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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씨는 면회도 ‘선발’ 거쳐야…

DJ 정권 실세들 ‘옥살이’ 백태… 홍걸씨는 ‘성경’으로 이희호 여사와 대화

  •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권노갑씨는 면회도 ‘선발’ 거쳐야…

권노갑씨는 면회도 ‘선발’ 거쳐야…
”권력 말기, 실세를 만나려면 서울구치소로….” 서울구치소가 또다시 ‘거물’들의 집합소가 됐다. 김대중 대통령의 3남 홍걸씨를 비롯해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김은성 전 국정원 차장, 이무영 전 경찰청장, 최규선 미래도시환경 대표, 김희완 전 서울시 부시장, 진승현 정현준씨 등 ‘국민의 정부’에서 힘깨나 쓴 인사들이 이곳을 거쳤거나 수감돼 있다. 월드컵이 끝난 뒤 김홍업씨가 이곳에 합류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1997년 당시에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와 홍인길 권노갑씨 등 권력 실세들과 한보사건의 주인공인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이 서울구치소에 ‘집합’함으로써 ‘역사는 돌고 도는 것’임을 입증한 바 있다.

5월24일 경기도 의왕시 포일동 산 18-1 서울구치소 접견자 주차장. 즐비하게 늘어선 고급승용차가 권력화(?)한 구치소의 위상을 대변한다. 교도소 한 관계자는 “정치인이나 기업체 간부, 조직폭력배 등이 많이 수감돼 있는 탓에 고급승용차가 많다”고 귀띔한다. 서울구치소에서 단연 관심을 끄는 인물은 수인번호 3750번의 홍걸씨.

미국 LA에 100만 달러가 넘는 호화주택을 갖고 있는 홍걸씨지만 구치소측이 그에게 제공한 공간은 2.17평. 이 좁은 공간은 홍걸씨에게 육체적 스트레스는 물론 정신적 고통으로 다가올 듯하다. 화장실(좌변기)과 세면대, 그리고 잠자리 및 식당 기능이 공존하는 2.17평짜리 독방을 홍걸씨가 받아들이기란 매우 어려운 일. 이 때문에 홍걸씨는 수감 초기 수시로 고문변호사를 불러 어려움을 토로해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가 머무는 독방은 1997년 현철씨가 수감됐던 방과 불과 네 칸 떨어진 곳. 결국 역사의 수레바퀴는 5년 동안 기껏 4칸의 전진을 허용한 셈이다.

권노갑씨는 면회도 ‘선발’ 거쳐야…
홍걸씨는 찬송가가 합본된 성경을 읽는다. 미결수 신분이라 종교 행사는 참석할 수 없다. 홍걸씨 주변의 한 인사는 “청와대에서 어머니가 성경을 보듯 홍걸씨 역시 성경에 몰입한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이를 “성경을 통한 모자(母子)간의 대화”로 설명했다.



홍걸씨는 생각보다 면회객이 많지 않다.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들은 면회를 올 수 없고, 검찰조사를 받기 위해 구치소를 떠나는 시간도 많다. 수감생활이 일주일이 넘어서면서 홍걸씨는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다고 한다. 동교동계 한 인사는 “홍걸씨가 면회 온 인사로부터 부모님께 옥중 참회편지를 쓰라는 말을 들었고, 곧 편지를 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80년대 초 청주교도소에서 옥중서신으로 가족애를 다진 김대중 대통령이기에 만약 홍걸씨가 옥중서신을 쓴다면 남다른 감회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홍걸씨의 옥바라지를 누가 하는지도 관심사다. 97년 현철씨의 경우엔 부인 김정현씨가 옥바라지를 맡아 매일 아침 15~20분간 면회한 뒤 청와대에 들어가 식사하며 손명순 여사에게 현철씨의 근황을 자세히 전달했다. 그러나 홍걸씨의 부인 임미경씨는 현재 자녀들과 함께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머물고 있어 홍걸씨의 옥중생활을 돌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홍걸씨 부인은 자녀들의 학교문제로 이른 시간 내에 귀국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홍걸씨의 직계가족 외엔 대안이 없는 상태다. 그래서 한때 김홍일 의원의 부인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홍업씨의 부인은 홍업씨 문제로 움직이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의원측은 “필요하다면 할 수도 있지만 아직은 그런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김의원의 경우도 당에서 의원직 사퇴 요구가 나오는 등 전적으로 동생문제에 매달릴 입장은 아니다.

따라서 이여사가 간접적으로 홍걸씨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여사는 홍걸씨가 검찰에 출두한 뒤 변호인인 조석현 변호사를 통해 성경과 속옷을 챙겨 보내는 등 남모르게 옥바라지를 해왔다. 또 자잘한 뒷바라지는 대통령 가족을 보살피는 경호실 가족부에서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홍걸씨의 변론을 맡은 조석현 변호사는 “홍걸씨를 접견할 때마다 이희호 여사가 비서관을 통해 ‘식사 잘해라. 건강하라’는 당부를 전했고, 옷가지와 성경, 잡지를 보내줬다”고 밝혔다. 사실상의 옥바라지는 조변호사가 하고 있는 셈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조변호사는 홍걸씨를 위로해 주고 살펴줄 가족 역할을 하는 게 주임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이여사가 홍걸씨의 면회를 갈지 여부도 관심거리다. 97년 손명순 여사는 감옥에 갇힌 아들에게 여러 차례 면회를 가려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 비서실에서 “영부인이 구치소로 찾아간 전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 여론을 악화시켜 현철씨에게 좋지 않을 수 있다”고 만류해 성사되지 않았다. 당시 손여사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매달려 아들이 보고 싶다며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이여사 역시 여론을 무시하고 섣불리 면회를 갈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가서 보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 아니겠느냐, 그러나 세인의 눈 때문에 어렵지 않겠느냐”고 분위기를 설명했다.

권노갑씨는 면회도 ‘선발’ 거쳐야…
수인번호 3370번의 권노갑 전 고문의 구치소 생활은 분노로 출발했다. 수감 초기 권씨는 분을 이기지 못해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아 얼굴도 시커멓게 타 들어갔고 억울함 때문에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졌었다. 권고문은 김은성 전 차장의 진술은 거짓이라며 진씨의 얼굴도 본 적이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노관규 변호사에 따르면 권고문은 “죽어도 진승현 돈을 받은 적이 없다. 생사람을 가둬도 되는 거냐”고 되풀이해 말하고 있다고 한다.

노변호사는 97년 한보사건 재수사 당시 서울지검 검사로 권씨를 구속한 장본인이다. 노변호사는 권고문이 당시엔 “과연 노정객답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당당했는데 이번엔 전혀 다른 모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권씨는 5월10일경 김태랑 최고의원이 면회 온 뒤부터는 눈에 띄게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김의원은 “이러고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 어차피 벌어진 상황이니 운명으로 받아들여라. 죄가 있고 없고를 떠나, 구속이 김대통령을 돕고 민주당을 살리는 길이라면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현실을 인정하고 수용해라. 이것이 형님의 운명이다”고 조언했다.

권씨는 홍걸씨와 달리 면회객이 많아 측근 이훈평 의원이 면회 일정을 관리하고 있다. 면회를 원하는 의원들과 정치인들은 이의원에게 ‘신고’하고 이의원은 이들 가운데 5명씩 선발해 면회를 신청한다.

법무부 규칙은 미결수의 경우 매일 1회 접견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소장 재량으로 특별접견을 허가하고 있는데, 이를 흔히 특별면회라고 한다. 정식 명칭은 교화접견으로 국회의원의 경우 하루 15분씩 특별면회가 가능하다. 따라서 조를 짤 때 현역의원을 한 명씩 꼭 끼워넣는다. 동교동계 의원들의 대다수가 특별면회 형태로 권씨의 면회를 다녀왔다고 한다.

권 전 고문의 가족은 하루 5분 전후의 일반면회를 하고 있다. 일반면회를 통해 부인과 가족이 속옷, 책 등 자질구레한 옥바라지를 한다. 권씨를 찾아온 면회객들은 “걱정 마십시오. 조만간 풀려날 겁니다” “사실이 아니니 재판에서 진실이 밝혀질 겁니다”고 희망을 주고 있다.

김은성씨와 최규선씨에 대한 권씨의 분노는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최규선씨에 대해서는 노변호사가 권씨에게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느냐”고 묻자 “그놈의 자식 빨리 잘 잘랐다. 사람 보는 눈이 있으니 자른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김은성씨에 대한 분노는 더욱 크다. “화가 삭여지지 않는다. 내가 그놈의 자식을….”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다”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이다.

권노갑씨는 면회도 ‘선발’ 거쳐야…
한편 김은성씨는 구치소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다고 한다. 김씨는 자신의 탄원서가 언론에 공개된 것을 특정세력의 ‘물귀신 작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탄원서가 언론에 공개된 후 옥중에서 ‘저런 사람이 정보기관 책임자였나’라는 소리를 듣게 될까봐 걱정하고 있다. 선처를 받으려고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다 한 것인데 언론이 어디서 빼돌려 공개했다며 몹시 화를 냈다는 것이다. 김씨의 변론을 맡고 있는 임운희 변호사에 따르면, 김씨는 구속 기간이 6개월이 넘었고 다른 사건들과의 형평성으로 보아 풀려날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구치소 내에서 가장 화제를 뿌리는 인물은 당연히 최규선씨다. 최씨는 변호사를 통해 구치소에서 부인과 통화를 시도하고 비밀리에 스칼라피노 교수에게 탄원 내용이 담긴 메모를 내보내려다 두 번이나 적발돼 ‘접견금지’ 징벌을 받았다. 또한 재소자들을 상대로 경제학 강의를 하는 등 구치소 안에서의 기행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권노갑씨는 면회도 ‘선발’ 거쳐야…
최근 구치소 주변에는 묘령의 아가씨 2~3명이 최씨를 면회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구치소 관계자들은 이들의 신분을 놓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씨는 구속 전 서울 강남의 M룸살롱과 R호텔 등을 자주 찾았는데, 최씨와 술자리를 같이한 지인은 “구속 전 하루 걸러 한 번꼴로 술집을 전전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최씨는 깔끔한 평소 성격대로 여전히 구치소 안에서도 옷차림에 신경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걸씨가 구속될 때는 매우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다시 평상심을 찾았다고 한다. 특유의 제스처도 여전해 교도관에게 “수고하십니다”며 히틀러식 인사를 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일반 재소자들과 ‘거물’들의 옥중생활에서 보이는 가장 큰 차이점은 특별면회와 복장이다. 일반 재소자들은 대부분 수의를 입고 검찰에 출두한다. 마약복용 혐의로 구속됐던 황수정씨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실제로 현 정부 들어 권력형 비리에 연루돼 구속된 인사들은 대부분 사복을 입고 검찰과 재판장에 나갔다. 양복을 입었을 경우 왼쪽 깃에 배지 형태의 동그란 비표가 붙는다. 수의는 판검사의 동점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양복을 입고 교도소와 검찰을 오가는 ‘권력 실세’들은 동정심 따위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주간동아 337호 (p54~56)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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