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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중개업’도 아무나 못한다

일부 지역 고참, 압력행사 통해 신참 정보망 접근 봉쇄… 자진폐업 업소 부쩍 늘어

  •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부동산 중개업’도 아무나 못한다

‘부동산 중개업’도 아무나 못한다
노원구 상계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정종철씨는 지난해 말부터 업소 간판에 ‘부동산 중개수수료 50% 할인’이라는 대형 문구를 내걸었다. 서울은 물론 일산 분당 등 아파트 밀집지역마다 법정 수수료 이상을 요구하는 중개업자들과 소비자들 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마당에 오히려 중개수수료를 절반이나 깎아주겠다니? 정씨의 선언은 즉각 인근 부동산 소비자들과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임대차나 매매 물건을 내놓는 소비자들의 발길은 늘어났지만, 반대로 업계에서는 정씨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정씨의 ‘파격세일’에 대해 ‘시장질서를 해치는 덤핑공세’라고 비난하는 주변 업소들이 늘어났고, 급기야 누군가에 의해 업소 유리창이 박살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인터넷의 부동산 관련 사이트마다 ‘정씨를 왕따시켜야 한다’는 선동성 ‘격문’도 나돌았다.

지난 2000년에는 법정 수수료를 인상해야 한다고 정부청사 앞에서 어깨띠까지 둘렀던 정씨가 이런 ‘출혈’을 감수하겠다고 나선 데는 복잡한 사연이 있다. 문제는 99년까지만 해도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단일조직인 전국부동산중개업협회 지회장을 맡았던 정씨가 별도의 조직을 만들기 위해 딴살림을 차리면서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별도의 조직을 만든 뒤부터 그동안 이용해 오던 부동산 정보망 접근이 차단되어 버린 것.

‘부동산 중개업’도 아무나 못한다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각자 확보하고 있는 매물정보를 공유하는 전산망을 통해 공동중개 방식으로 매매 및 임대차 거래를 하고 있다. 이 정보망을 이용하지 못하면 손님이 끊기는 것은 불문가지. 따라서 자체 확보 물량만으로 수요자와 공급자를 동시에 연결해 주는, 이른바 ‘양타’를 해야 하는데 이 비율은 전체 중개물량의 3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는 것. 올려 받아도 시원찮을 중개수수료를 정씨가 50%나 할인해 주겠다고 나선 것도 정상 영업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마지막 방법으로 택한 자구수단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부동산 업계에서는 정씨처럼 정보망 접근을 차단당해 몇 달 만에 자진 폐업하는 업소가 부쩍 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신규 개업하는 중개업소들 사이에 특히 결정적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씨는 “인근 중개업소들이 임의단체인 친목회를 만들어 회원에게만 정보망을 제공하도록 하는 담합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존 중개업소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친목회원이 아닌 중개업소나 신규업자들을 ‘왕따’시키고 있다는 이야기다.

서울 강북 최대의 인구를 가진 대규모 아파트 밀집지역답게 노원구 관내 중개업소는 모두 750여개소에 달한다. 이중 90% 이상이 전국부동산중개업협회 산하 ㈜한국부동산정보통신(이하 한부통)이 운영하는 부동산 정보망을 이용하고 있는 형편(한부통 주장에 따르면 이중 유료회원은 60% 수준). 결국 한부통 정보망을 통해 물건을 공유하지 못하는 업소는 이 지역에서 제대로 영업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노원구 지역에서는 이미 지난해 일부 중개업소들이 한부통 정보망 가입을 신청했으나 인근 중개업소 친목회측의 제지로 가입을 거절당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한 차례 시정명령을 받은 바 있다. 공정위는 조사를 거쳐 노원구 관내 10여개의 중개업소 친목회측이 정보망 사업자에 압력을 넣어 신규회원 가입을 거절하도록 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한부통측은 시정명령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내놓은 상태. 한부통 관계자는 “공정위에 제소한 사람 중에는 사용료 연체 등으로 가입이 취소된 사람도 있다”며 가입 거절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기존 중개업자들의 폐쇄적 태도 때문에 신규 가입자를 잘 받아들이지 않다 보니 정보망 업체들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정보망 사업자들이 대부분 주요 고객인 친목회원들의 실질적 영향력 때문에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중개업소의 담합행위에 보조를 맞춰줄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부동산 중개업소 밀집지역의 경우 소규모 사설정보망 운영업체들은 친목회가 허용하는 업소에만 정보망을 깔아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도 이처럼 서울시내 일부 지역과 신도시 지역에서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담합행위를 하고 있다는 진정과 제소가 잇따르자 중개업자 친목회와 부동산 정보망 운영업체들에 대한 불공정거래를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공정위는 5월15일부터 6월5일까지 분당과 일산 등 신도시 지역에 한해 부동산 거래정보 사업자가 친목회와 결탁해 신규업자의 가입을 거절하거나 이용조건을 차별하는 등의 불공정 거래행위에 대해 조사를 벌인다는 방침. 현장 조사에 나선 공정위 관계자는 “담합행위를 주도한 일부 친목회의 회칙 등을 확보해 놓았다”고 말해 불공정 거래행위를 다수 포착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중개업자는 물론 공정위 관계자들조차 이러한 일제 조사가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우선은 불공정 거래행위에 대한 물증을 잡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 실제 일산 신도시 지역의 한 중개업자는 “전산망 독점에 대해 공정위가 시정명령을 내리면 기존 친목회원들이 군소 사설업체에 주주 형식으로 참여해 운영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단속은 실효성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중개업자는 비회원에 대한 차별을 인정하면서도 이 같은 조치가 업계의 과열 경쟁상태에서 기존 중개업소들의 생존권 수호 차원임을 강조했다.

공정위 관계자 역시 “비회원이 가입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구체적 사례들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고 실토했다. 게다가 분당 일산 신도시 지역의 불공정 거래행위를 위해 투입된 공정위 조사인력은 고작 3명에 불과한 실정.

당연히 신규 중개업자나 친목회 비회원들은 공정위 조사에 대해서도 믿지 않는 분위기다. 일산 지역의 A중개업소 관계자는 “회원가입 거절 사례 등을 녹취하거나 현장 점검을 통해 공정위 조사관들이 직접 불공정 거래행위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데도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며 형식적 조사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공정위 역시 회원가입을 거절당해 ‘왕따’ 상태에 놓인 업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내용증명을 첨부해 제보하겠다고까지 했는데도 이를 거절해 조사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형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일단 일산 분당 등 신도시 지역 조사를 마친 후 추가조사 여부를 판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주간동아 337호 (p62~63)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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