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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철의 실크로드 구상은 착각”

박근혜 대표 “유라시아철도 경의선 아닌 동해선 될 것… 김정일 위원장도 수긍”

  •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DJ 철의 실크로드 구상은 착각”

“DJ 철의 실크로드 구상은 착각”
경의선을 복원해 유라시아철도를 연결하겠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철의 실크로드’ 구상은 착각인가. 김대통령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와 “경의선을 연결해 철의 실크로드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대표는 ‘주간동아’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반도와 유럽을 잇는 유라시아철도는 경의선이 아닌 동해선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대표는 이 같은 입장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도 설명했고, 김위원장은 “우리는 생각이 같다”면서 화답했다는 것이 박대표의 주장이다. 경의선은 북한-중국-몽골을 지나 러시아-유럽과 연결되는 노선이고, 동해선은 한반도 동해안을 따라 곧장 러시아로 연결되는 노선이다.

박근혜 대표는 또한 김위원장과 ‘남-북-러-EU가 참여하는 유라시아철도 실무추진위원회 설립’을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내용에는 ‘중국’이 빠져 있다. 아울러 김위원장은 박대표에게 이산가족 면회소를 동해선 부근에 만들기로 약속했다. 물론 박의원이 한국 정부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 합의의 실효성에 의심이 가기는 하지만, 이 두 가지 합의내용은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생각하는 유라시아철도 노선은 경의선이 아닌 동해선’이라는 박대표 주장에 무게를 실어준다.

그렇다면 이는 보통 일이 아니다. 현재 한국측은 서울에서 휴전선까지 경의선 철로를 새로 놓고, 김대통령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도라산역에 초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표는 철의 실크로드는 거기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박대표 주장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주간동아’는 박대표의 새로운 견해를 중심으로 철의 실크로드 사업을 지금까지와 다른 시각에서 재조명했다.

한국 정부의 철의 실크로드 사업은 2000년 2월 ‘북-러 신우호조약’이 체결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조약에서 러시아는 한국의 철도가 북한 영토를 지나 러시아 시베리아철도와 연결되는 문제에 대해 북한의 동의를 받아준 것이다. 이후 러시아는 북한에 철도부 지사를 설립했다. 또한 올해부터 5억 달러를 들여 북한 동해선 구간 보수공사에 들어간다.



유라시아 철도에 관한 한 북한을 압박해 사업에 끌어들인 쪽은 러시아였다. 중국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러시아는 유라시아철도 노선이 동해선이 되기를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중국 통과 노선인 경의선을 유라시아 노선으로 결정했다. 러시아의 고려인계 텐유리 하원의원측은 “유라시아철도 사업은 러시아의 노력으로 성사된 것이고, 앞으로도 러시아와 북한 간의 협의를 통해서만 진행될 일이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정황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북한 입장

남북정상회담에 참여했던 고위 관계자는 “경의선 연결은 김대통령이 먼저 제의하자 김위원장이 응한 것이다. 이후 장관급회담에서도 ‘공사하라’고 요구하면 북측은 마지못해 대꾸하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북한은 개성공단 개발과 관련해 경의선 연결에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유럽까지 가는 노선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해 동해선으로 이미 결정했다는 얘기가 서울 외교가에서 나오고 있다(철도대 최연해 교수). 이는 북한의 이익과도 일치하는 점이 많기 때문이다. 동해선의 경우 러시아측이 공짜로 노선을 새로 깔아주지만, 경의선은 보수비를 대겠다는 나라가 없다. 동해선의 길이는 경의선의 약 두 배, 즉 북한으로서는 유라시아철도 북한 통과 구간의 통행료 수입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의미다. 경의선 보수공사는 기약이 없다. 그러나 동해선은 ‘즉시 상용화’가 가능하다.

동해선 선호는 북한 군부의 반발도 한 원인이다. 러·한외교협회 러시아측 김영웅 사무국장은 “한국에서 출발해 평양시내 한복판으로 들어오는 열차 콘테이너가 ‘트로이의 목마’로 돌변하는 상황을 북한 군부는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기업 입장

무역업체의 가장 큰 관심사안은 물류비 절감이다. 유라시아철도는 해상운송에 비해 8380km의 수송거리, 10일의 수송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경의선 구간과 동해선 구간 중 더 경쟁력 있는 구간은 어디일까. 일단 경의선 구간은 거리 면에서는 890km 더 짧다. 그러나 국경 통과 절차를 거쳐야 되는 횟수가 더 많다. 중국 베이징 반경 100km의 심한 병목구간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난관.

철도대 최연해 교수는 시베리아철도에 관한 한 국내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아 2001년 민주당과 함께 유라시아철도 방문조사에 나선 적이 있다. 최교수는 “조사 결과 베이징 주변 철도는 한국의 경부선처럼 여객수송 기차가 많아 병목현상이 심했다. 반면 러시아 연해주는 인구밀도가 낮아 병목현상이 없다. 경의선 구간은 동해선보다 거리는 짧지만 수송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최교수는 “수도권 등 전국 물류를 동해선을 통해 유럽까지 보내는 일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유라시아철도는 운송비용이 싸고 운송시간도 짧은 동해선이 경의선보다 더 적합하다”고 밝혔다.

러시아 철도부 체르코 차관은 2001년 초 한국을 방문해 “러시아 통과 구간이 길수록 요금은 더 할인된다. 20톤 컨테이너 1대를 유럽까지 보내는 데 두만강 노선(동해선)은 1000달러, 경의선 노선은 1300달러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DJ 철의 실크로드 구상은 착각”
한국 북한 중국은 표준궤 철로, 러시아 몽골은 광궤 철로를 사용하고 있다. 최교수에 따르면 국제 철도노선의 경우 철로의 궤가 바뀌는 지점이 물류 중심기지가 된다. 유라시아철도가 경의선 노선이 되면 몽골과 국경을 이루는 중국 도시에 물류 중심기지를 내주게 된다. 반면 러시아는 한반도 휴전선까지 동해선에 표준궤와 광궤를 모두 설치하는 철로사업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동해선 유라시아철도의 경우 물류 중심기지는 한반도 휴전선 부근이 되는 것이다.

박근혜 대표측은 ‘동해선 유라시아철도’의 파생적 부가가치와 관련, 최근 두 가지 ‘한반도 발전 비전’안을 만들었다. 첫번째는 남북한 동해선 철도가 만나는 한반도 동해안 휴전선 지역을 중심으로 ‘자유무역도시’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박대표가 운영하는 한러문제연구소의 권영갑 소장은 “북한의 노동력과 남한의 산업설비, 유라시아철도 물류기지, 철도 항구 등 남북한 사회간접자본, 주변 관광지를 결합시키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휴전선 부근은 남북한 주권이 동시에 미치는 곳으로 북한 내 직접 투자의 불안 요인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 남한으로서는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생산설비가 빠져나가는 산업공동화 현상을 막는 대안이 된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표의 두 번째 구상은 동해선 개통을 계기로 ‘연해주 진출 러시’를 불러일으킨다는 계획이다. 동해선이 개통되면 한국 농가들은 연해주에서 생산한 작물을 북한 한국 유럽에 ‘직송’할 수 있게 된다. 동해선 개통과 연해주 진출은 한국 농업이 미국 등 농업대국과도 경쟁해 볼 만한 돌파구가 된다는 것이다. 북한의 식량난도 완전히 해결될 수 있다고 한다.

서울의 러시아무역대표부 보리스 김 대표는 “러시아는 한국 자본의 연해주-시베리아 개발 참여에 호의적이다. 연해주 정부는 ‘연해주 한인 정착촌 건설, 논 20만ha 개발 등 대규모 투자를 해달라’고 한국 정부에 비공개적으로 요청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동해선 연계를 통한 연해주 진출은 ‘농촌 살리기’와 ‘한국경제 도약’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박근혜 대표 캠프에선 이를 ‘뉴 새마을 운동’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유라시아철도는 왜 경의선이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때 그렇게 발표했으니까”라고 답했다. 정부는 경의선 남측 구간을 복원하고 역도 세웠다. 그러나 정부 내에서 ‘경의선 유라시아철도’에 대해 연구하는 기관은 없다. 남북정상회담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한러문제연구소 권소장은 “정부는 ‘경의선=유라시아철도’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해 민족적 과제인 유라시아철도 사업을 잘못 이끌어오고 있다. 기왕 시작했으니 경의선 연결은 마무리하되 경의선을 유라시아철도와 연결시키겠다는 계획은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젠가 경의선으로도 동해선으로도 유럽에 갈 수 있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경의선은 서울과 평양을 철도로 잇는다는 커다란 ‘정치적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사업의 실현 기능성이나 남북한 모두의 국가 이익을 고려했을 때 유라시아철도는 유일하게 동해선뿐이며 동해선 개통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 박대표측 결론이다.



주간동아 337호 (p12~13)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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