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0

2002.11.21

‘선거판 풍경’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닮은꼴

  • 입력2002-11-14 12: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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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판 풍경’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닮은꼴
    “유세장의 참석자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형님댁에 몸소 찾아와 인사드리는 사람들, 형님을 연단까지 호위하여 인도하는 사람들, 그리고 항상 형님 주변에서 형님을 보위하는 사람들이 그에 해당됩니다.”

    “공약을 내걸었을 때 불이행의 위기를 겪게 되는 상황은 매우 불확실하고, 먼 훗날의 일이며, 아주 미미한 경우에 해당됩니다. 오히려 거절하는 경우 백발백중 당장에 적이 생기며 그 숫자도 무시 못할 정도입니다.”

    기원전 64년 로마 최고의 관직인 집정관 선거를 앞두고 동생 퀸투스가 형 마르쿠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이다. 이 편지에서 퀸투스는 정치 신인인 형이 어떻게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인지 구체적인 득표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후대 경세가들에게 보내는 로마인의 편지’(굿인포메이션 펴냄)는 키케로 형제가 주고받은 편지다. 먼저 동생이 형에게 ‘선거전략’을 조언하고, 5년 뒤 형이 아시아 속주의 총독으로 재임중인 동생에게 ‘국가경영론’을 적어 보냈다.

    100쪽이 채 안 되는 이 작고 얇은 책이 흥미를 끄는 이유는, 2000년 전 로마 집정관 선거 풍경이 오늘날 한국의 선거판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력한 후보의 주위에 으레 사람들이 몰려든다. 하지만 이들은 다른 유력한 후보에게도 똑같이 지지를 표명한다. 당신이 후보라면 이중적인 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퀸투스는 “상대의 의중을 명확히 꿰뚫되 절대로 그 사실을 아는 척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것이 지지자들을 확실한 ‘내 사람’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과거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는 자신을 지지하는 것이 은혜를 갚을 마지막 기회임을 인식시키고, 수시로 오늘의 인연이 훗날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하는 계기임을 강조해 일종의 ‘보상’을 암시하는 것도 대중의 환심을 사는 좋은 방법이다.

    퀸투스가 형에게 강조한 내용들-지지자들을 확실한 내 사람으로 만드는 여섯 가지 방법, 유권자들의 표심을 불러일으키는 세 가지, 유권자의 마음을 빼앗는 일곱 가지 등-은 오늘날 선거에 적용해도 손색이 없다. 그렇다면 퀸투스가 2000년 뒤를 내다보았단 말인가. 그것은 지연과 학연에 얽매이고,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한국의 정치 현실이 2000년 전 로마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씁쓸한 현실을 의미한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이 책의 얄팍한 ‘선거전략’ 부분에만 머물지 말고, 청렴하고 이성적인 지도자의 자질을 강조한 키케로의 ‘국가경영론’까지 탐독하기를 바란다. 형 마르쿠스는 총독인 동생에게 이렇게 신신당부한다.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맡겨진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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