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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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 대학이 돌아왔다

예술 관련 6개 대학 캠퍼스 잇따라 개설… 연극·공연 등 산 교육과 접목 ‘효과 만점’

  •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입력2004-10-08 15: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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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로에 대학이 돌아왔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는 시답잖은 농담처럼 대학로에는 대학이 없다. 과거 서울대 문리대가 자리잡고 있어 ‘대학로’라 불렸던 동숭동과 혜화동 일대는 서울대가 관악 캠퍼스로 이주한 후 한동안 주인 없는 거리였다. ‘연극과 공연예술의 거리’라는 별칭을 갖고 있었지만 예술보다는 상업성이 판친다는 비난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부터 대학로에 조금씩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대학로에 대학들이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주로 공연예술, 연극, 디자인 등 예술 관련 학과가 있는 학교들이 대학로에 분교 형태로 캠퍼스를 개설하고 있다. 현재 대학로에 들어온 학교는 상명대 중앙대 동덕여대 한성대 국민대 홍익대 등 6개 대학이다. 여기에 더해 인근의 성균관대와 한국방송대까지 합치면 8개 대학이 대학로 주변에 위치한 셈이다.

    대학로에 대학이 돌아왔다
    대학로에서 가장 먼저 강의를 시작한 학교는 상명대다. 상명대는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인근의 학산기술도서관 건물을 인수해 ‘예술·디자인대학원’을 이곳으로 이주했다. 지난해 3월부터 강의를 시작해 벌써 세 학기째를 맞는다. 현재 연극 영화 사진 시각디자인 등 9개 학과의 13개 전공 대학원 과정이 개설되어 있다. 상명대 예술·디자인대학원의 조준영 대학원장은 대학로 캠퍼스에 대해 “단점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이다”고 말했다.

    “순수학문만 강조했던 과거의 대학과 요즘의 대학은 다릅니다. 저희는 실용학문을 대중과 공유하겠다는 목적으로 대학로에 왔습니다. 학생 입장에서도 바로 공연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대학로는 산 교육의 현장이라 생각합니다. 이곳에 오니 학생과 교수 모두 활력을 찾은 것 같습니다.”

    대학로에 대학이 돌아왔다
    상명대 인근에 위치한 동덕여대의 공연예술센터는 대학로에 들어선 캠퍼스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다. 지하 5층, 지상 8층 규모의 공연예술센터는 동덕여대가 4년의 시간과 2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완공한 건물. 방송연예 실용음악 무용의 3개 과가 이용하는 공연예술센터에는 450석 규모의 극장을 비롯해 스튜디오, 소극장, 연습실, 합주실 등이 짜임새 있게 들어서 있다. 학부와 대학원을 포함해 650명 정도의 학생들이 이곳을 이용하고 있는데 모두들 방송국을 방불케 하는 첨단시설에 대만족이라고.



    최양묵 공연예술대학장은 공연예술센터 부지로 대학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연기, 공연, 대중음악 등을 한자리에서 아우를 수 있는 곳은 대학로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최학장은 “많은 수의 대학생들이 이곳에 상주함으로써 대학로의 수준을 좀더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고 말했다.

    연극교육의 메카로 손꼽히는 중앙대 역시 지난해 9월 대학로에 공연영상예술원을 개설했다. 현재 연극학과와 영화학과의 전공 수업이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중앙대 학생들이 꼽는 대학로 캠퍼스의 가장 큰 장점은 현장인력으로부터 생생한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점. 배우 박정자씨가 연극학과 겸임교수로 화술을 지도하고 있으며 영화학과에도 인근 충무로의 영화인들이 활발히 오간다. 중앙대 연극학과 동문은 한 제과의 TV 광고에 단체 출연해 받은 출연료 2억5000만원을 공연영상예술원 내의 소극장 건립에 기부하기도 했다.

    대학로에 대학이 돌아왔다
    흔히 대학로 하면 연극을 먼저 떠올리지만 연극 못지않게 디자인 계열의 대학들도 이곳을 많이 찾고 있다. 한성대가 인켈아트센터 건물을 인수해 올해 3월부터 미디어디자인학부의 강의를 시작했고, 홍익대도 한국디자인진흥원 건물을 인수해 홍익대 대학로 캠퍼스를 운영중이다. 한성대 김지현 학부장(미디어디자인)은 대학로에 캠퍼스를 연 이유에 대해 “예술 전공 학생에게는 캠퍼스의 낭만 못지않게 현장의 분위기 체험도 중요한 학습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도심 한가운데에 대학 캠퍼스가 자리잡고 있는 것은 외국에서는 흔한 일이다. 뉴욕대학의 예술대학, 디자인으로 유명한 프랫 인스티튜트, 패션 전문학교인 F.I.T, 샌프란시스코 아트스쿨 등은 모두 대도시 중심부에 있는 건물 한두 개가 캠퍼스의 전부다. 커다란 운동장과 편의시설이 모여 있는 한국식 대학에 익숙한 한국 유학생들은 이 같은 환경에 실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환경 자체도 간접적 학습이 되므로 예술대학은 다양한 사람들과 행사를 접할 수 있는 도심 한가운데에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학들이 대학로를 찾아오면서 소란스럽던 기존의 대학로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 공연기획가 이승훈씨(메타스튜디오 대표)는 “예전에는 대학로를 오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놀러 오는 사람들이었는데 이제는 제법 캠퍼스 같은 느낌이 든다”며 “이들이 무언가를 보여주려면 좀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활력을 주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말했다. 연극평론가 김미도씨 역시 “최근 대학로에 위치한 대학들을 중심으로 심포지엄이나 워크숍, 실험성이 돋보이는 연극 등이 많이 열리고 있다”고 전했다.

    대학로에 대학이 돌아왔다
    물론 대학로 캠퍼스의 문제점도 없지는 않다. 상명대 만화영상과 대학원생인 유문희씨는 “교통이 편하기는 하지만 공간이 너무 좁다. 만화과의 특성상 작업공간이 충분해야 하는데 그런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또 한 조교는 “과거에는 방과후에도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연습이나 워크숍 등을 했는데, 대학로에 온 이후 주변에 ‘놀 곳’이 너무 많다 보니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사라진다”고 말했다. 본교 캠퍼스에 비해 식당 등의 복지시설이 부족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공연기획가 정진현씨(카코스 대표)는 “대학로 문화가 발전하려면 대학이 앞장서서 대학로에 투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학이 보유한 시설을 대여한다든지, 대학과 현장 인력이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학로와 대학이 연합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 정대표는 “외국의 예술대학들은 지역과 함께 여러 프로그램을 공유한다”며 “대학로의 문화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학로와 대학들이 서로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대표의 말처럼 대학로의 대학들은 드디어 대학 바깥의 현장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5월25일부터 6월2일까지 열리는 ‘대학로 문화축제’는 대학로에 위치한 대학들이 주도하는 축제다. 대학이 대학로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 위한 첫번째 실험이 시작된 셈이다.

    과거에 서울대 문리대 학생들이 주도했던 대학로의 낭만은 다분히 아카데믹하고 문학적인 부류였다. 이에 비해 현재의 대학로에 다시 돌아온 대학생들은 예술 지망생들이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시를 읽던’ 과거의 낭만 대신, 미래의 예술가들은 야외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만화 주인공으로 분장하는 ‘코스프레’ 쇼를 펼친다. 이들의 축제가 대학로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대학로는 지금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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