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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누런 황하가 언제나 맑아질까

  • < 박효종 / 서울대 교수 ·정치학 >

누런 황하가 언제나 맑아질까

누런 황하가 언제나 맑아질까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말이 가까워지자 대통령 주변에서 부패 스캔들이 한꺼번에 터지고 있다. 왜 그럴까. 레임덕 현상으로 더 이상 비리를 덮을 힘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비리가 일정 수준을 넘어, 덮고 또 덮어도 막을 수 없을 만큼 악취를 풍기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김대통령의 세 아들을 둘러싼 부패 의혹, 아태재단의 파행과 각종 ‘게이트’를 보면서 “권력은 부패하게 마련”이라는 액튼의 경구가 생각난다. 또 “아니다, 부패하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사람이다”라는 버나드 쇼의 반론도 실감난다. 결국 이 두 가지가 합쳐져 권력형 비리를 만들어낸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부패를 행하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권력이 부패의 수단과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권력형 비리와 치부가 일반 비리보다 훨씬 심각한 이유는 국민이 위임한 통치권과 정책 결정권을 오·남용한 직무유기이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의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시장실패’의 교정이다. 시장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하는 시장실패는 환경오염이나 국방 등 많은 공공재 문제에서 확인된다. 공공재 문제란 시장 행위자들이 이기주의적 성향대로 판단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례다.

DJ, YS 반면교사 잊고 아들들 부패 의혹 반복 참담함

시장실패가 사람들의 이기주의에서 비롯되는 만큼 이를 교정하는 임무를 맡은 권력 당국자들은 이기주의적 이익으로부터 스스로를 멀리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기대한다. 혹은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을 주문한다. 그렇다고 공인이나 그 인척들이 황희 정승처럼 비가 줄줄 새는 집에 살 만큼 곤궁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또 멸사봉공(滅私奉公)이란 말처럼, 자기 자신의 사적 영역을 완전히 포기하고 24시간 국가를 위해 헌신하기만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공직자가 있다면 가히 천연기념물과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언론을 통해 접하는 이 끝간 데 없는 비리와 치부의 실상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정신은커녕 보통 사람들보다 못한 권력자들의 저급성과 천민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권력형 치부란 정치 행위자가 시장 행위자와 결탁해 시장 행위자에게 권력의 우산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부를 취하는 행위다. 그것은 생업을 위해 묵묵히 노력하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권력형 치부 의혹을 목도하면서 ‘다 파먹은 김치독’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답한 것은 김영삼 정부 때 김현철씨 사건이라는 확실한 반면교사가 있었고, 김대중 대통령은 야당 시절 전임 대통령들의 친인척 비리에 대해 신랄하게 비난했음에도, 집권하고 나자 아들들의 부패 의혹이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어머니를 욕하면서도 그 시어머니를 며느리가 닮기 때문인가. 집권한 다음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망각의 강’을 건너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의 준칙을 경시했기 때문인가. 혹은 IMF체제를 조기 졸업했다는 자만감과 도덕적 해이 때문인가.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참담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우리는 5년 단임정부에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더구나 단군 이래 처음인 새로운 업적들을 낼 것은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는다. 이러한 위대한 것들을 기대하기에 5년은 너무 짧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형 비리와 치부는 다르다. 대만의 장제스 총통과 며느리 이야기를 구차하게 거론할 필요 없이 이 문제는 통치자가 마음먹기에 따라 근절할 수 있다. 5년 단임정부에서 권력형 치부가 최소화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화려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업적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하지 못했다는 것, 할 수 있는데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김대통령의 큰 실패로 꼽힐 것이다.

옛날 중국 사람들은 누런 황하가 언제나 맑아질까 한탄했다고 한다. 그런데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청와대 주변이 언제 맑아질 수 있겠는가” 하는 한탄과 자조를 거듭해서야 되겠는가.



주간동아 2002.05.03 332호 (p104~104)

< 박효종 / 서울대 교수 ·정치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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