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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영화평|‘비포 나잇 폴스’

혁명 격동기… ‘동성애 작가’의 고뇌

  • < 김시무/ 영화평론가 > kimseemoo@hanmail.net

혁명 격동기… ‘동성애 작가’의 고뇌

혁명 격동기… ‘동성애 작가’의 고뇌
줄리앙 슈나벨이라는 이름은 조금 낯설다. 그러나 그가 뉴욕 출신의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를 모델로 한 영화 ‘바스키아’(1996년)로 데뷔한 감독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바스키아’는 슈나벨 자신이 각본을 쓰고 가수 데이비드 보위, 개성파 배우 게리 올드먼, 미국 뉴시네마의 기수였던 데니스 호퍼 등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지만 국내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것은 슈나벨이 실존인물을 모델로 삼아 적절히 미화하고 극화해 감동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 정통 할리우드 방식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 방식을 그대로 따른 영화라면 러셀 크로가 열연한 ‘뷰티풀 마인드’를 꼽을 수 있겠다.

‘바스키아’는 회화적 구도가 아주 돋보인다. 그것은 감독 자신이 이전에 화가로 활동한 경력이 있어 영화에 독특한 색채를 부여했기 때문.

혁명 격동기… ‘동성애 작가’의 고뇌
슈나벨은 두 번째 작품 ‘비포 나잇 폴스’(2000년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에서도 ‘바스키아’처럼 한 예술가의 인생 행로를 지극히 사실적인 기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전작의 주인공은 화가였고, 이번 작품은 소설가가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영화의 분위기는 아주 다르다. 전작이 전위예술의 도시 뉴욕을 배경으로 27세로 요절한 천재화가의 좌충우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이번 작품은 쿠바 혁명이라는 격동기를 거치면서 성의 정체성 문제로 체제와 충돌하는 한 작가의 고뇌를 심도 있게 그리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때묻지 않은 자연을 배경으로 화자의 음성(내레이션)이 마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들린다. 카메라는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여주면서 바람의 존재를 깨닫게 하고, 작은 빗방울이 모여 시냇물을 이루고 바다로 흘러 거친 파도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하찮게 보이는 존재의 중요성을 암시한다.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주인공 소년 레이날도 아레나스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쿠바의 변두리 오리엔테 지방에 도착한다. 이곳은 주인공이 작가로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줬다. ‘천재는 자연의 산물’이라는 칸트의 명제를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카메라는 이 아이가 대지의 정기를 머금고 자라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혁명 격동기… ‘동성애 작가’의 고뇌
레이날도는 일찍이 시적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타고난 농사꾼인 할아버지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결국 가출을 감행한다. 그때는 마침 카스트로가 이끄는 반란군이 쿠바의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막 혁명정부를 수립한 시기였다.

혁명의 열기에 고무된 레이날도(하비에르 바르뎀 분)는 아바나대학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작가수업을 받는다. 소설 공모에 당선된 그는 첫 소설집까지 출간하지만 전혀 예기치 못했던 곳에서 삶의 전기를 맞게 된다. 최초의 혼란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확인하면서 다가왔다. 더 큰 문제는 쿠바 혁명정부가 사회악을 일소한다는 명분 아래 동성애를 반혁명적 행동으로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

이 때문에 그는 정치적 팜플렛이나 선전과는 무관한, 지극히 자연주의적 순수를 작품 주제로 다뤘지만 반체제 인사로 분류된다. 결국 영화는 성의 정체성에서 성의 정치학이라는 첨예한 주제 사이를 부단히 넘나들게 된다. 그 투쟁의 한복판에 있는 것은 작가의 정신세계가 아닌 작가의 몸.

혁명 격동기… ‘동성애 작가’의 고뇌
레이날도의 수감생활을 묘사한 영화의 절정부는 특히 흥미롭다. 이 대목에서 할리우드 톱스타 조니 뎁이 깜짝 캐릭터로 두 번씩이나 출연해 무겁게 짓누르는 주제의식에서 벗어나 잠시 긴장을 풀어주기도 한다. 작가가 쓴 원고 뭉치를 감추어 외부로 유출시키는 여장 동성애자 봉봉과 동성애 성향을 은폐한 채 혁명과업에 복무중인 젊은 장교 빅터라는 일인 이역을 조니 뎁이 맡았다.

혹자는 영화 ‘비포 나잇 폴스’가 미국인의 시각에서 쿠바 카스트로 정권의 부정적 측면을 너무 강조한 것 아니냐고 따질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미 제국주의’에 반기를 들며 다윗과 골리앗의 투쟁을 펼치고 있는 카스트로의 입장에서 보면 영화의 편향성이 특히 두드러져 보이긴 한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이 영화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작품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가장 비정치적으로 보이는, 사적 영역인 인간의 몸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정치적 압박이기 때문이다. 나는 “신체의 자유를 억압하는 어떤 혁명적 대의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슈나벨 감독의 주장에 공감한다.





주간동아 340호 (p80~81)

< 김시무/ 영화평론가 > kimseem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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