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4

2002.03.07

“한국엔 광우병 없다”… 믿어도 될까

“영국産 사료 먹은 소 발병 가능성 높아” … 골육분 원료로 한 의약품 등 철저한 검역 필요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4-10-18 14: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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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엔 광우병 없다”… 믿어도 될까
    2000년 6월 인간광우병(변형크로이츠펠트-야콥병 vCJD)으로 의심되는 36세의 남자가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이 환자는 근육경련과 시각장애, 정신착란 증상을 보였다. 원래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 환자는 100만명당 1명 꼴로 자연발생하기 때문에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고 해서 인간광우병으로 단정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새로 발생한 환자가 30대 젊은이였다는 점이다. 국립보건원의 역학조사에 따르면 1996~2000년에 보고된 45명의 CJD 환자는 대부분 50대 이상의 연령이었다. 36세 환자는 전례와 비교해 훨씬 젊었기 때문에 의사들은 긴장했다.

    영국에서도 90년대 중반 목장에서 일하는 목동들과 30세 미만의 젊은 환자들이 CJD 증상을 보이는 것에 주목하다 결국 1996년 3월 인간광우병을 인정했다. 이런 이유로 CJD 환자가 나타나면 의사들은 우선 나이에 주목한다.

    2001년 3월 서울대병원 신경과의 김상윤 교수팀은 36세 환자의 대뇌피질 조직 일부를 떼내 조직검사(생검)를 했다. 그 결과 CJD 환자로 판명되었으나 국립보건원은 국제보건기구의 vCJD 진단기준에 못 미쳐 인간광우병으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환자는 지난해 10월26일 사망했다. 하지만 김상윤 교수는 끝내 부검을 하지 못한 이 환자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다. “(인간광우병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모르는 것”이라는 말이 김교수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이었다. “vCJD라고 확진하려면 반드시 부검을 해야 하는데 가족의 반대로 끝내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앞으로도 우리나라에서 vCJD 환자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발병 자체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무도 모르게 발병해 이미 사망했을 수도 있다.”

    “한국엔 광우병 없다”… 믿어도 될까
    김교수는 vCJD로 의심되는 환자는 강제로라도 부검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후 부검을 법제화하며 장례보조비를 지급하는 등의 구체적인 안도 제시했다. 비슷한 시기 인천의 다른 병원에서 40대 여성이 vCJD로 의심받는 증상을 보이다 사망했으나 역시 가족이 부검에 동의하지 않아 확진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된 나라는 영국을 포함, 거의 유럽 전역에 걸쳐 있다. 지난해에는 일본에서 광우병이 발병함으로써 아시아도 안전지대가 아님이 확인되었다. 지난해 말 집계된 인간광우병 환자는 113명. 아직 광우병에 걸린 소도 환자도 발견된 적이 없는 한국은 이제부터 조심만 하면 안전할까. 문제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



    서울대 오명돈 교수(감염내과)는 지난해 2월 이슈투데이 사이트에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기사를 인용하며 “광우병이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 영국에서 사료를 수입한 나라 가운데 한국도 포함되어 있다. 문제의 사료를 먹은 소가 광우병 증세를 나타내기까지는 평균 5년이 걸린다. 따라서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없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고 했다.

    실제로 영국은 광우병 파동이 시작된 1988년 이후 자국 소에게 육골분을 사료로 쓰지 못하게 했지만 수출은 허용했다. 오히려 영국 내에서 판로를 잃은 육골분의 수출은 더욱 늘어났다. 특히 유럽 내에서 더 이상 육골분을 수출할 수 없게 된 영국은 아시아로 수출선을 바꿨다. ‘인디펜던트’지는 1993~96년 영국이 육골분을 수출한 나라는 한국을 비롯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미국, 캐나다, 대만, 홍콩, 케냐, 터키, 인도네시아, 헝가리, 말레이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스리랑카라고 보도했다. 일본은 사료 수입량이 많은 인도네시아와 태국에서 아시아 최초로 광우병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하다 지난해 9월 지바현에서 첫 광우병 젖소가 발견되는 바람에 뒤통수를 맞았다. 그러나 아시아의 다른 국가에서 이미 발생했는데도 모르고 넘어갔을 가능성도 있다(‘문예춘추’ 2001년 12월호, ‘에머지’ 2002년 2월호).

    국내에서 육골분 사료 외에 뼈와 각막 등도 인체조직과 소의 추출물을 이용한 백신 등도 광우병에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국회에서 심재철 의원은 광우병에 노출된 국가에서 사육한 소의 추출물을 이용한 A형 간염백신이 1999년 이후 국내에 66만6380개가 수입됐다고 주장했다. 김성순 의원은 우리나라에 인체조직을 수출하는 미국 내 한 업체에 미연방식품의약품안전청(FDA)이 서한을 보내 “프리온(광우병 원인물질)의 감염을 제거했음을 입증하는 기술이 나오지 않은 만큼, 확실한 증거 없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게 옳다”고 경고했음을 밝혔다. 김상윤 교수도 “골육분을 원료로 한 의약품, 건강식품, 이유식, 화장품 등이 무차별적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에 대한 철저한 검역과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실 전문가들은 광우병의 위험성을 거론할 때마다 딜레마에 빠진다.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비행기사고나 도로를 걷다 교통사고로 사망할 확률보다 훨씬 적은데 대책 없이 공포만 확산시킬 수 있다는 고민이다. 지금까지 통계상 소 70만마리가 감염되었고 그 소를 먹고 인간광우병에 걸린 환자는 113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최장 40년까지의 잠복기간을 감안할 때 10년 후 환자 수가 13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을 보면 무시할 수 없는 위험이다.

    전문가들이 더욱 염려하는 것은 안전하다고 믿다가 어느 날 광우병 소가 발생했을 때 벌어질 ‘집단 히스테리’다. 광우병의 원인이나 전파 경로에 대한 정확한 진단도 내려지기 전에 고기집과 정육점이 문을 닫게 될 것이고 연쇄적으로 축산농가가 무너지는 등 대혼란이 일어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오명돈 교수는 “항상 광우병 발생 가능성을 열어놓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급한 일이 광우병 검사를 받는 소를 대폭 늘리는 것이다. 오교수는 “1년에 우리 국민이 소비하는 한우가 100만두 이상인데 불과 몇천 마리만 검사하고 광우병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기엔 숫자가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 현재 일본은 광우병 발생 후 도축되는 소에 대해 전수(全數)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한 송아지가 성장하려면 2~3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그때까지는 오염된 사료를 먹었을 가능성이 있는 소에 대해 모두 검사한다.

    광우병 파동 이후 일본 국민의 60%가 쇠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할 만큼 기피현상이 심각하다. 국내에서도 쇠고기 대신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먹고 아예 채식주의자가 되는 사람이 늘고 있으나, 이는 소극적 방어일 뿐 광우병에 대한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불행하게도 영국의 인간광우병 환자 가운데에는 채식주의자도 있었다. 지금까지 돼지에게 광우병이 발생하지 않은 것은 돼지의 사육기간이 2~3년에 불과해 잠복기에 이미 도축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닭, 개, 고양이도 광우병에 걸리며 또 이 동물들의 배설물을 비료로 준 식물 역시 안전하지 않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일본과 한국에서는 소의 체세포에서 광우병을 유발하는 ‘프리온 단백질’을 제거해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 소를 개발하는 기술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교토대학 후쿠오카 신이치 교수는 “앞으로 소비자는 광우병의 위험이 있는 쇠고기냐 유전자 조작의 쇠고기냐를 놓고 선택을 강요 받게 될 것”(문예춘추)이라고 했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광우병이 발생하기 전 오염원을 철저하게 제거하는 것뿐이다. 올 한 해 우리의 화두는 식탁의 안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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