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4

2002.03.07

성인만화 패러다임이 바뀐다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입력2004-10-18 17: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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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인만화 패러다임이 바뀐다
    재작년부터 일기 시작한 프랑스 만화 출간 붐은 일본풍 만화에 길들여진 한국의 만화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큰 판형의 빳빳한 표지, 올 컬러로 그려진 매혹적인 그림들, 여기에 심도 깊은 철학적 사유와 문화적 감동이 느껴지는 수준 높은 내용은 인문학적 지식인 취향의 잠재적 만화 독자들과 색다른 이미지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감성에 부응하며 새로운 시장을 형성해 갔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만화는 아이들만 보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있긴 하지만, 사실 한국의 성인만화 시장은 최근까지도 불모지에 가까웠다. 기껏해야 스포츠신문에 실리는 몇 편의 만화와 군소 출판사에서 펴낸 일본 성인만화가 전부였는데, ‘19세 미만 구독 불가’ 같은 빨간 딱지가 붙은 이런 만화들은 과도한 성애묘사나 폭력묘사가 주를 이룬 것들이어서 내놓고 보기에 민망하고 두 번 보고 싶지 않을 만큼 조악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난 만화 읽어요” 하고 자랑하면서 볼 만화가 없다고 생각하는 성인만화 팬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만화잡지가 나왔다. ㈜카툰프로젝트의 ‘야후 매니아’와 학산문화사가 발행한 ‘웁스’(상자기사 참조)는 성인을 겨냥한 새로운 만화잡지로 최근 창간호를 내고 독자들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젊은이들을 위한 문화무크지 ‘통조림’의 발행인으로 알려진 이명호씨가 발행하는 ‘야후 매니아’는 기존의 만화잡지와 차별화된 판형과 화려한 색채의 올 컬러 페이지, 독특한 개성으로 무장한 신진 작가군의 등장으로 일단 눈길을 끈다. “디지털 시대, 컬러 비주얼 세대라 할 수 있는 젊은 층의 성향에 맞춘 제작 방식과 ‘야후’라는 브랜드 라이선싱으로 인터넷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쉽게다가가고 인터넷 포털사이트 ‘야후’와의 온·오프 라인 공동 마케팅으로 만화잡지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것이 이씨가 밝히는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 초판 5만부 정도를 발행했는데 독자들의 반응도 ‘신선하다’ ‘창의적이다’는 것에서부터 ‘역겹다’ ‘엽기적이다’는 것까지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야후 매니아’의 등장은 만화의 창의성과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일단 인정할 만하다. 이 잡지에는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낯설고 기이한’ 만화들이 가득한데, 기성의 인기작가보다는 언더그라운드 성향의 젊은 작가군을 앞세운 만큼 분방한 인디정신과 독창적인 그림체, 기이한 캐릭터와 엉뚱한 이야기가 장편 극화만화에 길들여진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하고 비위를 상하게도 만든다.



    ‘야후 매니아’의 작가들은 주로 인터넷과 비주류 만화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20∼30대의 젊은 작가들로 ‘독창성’과 ‘자유로움’이라는 잡지의 성격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화가라 할 만큼 탄탄한 회화 실력을 갖추고 유럽 만화풍의 예술적 만화를 선보이는 이들도 있고, 펜 만화에서 벗어나 100% 컴퓨터로 작업한 디지털 만화와 판화기법을 도입한 만화도 눈에 띈다.

    이 잡지에서는 기존 순정만화풍의 쭉쭉빵빵 미남 미녀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캐릭터들은 과장되거나 뭉그러져 있고, 예쁘지 않은 만큼 착하지도 않다. 화장실 낙서 같은 필체로 주류만화의 상식과 관습을 배제하고 사랑과 정의, 가족애 같은 사회의 상식과 관습을 전복한 이들의 만화가 반가운 건 이미 우리 만화시장을 점령해 버린 일본의 ‘망가’에서 벗어나려는 새로운 기운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한편 기승전결을 찾기 어려운 스토리와 몇 단계를 훌쩍 뛰어넘은 듯한 내용 전개, 단편인지 연재물인지도 알 수 없을 만큼 모호한 내용들은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만화평론가 이명석씨는 “만화의 본질적 매력은 이야기 자체에서 우러나는 것인 만큼, 최근 젊은 작가들이 스타일과 이미지에 매몰되어 가는 것은 경계해야 할 현상이다. 만화가 좀더 대중적으로 교류하기 위해서도 의미 있는 이야기 구조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고 말한다.

    성인만화 패러다임이 바뀐다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었던 애니메이션 ‘아치와 씨팍’의 원작자로 알려진 작가. ‘아치와 씨팍’은 영화사이트 ‘씨네포엠’에 처음 선보인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네티즌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조크로 버무린 발칙한 상상력’을 장기로 내세운 그의 작품은 60년대 만화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키치적 그림에 촌스러운 색깔을 쓰는 것이 특징. 따라서 다분히 도발적이고 펑크적이다.

    김씨는 “만화는 먼저 만드는 사람이 스스로 재미있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저나 독자 모두 힘들이지 않고 장난치듯 보고 즐길 수 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손으로 아무렇게나 그린 것 같지만 그의 작품은 100% 컴퓨터 작업의 산물이다.

    이애림(29)(‘New 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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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년 ‘오디션’의 작가 천계영씨와 함께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한 작가. 당시 한국종합예술대학 영상만화과 학생이었던 이씨는 학생들의 공포와 성(性)을 주요 소재로 다룬 컬트만화 단편집 ‘쇼트 스토리’로 이 상을 수상해 만화계의 관심을 끌었다. 유럽 만화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화풍과 강렬한 그림체로 새로운 만화적 영감을 제시하고 있는 이씨의 작품은 다분히 실험성이 강한데, 96년 진보적 만화잡지 ‘MIX’의 창작 작업에도 참여한 ‘언더’ 출신이다.

    ‘야후 매니아’를 통해 선보이는 새로운 작품 ‘New Ray’ 역시 낯설고 무서운 공간에 온 것 같은 느낌과 몽환적 이미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우리 삶에 가려진 욕망의 실체를 드러내고 싶다’는 그녀는 모든 이의 마음속에 숨어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내 거침없이 표현함으로써 어른용 우화 같은 작품을 선보인다.

    성인만화 패러다임이 바뀐다
    많은 획수를 들여 연필로 그린 작품 ‘어디에도 없는 남자’를 선보인 아이완(본명 황은주)의 작품 역시 독특한 기법과 이미지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세상의 모든 병을 담아야 할 운명의 사내는 새로운 질병을 담느라 죽음을 위해 짬을 낸 시간이 없다는 만화의 메시지가 흑연 특유의 암울함 속에 배어난다. 연필의 부드러운 질감과 모노톤으로 응축된 정서를 담아내는 그의 그림을 좋아하는 마니아들도 많이 생겼다.

    영상원에서 영상디자인을 전공한 아이완은 애니메이터를 꿈꾸다 만화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만화사이트에 시리즈물을 연재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아 처음으로 만화잡지에 작품을 연재하게 됐다.

    이경석(31)(‘을식이는 바보‘)

    성인만화 패러다임이 바뀐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회사 다니다 만화를 그리고 싶어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와서는 신문배달을 하면서 만화를 그렸다는 이경석씨. 만화 외에도 ‘이발쇼 포르노씨’라는 인디밴드 활동과 웹진 활동으로 마니아층을 확보했다. 인디만화잡지 ‘히스테리’ ‘코믹스’의 멤버로도 활동한 그는 컬트만화 ‘오! 해피산타’ 등으로 이름을 알렸는데, 미국 애니메이션 ‘비비스와 버트헤드’를 연상시키는 펑크적인 캐릭터와 사회적 권위에 대한 노골적 야유가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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