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7

2002.06.06

암보다 더 무서운 ‘공공의 적’비만

국민 5명 중 1명 ‘주의 필요한 상태’… 협심증 등 정상인보다 사망률 90%나 높아

  • < 신상호/ 아주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

    입력2004-10-08 16: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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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보다 더 무서운 ‘공공의 적’비만
    거리를 걷다 보면 살집이 퉁퉁한 사람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들 대부분은 체지방이 정상치를 웃도는 비만 환자다. 마치 신종 전염병이라도 되는 듯, 비만이라는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셈.

    살 좀 찐 것 가지고 뭐 그리 호들갑이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만이 암보다 치료가 어렵다면? 비만이 암보다 수명을 더 단축시킨다면? ‘설마’ 하겠지만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비만증의 5년 이내 치료율이 10% 이하인 반면, 암 발생 후 5년 평균 완치율은 30%에 이르기 때문이다. 또 암이 정복될 경우 인간의 평균수명은 2년 연장되는 데 비해, 비만증이 없어진다면 수명이 무려 7년 이상 연장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실제로 비만한 사람의 사망률은 정상체중의 사람보다 90%나 높다. 체질량지수(BMI) 40 이상의 병적인 비만일 때 사망률은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 겨울 협심증으로 숨진 민씨(56)의 사망원인은 궁극적으로 비만이었다. 165cm의 키에 93kg이나 되는 거구였던 그는 평소 고혈압과 동맥경화를 앓았다. 지병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음식을 가려먹는 등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역부족. 지난해 추석 무렵, 가슴이 벌어지는 것 같은 통증에 응급실을 찾았다. 진단 결과는 협심증. 동맥경화가 악화되면서 체지방이 심장에 영양과 산소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을 막아 심장근육이 빈혈상태에 빠졌던 것이다. 퇴원 후 체지방 감량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자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처럼 비만인 사람은 심장병으로 사망할 확률이 정상체중인 사람에 비해 60%나 더 높다. 암에 걸릴 확률도 남성 33%, 여성은 55%나 증가한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성기능 장애 등 수많은 질병들이 호시탐탐 비만인의 생명을 노리고 있다.



    암보다 더 무서운 ‘공공의 적’비만
    비단 질병뿐만이 아니다. 비만에서 벗어나려는 노력도 지나치면 사망을 부르기 쉽다. 카펜터스의 카렌 카펜터가 대표적인 경우. 듀오 카펜터스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카렌은 1975년 거식증으로 가수 활동을 접어야만 했다. 매력적인 아내가 되기 위해 조금씩 음식을 거부하던 것이 병으로 발전한 것. 카렌은 재활원에 드나들고 새 음반을 내는 등 거식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8년 만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암보다 더 무서운 ‘공공의 적’비만
    문제는 체중에 대한 집착이 직업과 연령을 초월해 나타난다는 점이다. 지난 1월 부산에서 사망한 주부 강씨(41)의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강씨의 남편은 ‘“아내는 전혀 뚱뚱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녀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강씨는 살 빼는 데 효과적이라는 한약을 남몰래 복용하고 있었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피부가 노랗게 변하는 등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입원했지만 일주일 만에 독성 간염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자기 만족을 위해 함부로 살을 빼다 악재를 만난 것.

    강씨처럼 자신의 현재 몸상태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 종종 음식을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거식증으로 이어진다. 거식증은 정신질환 중 사망률이 가장 높아 정신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중 무려 5%가 이 증상으로 목숨을 잃는다.

    지난해 6월, 시체로 발견돼 가족을 비탄에 빠지게 한 선씨(22) 역시 거식증으로 사망했다. 미용학원 강사였던 그녀는 습관적인 구토와 변비약 복용으로 3년간 20kg를 감량했다. 덕분에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체중에 대한 강박증은 집착을 넘어 병으로 치달았다. 사망 당시 선씨는 167cm에 42kg, BMI 15를 가까스로 넘는 심각한 저체중이었다. 체중계와 대형거울을 머리맡에 두고 조금이라도 살이 쪘다고 생각되면 억지로 토하기를 반복하다 급기야 탈수에 의한 신부전증으로 사망한 것. 거식증에 걸리면 몸이 극도로 허약해져 감기와 같은 사소한 질병도 종종 폐렴으로 악화되는 등 건강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사고가 났을 때도 뚱뚱한 사람들의 사망률이 훨씬 높다. 미국의 하버뷰 부상예방연구센터 연구팀이 자동차사고 사망률을 조사한 결과, 몸무게가 100~119kg 이상인 사람의 사망률이 60kg 미만인 경우보다 2.5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학자들은 가슴과 복부 쪽에 몰린 지방 때문에 안전벨트의 압박을 더 심하게 받아 사망한 것으로 추정할 뿐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게다가 지나치게 뚱뚱한 사람들은 고혈압이나 당뇨, 동맥경화 등 다른 질병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아 사고의 충격이 일반인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질병과 자신감 상실, 사고 등 비만은 모든 상황에서 인간의 수명을 재촉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매년 50만명 가량이 비만으로 인해 사망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다르지 않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개한 2000년도 건강검진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 5명 중 1명이 ‘주의가 필요한 비만상태’이며, 이는 혈압이나 간기능 장애보다 건강에 더 위협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각종 암을 비롯해 뇌혈관 질환, 관상동맥 질환 등 건강과 삶의 질을 위협하는 거의 모든 질환의 원인으로 비만이 꼽히는 이상, 이제 비만은 생활의 경계대상 1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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