의 공식 통일 방안인 3단계 통일방안….”). 또한 한나라당이라는 당명을 쓴 경우에도 우리 한나라당(2), 저희 한나라당(1)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당과의 일체감을 지속적으로 나타내고 있다(“저 이회창과 저희 한나라당이 새롭게 변화해가는….”). 반면 노후보는 우리 당(5)이라는 표현보다는 민주당(10)이라는 표현을 두 배 이상 더 많이 사용했다. 소속당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자 한 것이다. 민주당 앞에 우리라는 표현이 붙은 경우는 단 1회밖에 없었다.

    후보 개성 없이 정치 환경에만 초점 맞춰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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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TV 합동토론은 지지율 변화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당이 언급되는 문맥 역시 두 후보 사이에 차이가 뚜렷하다. 이후보의 경우는 당과 후보와의 정책적 일치를 강조하기 위한 언급이 주류를 이루었다(“특검제에 대한 저나 우리 당의 입장은 항상 일관돼 있습니다. 저희는 부패방지위원회에서도 특검제를 두어서….”) 반면 노후보의 경우는 당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민주당이 신장개업 부패당이라고 하는데 신장개업해서 5년 정도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 국민들께 참 송구스럽습니다. 그래서 이제 부패사업은 폐업하기로 하고 사장도 바꾸고 해서 새로 이제 깨끗한 정당으로 다시 잘하려고 합니다.”). 권후보의 경우는 표면적으로는 노후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한 번도 우리 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민주노동당(13)이라는 공식 명칭만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는 유권자들에게 민주노동당을 각인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노후보의 ‘민주당과 거리 두기’와는 완전히 다른 전략의 결과다.

    첫번째 토론이 끝난 뒤 최대의 수혜자는 권영길 후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이는 권후보 개인의 언술적 능력에 기인한 바도 있지만, 2강의 상호 비방과 공격 속에서 운신의 폭이 상대적으로 넓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결과 당선 가능성이 작은 후보로서 누릴 수 있는 상대적 차별화를 효과적으로 이루어낼 수 있었다.

    노무현 후보의 경우 1차 토론이 성공적이라고 평하기는 어렵다. 이는 그의 개인적인 실수라기보다는 노후보 진영의 최근 대선 언술 전략의 변화에 기인한 것으로 여겨진다. 노후보는 후보등록일 직전 여론조사 결과 1위 후보일 뿐더러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와 연대해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정대표의 지지자들을 끌어안아야 할 상황이다. 여기에는 도전적 이미지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연성화로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후보는 변화한 전략을 수행하는 모습이 어색했다. 앞으로 두 번 남은 토론에서 적절한 언술의 톤을 찾아내는 것이 노후보의 중요한 당면 과제가 됐다.

    이회창 후보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과거 토론에서 나타난 어색해 보이는 모습도 사라졌다. 이전의 개별 TV 토론에서 한나라당으로 일관되었던 우리의 지시 대상을 이번 토론에서는 균형 있게 국민적 차원으로 확산시켜 정치적 대표성과 정당성의 범위를 확장하였다. 개별 TV토론에서부터 설정한 개성 억제, 연성화 전략이 부동층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날 토론에서 각 후보들이 한 ‘말’은 결국 선거에서 그들의 위치, 그들을 둘러싼 정치 환경 등의 산물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각 후보 진영에서 전략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평가는 결국 유권자의 몫이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점은 후보자의 전략 수행 능력에 있다. 전략이 아무리 훌륭해도 후보자가 그 전략을 충분히 소화해내지 못하면 역효과가 난다.

    이 점에서 본다면 이번 합동토론은 지나치게 후보 개인의 개성을 죽이고, 후보를 둘러싼 정치 환경에만 초점을 맞췄다. 토론의 효과는 언어 전략과 후보의 개성이 잘 조화를 이루어 후보가 선거 전략을 잘 소화해낼 때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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