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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 마이클 앱티드 감독의 ‘이너프’

바람피우고 마누라 패고 … 혼 좀 나야겠군

  • 김시무/ 영화평론가 kimseemoo@hanmail.net

바람피우고 마누라 패고 … 혼 좀 나야겠군

바람피우고 마누라 패고 … 혼 좀 나야겠군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있다. 법을 집행하는 입장에 있는 검찰도 예외는 아닌 듯싶다. 우리나라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법치국가임을 자부해온 미국 땅에서도 법보다는 주먹에 의존하는 관행은 근절되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행복의 보금자리인 가정에서까지.

하긴 법이 존재하는 이유도 주먹의 논리에 맞서기 위함이 아니던가. 마이클 앱티드 감독의 최신작 ‘이너프’는 가정에서의 폭력을 다룬 영화다. 주인공은 지금 인기 절정기를 구가하고 있는 제니퍼 로페즈. 이 매력적인 여배우가 매맞는 아내 역으로 나온다.

뭇 남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글래머 스타 제니퍼 로페즈가 매맞는 아내로 나온다니, 이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리 영화지만 천만불짜리 미소를 지닌 여인이 남편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는 설정은 좀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만약 이 영화가 진지하게 사회문제를 다루는 휴먼 드라마였다면, 굳이 제니퍼 로페즈를 주연으로 캐스팅하지 않았을 것이다. 할리우드가 어떤 곳인가? 현실의 폭력을 스크린 속의 액션으로 미화시키는 데 남다른 기술을 축적해놓고 있는 꿈의 공장이 아니던가? 제니퍼 로페즈가 매맞는 아내로 나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결국 폭력적 남편을 제압해야 하는 ‘미션 임파서블’이 그녀에게 주어진 지상 과제였기 때문이다.

‘이너프’는 참으로 관습에 충실한 영화다. 주인공이 평온한 상태에서 위기국면으로 접어들었다가 마침내 다시 평온한 상태를 회복하는 관습적 내러티브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스토리를 펼쳐가는 과정이 자못 흥미롭다. 할리우드는 필요에 따라서 적절하게 어떤 때는 한 여성을 신데렐라로 만들기도 했다가 또 어떤 때는 여전사로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틀에 박힌 여성 캐릭터를 한데 버무린 듯한 영화가 바로 ‘이너프’다.

바람피우고 마누라 패고 … 혼 좀 나야겠군
이 영화는 액션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표나게 반전의 효과를 지향하는 스토리는 아니기 때문에 줄거리를 좀더 소상하게 살펴본다고 해서 흥미가 반감되지는 않을 듯싶다. 주인공 슬림(제니퍼 로페즈)과 그녀의 단짝친구 지니(줄리엣 루이스)는 웨이트리스다. 언뜻 페미니즘을 표방한 전투적 여성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연상시키는 인물설정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날 그들이 일하는 카페에 그야말로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난다. 일찌감치 점지당한 슬림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에 의해서 결국 ‘왕비’로 간택된다. 이상이 영화의 도입부 내용이다. 이 모든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두 사람의 연애, 결혼식에 이어 어여쁜 딸아이의 출산에 이르기까지.

행복하게 보이는 가정에 불운을 몰고 온 것은 남편의 불륜이다. 남편의 외도 증거를 포착했으니 이제 갈라서야 하는가? 그런데 용서를 빌고 또 빌어도 시원찮을 마당에 남편은 폭력으로 사태를 진압하기에 이른다. 외도를 묵인하고 조용히 가정이나 지키든가 아니면 매를 맞고 입 닥치고 있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거다. 그야말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다. 이후 이 여걸이 절망적 사태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충분히 짐작될 것이다.

우리는 ‘이너프’를 보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우선 불륜의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무척이나 생경하다는 점이다. 나는 불륜을 소재로 다룬 영화를 신물이 날 만큼 많이 보았지만 이 영화 속 남자처럼 뻔뻔한 인간은 본 적이 없다.

보통은 불륜을 들킨 쪽이 쥐구멍을 찾게 마련인데, 이 경우는 아니었다. 불륜이 들통나면 곧 파경으로 이어졌고, 또 그런 식으로 그린 다른 영화들만을 물리도록 보아왔다. 당장 최근 개봉한 변영주 감독의 ‘밀애’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폭력으로 파경을 봉합하는 것은 일종의 ‘파격’이다. 그토록 많은 가정들이 겉으로 평온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숱한 가부장적 남성들의 무소불위의 폭력행사 탓일 것이다. 영화 ‘이너프’는 바로 그 점을 제대로 포착하고 있었다. 물론 그러한 사태를 해결해가는 방식은 이미 지적했듯이 지극히 할리우드적이다. 그래서 현실성이 떨어진다. 현실의 폭력문제를 스크린상의 액션으로 치환한 결과물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또 한 가지는 과연 법이 만능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이 영화는 나름대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날아오는 남편의 주먹 앞에서 법원이 발부한 ‘아내에게 50m 접근금지’라는 명령서는 휴지 조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안은 하나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요즘 미국이 대 테러전에 임할 때 금과옥조로 삼고 있는 것이기도 해서 좀 섬뜩하지만, 영화적 결말로는 제격이라 하겠다. 그렇다. 현실에서가 아닌 영화 속에서라면 폭력적 대안도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주간동아 360호 (p86~87)

김시무/ 영화평론가 kimseem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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