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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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화는 불량 … 쓰레기 헤쳐야 향기 난다”

3년째 국제영화제 진출 김기덕 감독 … “순수함 지키기 위해 추한 본능 표현”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입력2004-11-09 13: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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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영화는 불량 … 쓰레기 헤쳐야 향기 난다”
    김기덕 감독의 신작 ‘나쁜 남자’가 올 2월 열리는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게 됐다는 뉴스가 보도된 것은 지난해 12월 말이었다. 베니스영화제에 연속 초청된 ‘섬’ ‘수취인불명’에 이어 3년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은 김감독 개인의 영광을 넘어 우리 영화계 전체의 쾌거임에 틀림없었다. 축하도 할 겸 인터뷰나 하자는 가벼운 생각으로 연락을 취했을 때, LJ필름(‘나쁜 남자’ 제작사) 홍보 담당은 김감독이 지금 서울에 없다고 했다.

    워낙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게릴라 같은 인물임을 잘 알고 있기에, 어디 또 시골마을을 돌며 다음 영화 찍을 장소를 헌팅하고 있나 보다 하고 기다려 봤지만 ‘나쁜 남자’의 개봉이 코앞에 다가온 순간까지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영화감독도 이제 인기 연예인이다 이거지.’ 가벼웠던 마음이 불쾌감으로, 다시 오기로 바뀌어갈 때쯤 연락이 왔다. ‘나쁜 남자’의 개봉일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나쁜 남자’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글을 읽고 있던 그가 ‘씨익’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그 웃음은 여전히 가난해 보였고, 그의 남루한 모습에선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디 다녀오셨나 봐요?” “다 핑계예요. 말하기 싫어서 피해 있었어요.” “인터뷰 안 하기로 하셨다고요?”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답변, 이젠 내가 지쳤어요. 무수한 말을 했지만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내 영화는 불량 … 쓰레기 헤쳐야 향기 난다”
    그는 자기 영화에 대한 평단의 혹독한 평가와 관객의 외면 속에서 숱한 상처를 받은 듯했다.



    “오만이라고 욕해도 괜찮아요. 어차피 예술가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한 세기를 거치고 나서 얻을 수 있는 거니까….”

    96년 ‘악어’를 시작으로 평균 1년에 한 편씩 새로운 영화를 세상에 내놓은 이 놀라운 열정과 끈기의 감독을 먼저 알아본 건 국내보다 해외에서였다. ‘섬’과 ‘수취인불명’을 초청한 베니스영화제는 그의 영화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가학성과 피학성, 에로티시즘과 정치적 은유에 우리보다 후한 점수를 주었다. 그들에게 김기덕은 눈여겨볼 만한 새로운 동양의 감독이다.

    세 번째 진출인 만큼 이번에는 상 하나쯤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김기덕은 “내 영화는 상 받을 수 없는 영화라는 걸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잘라 말한다. 이유를 물으니 “위험하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모두가 아프다고 피하고, 애써 덮어두려는 상처를 나는 드러낸다. 사람들이 병균이라고, 사회악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존재에 나는 현미경을 대고 들여다본다. 내 영화는 비도덕적이고 불량하다. 나는 이런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에 도덕이 세워졌으면 하고, 영화와 다른 순수한 세계가 계속 지켜졌으면 한다.” 그의 목소리에 갑자기 힘이 들어간다.

    “쓰레기 더미를 헤치면 향기가 난다”는 그의 말은 곧 김기덕의 영화세계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그의 영화는 늘 악취미, 엽기, 도발, 충격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그는 우리가 감추고 싶어하는 추한 본능을 여지없이 드러내 까발리고, 밑바닥 인생의 처절한 삶을 잔인하고 충격적인 묘사에 담아 눈앞에 날것 그대로 펼쳐 보인다. 김기덕의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서는 중간에 자리를 뜨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비위가 약한 사람은 몇몇 장면에서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다. 그의 영화를 보면서 온몸이 욱신욱신 아파오는 경험을 한 기자로서는 베니스영화제에서 ‘섬’을 보던 여기자들이 기절해 실려나갔다는 얘기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때문에 김기덕은 늘 소수 마니아들의 감독이었다. LJ필름이 작년에 진행한 ‘김기덕 영화관객의 관람 특성’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김기덕의 영화를 많이 본 관객일수록 ‘매우 좋아한다’고 응답한 반면, 김기덕의 영화를 싫어한다고 답한 사람들 중에는 그의 영화를 한 편도 안 본 사람이 많았다. 마니아들은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엽기성’ 때문이 아니라 ‘인간 이면에 대한 탐구’ ‘회화적 색채와 이미지’ 때문이라고 답했지만, 평단(특히 여성 평론가들)에서는 그의 영화를 ‘반여성적’ ‘성기 중심의 남성 팬터지’라고 비판하는 일이 많았다.

    이런 논란은 신작 ‘나쁜 남자’에서 극에 달한 느낌이다. 김기덕의 페르소나에서 TV스타로 급부상한 조재현의 이름과 영화제 진출 소식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는지, 아니면 여배우의 뒷모습 나신을 그대로 드러낸 ‘야한’ 포스터 때문인지 ‘나쁜 남자’는 개봉일인 1월11일 금요일부터 주말까지 김기덕의 영화로는 최초(?)로 매진사례를 빚었다. 이 가운데 여성 평론가들은 앞다투어 이 영화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내 영화는 불량 … 쓰레기 헤쳐야 향기 난다”
    “영화에서 남성의 우월성과 힘은 오로지 남성이라는 사실, 즉 ‘페니스’에서 나올 뿐이다. 이 영화에는 현실에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페니스 파시즘’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소통되고 있다.”(영화평론가 주유신) “자신보다 문화적·계급적으로 우월한 여성을 철저하게 지배하고 망가뜨리는 남성의 모습을 통해 성별질서가 계급질서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설 수 있었으면 하고 발언한다. 이는 여성 집단에 공공연히 가해지는 ‘성적 테러리즘’에 지나지 않는다.”(서울대 강사 양현아)

    이런 비판에 대해 김기덕 감독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너절하게 변명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감독의 욕망은 좀더 많은 사람의 이해를 받고 싶어하는 것과 있는 그대로의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 사이에서 치열한 갈등을 벌이는 법인데, 그의 선택은 이번에도 후자였다.

    “나는 운명을 얘기하고 싶었다. 누구나 처음부터 깡패나 창녀는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가 짐작할 수 없는 삶의 미로 속에서 그 자리에 놓여 있는 사람들일 것이고, 그 속엔 우리가 알 수 없는 수많은 상처도 있을 거라고 본다. 여자들은 남자들의 폭력만 문제 삼는데, 남자들 역시 일상생활 속에서 여자들의 무수한 ‘시선폭력’에 시달린다. 지하철에서 잠깐 몸이 스쳤을 때 벌레 보듯 하는 여자들의 시선은 분노를 넘어 살의까지 느끼게 한다. 긴장된 도시 어느 곳에서 위험한 공격이 닥칠지 모르는 일 아닌가.” “그렇다고 모든 여자가 영화 속 선화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고 덧붙이는 그의 말에서 어쩔 수 없는 ‘위악성’도 느껴진다.

    “내 영화는 불량 … 쓰레기 헤쳐야 향기 난다”
    갑자기 김기덕의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이 늘어나는 것도 그는 별로 반갑지 않다고 했다. 보고 나서 ‘변태’니 ‘관음주의자’니 하는 욕을 하면서 스트레스 받을 사람들은 아예 보지 말아달라는 것. “내 작품은 늘 50, 60점밖에 안 가는 것들이다. 따라서 관객도 걸러져야 한다. 내가 의사도 아닌데 모든 사람을 치유할 순 없는 것 아닌가.”

    그는 물리적·금전적·집단적 파워로 순위를 매기고 자본의 논리로만 영화를 대하는 지금의 영화판에도 일갈을 던진다.

    “스크린쿼터 운동은 제작부 막내까지 나가 한 운동이지만 그 과실은 행사에 한 번 나오지도 않은 투자사들과 메이저 영화사들이 다 가져간다. 나야 안 되면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천막극장이라도 치고 상영하면 되지만, 돈냄새 나는 영화만 판치는 지금의 가분수적인 호황은 반갑지 않다.”

    김기덕은 ‘영화’라는 말 안에 고유의 따뜻한 ‘힘’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영화에서도 그런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 바란다고 말하면 그는 화를 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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