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4

2002.10.10

‘바미안 석불’ 디지털로 다시 살았다

세계 최초 3차원 입체영상으로 복원… “실물 복원 참고 활용 아프간에 자료 제공”

  • 박진호 / 디지털복원 전문가·숙명여대 강사 arkology@chol.com

    입력2002-10-04 14: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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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미안 석불’ 디지털로 다시 살았다

    3차원 디지털 영상으로 복원한 바미안 석불. 이전에 잘려나간 팔다리와 얼굴 부분까지

    지난해 3월12일 미국 CNN 방송은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이 폭약으로 바미안 대석불을 산산조각 내버리는 순간을 방영했다. 탈레반의 야만성에 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던 사건이었다. 당시 전 세계는 1500년 전에 조각된 석불을 파괴한 것은 문화에 대한 중대한 범죄행위라고 비난했지만 한 쌍의 거대한 석불은 흔적만 겨우 남긴 채 사라진 뒤였다.

    바미안 석불은 아프가니스탄 내전 이전까지만 해도 다리와 얼굴 부분이 조금씩 훼손됐지만 몸체 대부분은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탈레반의 만행으로 석불은 한 트럭분의 모랫가루로 변해버린 것이다. ‘신은 하나뿐이므로 조각상이 숭배될 수는 없다’는 것이 탈레반의 지도자 무함마드 오마르가 밝힌 바미안 석불의 파괴 이유였다.

    ‘바미안 석불’ 디지털로 다시 살았다

    컴퓨터에서 디지털 복원 작업중인 모습

    바미안은 인도에 접해 있을 뿐 아니라 이란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교통의 요지로 세계 최대 불교유적지 중 하나다. 산 절벽 1.2km에 걸쳐 1000여 군데의 석굴이 뚫려 있는데 석굴마다 크고 작은 불상이 빽빽이 산재해 있다.

    이중 탈레반의 만행으로 인해 사라지고 만 바미안 대석불은 서기 2세기부터 5세기 사이인 쿠샨 왕조 때 완성됐다. 두 입상 중 하나인 서쪽 불상은 53m, 동쪽 불상은 38m에 달하는 규모다. 과거부터 대석불로 불렸던 53m 불상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입불상이다.

    불상 얼굴 유추 원형 그대로



    그러나 바미안 석불의 문화사적 가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입불상이라는 데에만 있지 않다. 이 불상은 웅장한 간다라 불교미술의 절정기에 만들어져 헬레니즘 양식의 영향을 받은 수작이다. 특히 아프간에 불교가 융성했던 6, 7세기경에는 바위 속에서 울리는 신비스러운 설교를 듣기 위해 중국과 인도의 신도들이 운집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50cm가 넘는 비공(鼻孔)을 통해 울려 퍼진 설교는 외경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바미안 석불은 신라 구법승들의 성지로 손꼽히는 장소이기도 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도 바미안 석불을 방문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8세기경부터 이슬람의 지배하에 들어간 바미안 석불은 그 당시 이미 얼굴이 훼손되고, 다시 13세기에 이곳을 침략한 몽고의 칭기즈칸 군대에 의해 팔·다리까지 잘려나갔다. 그때부터 다시 800년이 지난 지금 그나마 온전한 모습을 지켜온 바미안 석불이 형체도 없이 파괴돼버린 것이다.

    바미안 석불의 양식은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의 키질 석굴과 중국의 돈황·운강·용문 석굴로 이어졌고 우리나라 초기 불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번에 필자가 바미안 석불을 디지털로 복원한 것은 바미안 석불이 석굴암 본존불을 비롯한 우리 문화재에 끼친 영향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바미안 석불을 3차원 입체영상으로 복원하는 작업은 지난해 바미안 석불이 파괴된 직후부터 시작됐다. 1년 가량 자료를 수집한 후, 올해 봄부터 본격적인 복원에 들어가 9월에 디지털 복원작업을 마쳤다.

    ‘바미안 석불’ 디지털로 다시 살았다

    길이 1.2km인 바미안 계곡 양쪽에 서대불(53m)과 동대불(38m)이 서 있다.

    사실 바미안 석불에 대한 자료라고 해봐야 ‘대당서역기’나 ‘왕오천축국전’에 나와 있는 기록들과 탈레반이 파괴하기 전 촬영한 석불 사진이 전부였다. 완벽한 복원작업을 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자료였다. 그러나 일본 교토대학의 구마모토 쇼신 교수(미술사학과)가 작성해놓은 정교한 실측도면은 정밀 복원작업에 큰 도움이 됐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잘려나간 석불의 팔다리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바미안 석불’ 디지털로 다시 살았다

    석불과 함께 복원한 바미안 천장 벽화

    가장 큰 문제는 8세기 전후 이슬람 세력에 의해 떨어져나간 얼굴 부분이었다. 얼굴에 대해서는 결정적인 자료를 찾을 수 없어 결국 바미안이 간다라 후기 불상인 점을 감안해 서구 미술사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불상의 얼굴을 유추해 완성하는 데에 만족해야 했다.

    물론 그동안 유럽 학자들도 가상공간상에서 바미안 석불의 복원을 시도해왔다. 그러나 대부분 사진에 근거한 부정확한 복원이었다. 때문에 탈레반 이전에 파괴되었던 얼굴과 팔, 다리는 손댈 수조차 없었다. 이에 비해 이번 복원은 4∼5세기 당시 처음 만들어졌던 바미안 석불을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본다.

    가상현실 기법으로 관람도 가능

    세계인들은 1년 전 미국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어이없이 무너진 대참사를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이 세계무역센터 빌딩 폭파 6개월 전에 일어난 바미안 동·서 대불의 파괴는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파괴를 예고하는 거대한 문화적 테러였다. 쌍둥이 빌딩 파괴가 문명국가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라면, 바미안 석불 파괴는 찬란한 고대문화에 대한 테러 행위였다.

    현재 미국은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파괴된 빌딩과 같은 규모의 건물을 재건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바미안 석불의 재건은 현재 아무런 진전이 없다. 빌딩의 재건도 중요하지만 파괴된 문화와 유적의 잔해를 복원해 찬란한 문화의 황금기를 일궜던 바미안 지역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인류에게 부과된 진정한 과제가 아닐까.

    현재 실측자료와 최신 도판을 바탕으로 한 3차원 디지털 데이터는 완성된 상태이니 만큼, 이를 바탕으로 해서 바미안 대불의 축소모형을 만들 수 있다. 3차원 데이터와 바미안 축소모형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복원된 바미안 석불을 상설 영상관에서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기법을 이용해 관람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가상현실 기법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바미안 석불의 구석구석을 마치 아프간 현지에서 보는 것과 똑같이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모든 작업의 최종 목적은 아프간 정부가 바미안 석불을 실제 복원할 때 참고자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필자는 바미안 석불의 3차원 디지털 복원 데이터와 축소모형, 그리고 가상현실 영상자료를 아프간 정부에 제공할 계획이다. 이 같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해서 인류의 값진 유산, 바미안 석불이 사이버 공간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제 모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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