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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드름 사냥 나선 ‘은발의 벤처’

64세 박규직·이성낙 사장… 피부관리 화장품 시장 돌풍 ‘쉰세대 매운맛’

  •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여드름 사냥 나선 ‘은발의 벤처’

여드름 사냥 나선 ‘은발의 벤처’
‘Dr. eslee’(닥터 에슬리). 요즘 피부과 의원을 찾는 사람들은 환자 대기실이나 진료실 뒤편의 진열장에서 이런 문구가 쓰인 화장품을 쉽게 볼 수 있다. 전국 540여개 피부과 클리닉 중 이 화장품을 공급받는 의원만 400여 군데. 연고처럼 생긴 것에서 스킨류까지, 꼭 의약품처럼 생겼지만 분명 화장품이다. 사실 의약분업 상황에서 의약품이라면 의원에 있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환자를 치료하는 의원에 화장품이 진열된 이유는 뭘까?

‘Dr. eslee’는 의료 벤처기업 아주메딕스(www.dreslee.com)가 생산해낸 여드름성 피부관리용 화장품. 지난 2000년 5월 출시된 이 화장품은 그러나 기존 화장품 시장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출시 후 탁월한 여드름 제거 효과가 알려지면서 각 클리닉에서 주문이 쇄도하고 있고, 2000년 7월 여드름 제거 효과와 신기술 개발의 공을 인정받아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우수 벤처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일반인들에겐 알려진 바 없다. 여드름 치료를 위해 병·의원을 찾은 환자들이 개인적으로 구매하려 해도 직접 판매를 하지 않는다. 광고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직 수출과 피부과 의원 판매용으로만 공급된다.

경영과 연구로 나눠 사업진행 척척

여드름 사냥 나선 ‘은발의 벤처’
2000년 3월 벤처 등록 후 2년 만에 프랑스와 미국에 현지 법인이 세워졌고, 매출도 2000년 6억원에서 2001년 16억원, 2002년 30억원(목표치)으로 급신장세에 있다. 제품 종류도 세안제에서부터 스킨, 에센스, 샴푸 등 10여 가지. 지난해 증자에는 피부과 전문의들이 대규모로 참여해 일반인이 끼어들 기회도 없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유망한 벤처기업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60대를 훌쩍 넘은 할아버지들이라는 점. 물론 자신들은 할아버지라는 호칭에 반감(?)을 표시하지만 분명 손자 손녀가 있는 할아버지들이다. 두 명의 CE0 중 경영을 맡고 있는 박규직 사장(64)은 이 회사 성장의 산 증인으로, 현대건설의 중역을 두루 거쳤으며 현대 엘리베이터 사장으로 30년간의 그룹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전문경영인 출신. 지난 96년 현대그룹을 떠난 뒤 공기업 ㈜한성의 대표이사로 재직하다 경기대 경제학과 겸임교수를 지냈다. 연구 부분을 맡은 이성낙 사장(64)은 현재 아주대병원 피부과 교수로 정년을 1년 남긴 원로 학자. 독일에서 교수 자격을 취득하고, 연세대 의대 주임교수와 아주대 의대 의료원장과 의무부총장을 지낸 이씨는 피부과학회의 원로 회원이자 큰 스승이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이제 은퇴를 준비해야 할 노년의 전문가들이 뒤늦게 벤처회사를 열고 화장품 사업을 시작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 출발한다. 38년생 보성고 동기동창으로 평소 등산을 즐기던 두 친구는 지난 99년 초 청계산으로 등산을 갔다. 돌부리에 채여 멍이 든 박사장이 무언가를 상처 부위에 바르는 것을 본 이교수가 ‘그게 뭐냐’고 묻자 박사장은 “이거 어성초라는 약초인데, 애 엄마가 피멍에 바르면 좋다고 해서 바르기도 하고 먹기도 하지”라고 답했다. 며칠 후 신기하게도 피멍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본 이교수는 크게 놀라 바로 실험실로 그 약초를 가져와 실험에 들어가는 한편, 관련 책자를 뒤지기 시작했다.

어성초(漁腥草). 물고기 비린내가 나는 풀이라는 뜻으로, 동의보감에도 염증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약초로 알려져 있다. “피멍을 풀어준다면 혈전을 녹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인데….” 궁금증을 풀기 위해 실험에 들어간 이교수는 뜻하지 않게 어성초가 염증치료 효능뿐 아니라 지방을 녹이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성초를 쇠고기 기름과 섞었더니 커피나 시금치, 키위 등 기름을 녹이는 현상이 있다고 알려진 식품보다 훨씬 높은 지방분해 효과를 보인 것.

“세균과 지방을 함께 제거한다?” 이교수는 여기에서 여드름을 떠올렸다. 여드름은 바로 피지(피부에 낀 지방)와 여드름균이 만들어내는 골칫덩어리. 그렇다면 어성초가 여드름 제거에도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 여기에 생각이 미친 이교수는 어성초에 자신이 개발한 고유물질을 첨가해 여드름 화장품 ‘Dr. eslee’를 개발한다. 이때가 2000년 초.

여드름 제거에 효과가 있다는 세계 유수의 국내외 화장품과 여드름균(아크네균)에 대한 항생제 감수성 검사를 실시한 결과, 대부분의 제품들은 효력이 거의 없거나 미미한 반면 ‘Dr.eslee’는 탁월한 항균 효과(4~20배 이상)를 나타냈다. 결국 이교수는 벤처 설립을 결심한다. 뒤처리는 모두 박사장의 몫. 전문경영인이었던 박사장은 직원 한 명 없이 일사천리로 법인 설립과 등기, 영업 등 모든 일을 혼자 처리했다.

“판단과 지시만 하던 대기업의 CEO에서 모든 것을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소규모 벤처의 사장으로 급전직하했지만 후배들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대충 할 수가 없더군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신기술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벤처정신을 보여주고 싶었죠.” 박사장은 젊은 시절 해외 개척에 나섰던 경험을 살려 이교수의 발명을 상품화하고, 버젓한 벤처기업으로 키워놓았다.

문제는 판매시장. 사실 출시만 하면 기존 여드름 화장품 시장을 석권하고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지만, 그들은 고민 끝에 직판을 포기했다. “후배 의사와 연구자들이 개발한 화장품을 꺾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피부과 전문의들과 수출용으로만 판매하기로 했죠. 우린 돈이 목적이 아니라 벤처정신이 우리 옛것에 대한 호기심과 노력의 산물이란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이교수와 박사장은 최근 벤처 몰락의 이유를 ‘신물질’만 찾고, 세계 최첨단만 향해 가는 ‘미래주의의 거품’이라고 진단한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얼마든지 세계를 석권할 수 있는 벤처 소재가 널려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 그들은 실제로 어성초뿐 아니라 또 다른 천연물질로 개발한 무자극성 샴푸를 개발해 시판에 나서는 등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온고지신’(溫故之新). “옛것 속에 새로움이 있고, 그 속에서 세계 최고의 상품이 나온다”고 주장하는 이 열혈 할아버지들은 자신들에게 펼쳐진 제2의 인생, ‘벤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 2000년 네팔의 안나푸르나봉 등정에 이어 올 여름 알프스 산맥 종주에 도전한다. 그것도 아주 싼 인터넷 여행사의 싸구려 상품을 통해.



주간동아 341호 (p52~53)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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