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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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정부에는 ‘검찰이 없다’

DJ가 믿었던 신승남 총장도 불명예 퇴진 … 공권력 장악 시도 잘못된 인사정책 ‘부메랑’

  •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입력2004-11-08 14: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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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 정부에는 ‘검찰이 없다’
    1999년 말 광주지검 특수부가 ‘이권 개입’ 등 소문이 나돌던 완도군수 차모씨를 내사하고 있을 때 일이다. 당시 차기 검찰총장 0순위로 꼽힌 ‘검찰 내 실세’ 신승남 대검 차장이 수사팀에 직접 전화를 걸어 혐의 내용을 ‘문의’했다. 그렇지 않아도 내사 대상인 차씨가 김대중 대통령의 사별한 부인 차용애씨 집안 사람이어서 ‘부담’을 느끼고 있던 터에 신차장까지 관심을 보이자 수사팀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광주지검은 차씨를 관급공사 시공업자에게서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했다. 차씨는 받은 돈의 대가성을 부인했지만 방파제 축조공사를 수의계약으로 수주한 Y건설 대표 기모씨가 일관되게 진술, 구속이 불가피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정권교체 이후 차씨를 둘러싼 이런저런 얘기가 많아 그를 구속하지 않으면 정권 차원의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국민의 정부에는 ‘검찰이 없다’
    그러나 당시 신승남 차장의 반응에서는 ‘짜증’이 묻어났다고 한다. 수사팀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양해’를 구하자 한동안 말없이 전화통만 붙잡고 있었다는 것. 신차장의 ‘무반응’에 불안해진 수사팀 관계자가 “혐의 내용을 설명할까요”라고 묻자, 신차장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됐어”라고 한마디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는 후문.

    당시 수사팀 가운데 구속을 강력히 주장한 P검사는 아직도 그 사건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사건 이후 인사에서 두 번씩이나 ‘물’먹어 현재는 동기생 가운데 경력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그룹에 속하게 됐다. P검사는 현 정부 출범 이전인 초임검사 시절 서울지검 특수부에도 근무하는 등 호남 출신으로서도 ‘잘 나가는’ 그룹에 포함돼 있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그의 주변 인사는 “P검사가 호남 정권에서 물먹고 있다는 것은 현재의 검찰 위기와 관련,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같은 호남 출신이라도 P검사 같은 사람이 중용되고 검사들이 소신껏 수사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상대적으로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몇몇 호남 출신 검사들이 요직에 앉아 중요 사건을 맡았다가 결국 ‘사고’만 쳤다는 지적이다.



    국민의 정부에는 ‘검찰이 없다’

    99년 11월 21일 수사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최병모 '옷로비'특검

    문제는 검찰의 ‘사고’가 정권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 1월13일 ‘이용호 특검팀’이 신승남 검찰총장 동생 승환씨를 구속하자 여권 내부에서 “검찰이 여권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2000년 5월 G&G그룹 회장 이용호씨 사건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특검을 불렀고, 여권이 대선을 앞두고 쇄신안을 마련해 새 출발 하려는 시점에 신승남 검찰총장의 ‘불명예 퇴진’이라는 변수가 터져나와 여론 악화를 초래했다는 불만이다.

    신총장 사퇴는 현 정부의 검찰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각종 게이트의 축소 수사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검찰 간부들을 ‘정리’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윤태식 게이트’ 등에 대한 수사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결과를 구체적으로 내놓는다면 오히려 국민의 박수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 국가 공권력의 상징인 검찰 자체의 위기뿐 아니라 현 정권의 신뢰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여권에서는 “현 정권은 그동안 검찰 때문에 덕보긴커녕 손해만 봤다”고 말한다. 과거 옷로비 사건이나 안동수 법무장관의 충성발언 메모 파문 등에서 보듯 검찰이 ‘사고’를 침으로써 정권에 부담이 되거나 여권 내분을 촉발했다는 얘기다. 99년 5월 개각에서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이 법무장관에 입각한 것을 두고 여론의 시선이 따갑자 여권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는 세력이 있다”는 얘기가 터져나왔다.

    작년 안동수 전 장관 파문 때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당시 안동수 장관이 단명으로 끝난 것은 충성 메모보다는 안장관 아들의 병역비리 연루 의혹 때문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여권 내부에서조차 “국정을 농단하는 세력이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권력 내부의 균열 한가운데에 검찰이 있었던 셈이다.

    국민의 정부에는 ‘검찰이 없다’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강원일 특검

    그러나 이런 상황은 여권 스스로 자초했다는 지적이 많다. 검찰 출신 한 여권 인사는 “검찰 독립에 대한 국민적 여망이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는데도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핵심부가 여전히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아직도 검찰 등 사정기관을 ‘장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믿을 만한 사람을 요직에 앉히려다 보니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이 인사의 계속되는 설명이다.

    “과거 정권은 검찰 내 자기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매끄럽게 검찰을 컨트롤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권력을 운영해 온 과정에 자연스럽게 터득한 노하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수정권인 현 정권으로서는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과거 정권과 똑같은 전철을 밟다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그런 한계 가운데 대표적인 게 인사 실패다. 특수통으로 알려진 한 부장검사는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해서 호남 출신을 중용했지만 인재 풀이 적다 보니 적임자로 보기에 어려운 사람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0년 5월 G&G 구조조정 회장 이용호씨를 긴급 체포했다가 불입건 처리한 당시 임휘윤 서울지검장-임양운 3차장-이덕선 특수2부장 라인을 그런 사례로 꼽았다. 세 자리 모두 같은 직위의 검사들이 선망하는 곳이다. 검사장급이라면 서울지검장은 거쳐야 검찰총장을 바라볼 수 있고, 서울지검 3차장은 검사장 승진에 유리한 자리. 또 서울지검 특수1, 2, 3부장은 특수 수사 검사들이 선망하는 자리다.

    불행한 점은 세 사람 모두 호남 출신으로 정권 입장에서는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특수 수사 경험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한 부장검사의 설명. “일반 형사사건에서는 사람(피의자)을 부르는 게 수사의 ‘시작’이지만 특수 수사에서 사람을 부른다는 것은 구속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덕선 부장 주장대로 이용호씨에 대한 혐의를 입증하지 못해 풀어주었다고 한다면 특수부장이 특수 수사의 ABC도 모른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외압’ 때문에 이씨를 풀어주었다고 한다면 더 문제지만…. 뿐만 아니라 3차장의 경우 때로는 수사 검사들의 의견을 참고해 검사장을 설득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임양운 차장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워낙 마당발이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나돌던 임휘윤 지검장에게 직언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반면 원칙대로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검사들은 최악의 경우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잘 알려진 얘기지만 2000년 말 ‘정현준 게이트’ 수사 주임검사였던 장모 검사(현재 헌법재판소 파견)는 김형윤 당시 국가정보원 경제단장에 대한 소환 조사를 적극 주장했다가 인사조치 당할 뻔했다. 검찰 수뇌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단장에 대한 수사 의지를 꺾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찰은 당시 ‘정현준 게이트’에 관련돼 구속된 이경자 동방금고 부회장에게서 “김형윤 국가정보원 경제단장에게 5000만원을 주었다”는 진술을 받아놓고 있었다. 돈을 준 사람의 진술이 있으면 받은 사람에 대한 소환 조사는 수사의 기본. 그러나 국가정보원 호남 인맥의 ‘대부’로 알려진 김형윤 단장에 대한 수사는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 김단장은 동아일보가 작년 가을 이런 사실을 특종 보도한 이후에야 구속됐다.

    결과적으로 당시 검찰 수뇌부는 ‘정현준 게이트’ 축소·은폐에 적극 개입한 셈이다. 당시 검찰에서는 “장검사가 고집을 부리자 수뇌부에서 장검사와 친한 검사들을 동원, 설득해 보도록 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그러나 장검사를 설득하러 간 검사들이 오히려 장검사에게 설득당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후문.

    장검사에 대한 인사조치는 검토 단계에서 무산되었지만 그 후 검사들은 인사 얘기만 나오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인사가 검사를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인 상황에서 검사에게 인사는 거의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검찰 내부에서 “인사 앞에 장사 없다” “인사는 검사에게 쥐약과 같다”는 얘기가 나올까.

    게다가 검사 인사는 ‘전진인사’라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요직과 한직이 정해져 있고, 모든 보직에 나름대로의 엄격한 서열이 매겨져 있다. 예를 들어 소규모 지청 중에는 여주지청장이나 서산지청장을 가장 우선 순위로 친다. 동기 가운데 가장 선두그룹이 그곳을 거쳐가는 방식으로 선두그룹과 후미그룹이 형성된다. 공안통이라면 대검 공안 1, 2과장과 서울지검 공안 1, 2부는 반드시 거쳐야 잘 나간다고 할 수 있다.

    고위간부급 보직 역시 요직이 정해져 있다. 가장 전통적 요직으로 우선 ‘빅4’가 있다. 서울지검장, 대검 중수부장, 대검 공안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이 그것이다. 검사장이 된 검찰 간부들이 반드시 거치고 싶어하는 보직이다. 검찰총장이 되려면 이 4개 보직 가운데 한두 개는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런 인사의 특징은 한두 번 인사에서 밀리면 회복이 힘들다는 점이다. 이런 분류를 통해 자연스럽게 “동기생 가운데 누구는 총장감이고 누구는 검사장감”이라는 식으로 정리된다고 검사들은 말한다. 서울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이런 인사에 대해 ‘잘 나간 사람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구조’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인사의 예측 가능성이란 점에서는 합리적인 시스템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이 시스템이 와해 직전에 와 있다고 우려했다.

    검찰 인사가 호남 편중 시비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야당시절 경험이 크게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한 법조인은 “김대통령의 인사를 보면 검찰을 ‘장악’하고 있어야 안심할 수 있다는 인식이 엿보인다. 이는 과거 야당 총재 시절 공안정국하에서 강도 높은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형성된 검찰에 대한 공포감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설사 그렇다 해도 1월14일 김대중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을 본 검사들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김대통령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의 독립성은 철저히 보장하겠다고 말하면서도 “대통령이 사정 책임자를 소집해 일체의 부패에 대해 가차없이 척결하겠다”고 밝힌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 검찰 출신 한 변호사의 지적은 음미할 만하다.

    “각종 게이트가 터질 때마다 권력 핵심 인사들의 연루 의혹이 제기된 것은 김대통령의 부패척결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김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그런 의지를 천명했는데도 여론은 오히려 부패가 심화됐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 핵심부가 검찰을 장악하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 검찰이 알아서 하도록 해야 각종 대형 사건에 대한 축소 수사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고, 검찰 때문에 정권이 비난받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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