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7

2002.01.10

짭조름한 ‘최고 밑반찬’

  • 시인 송수권

    입력2004-11-04 15: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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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짭조름한 ‘최고 밑반찬’
    전라도 위도(蝟島) 시도리란 곳에는 아름드리 늙은 살구나무 하나가 있는데 그 고목에 자욱하게 꽃이 필 때면 해마다 참조기 떼의 노래가 들려온다. 알주머니마다 탱탱하게 노랑 꽃술이 들어찬 은빛 조기 떼로 온 바다가 들썩거린다.’

    이런 묘사는 1960년대 한ㆍ일수교가 터지기 직전에 있었던 현장일 법하다. 지금도 그 살구나무가 서 있는지 없는지는 확인한 바 없어 필자로선 무어라 말할 수 없지만 한번은 현장을 가보고 싶은 것 또한 사실이다.

    ‘위도 띠뱃놀이’ 속에는 지금도 이런 ‘에용노래’가 남아 있어 그 현장을 더욱 실감나게 한다.

    짭조름한 ‘최고 밑반찬’
    용왕님 전에 빌어들 보세

    에용 에용 에에용



    조기를 잡자 조기를 잡자

    대항 앞바다 조구들 잡자

    띠배를 띄우며 부르는 노래인데 바로 ‘조기 파시’를 기린 노래다.

    또 영광 법성포에서 백하새우로 유명한 낙월도 가는 중간 지점에 칠산도(七山島)가 있다. ‘일산도 이산도/ 썰물 때는 칠산도/ 들물 때는 육산도’라는 민요처럼 이 일대는 조기밭이요, ‘조기 둠벙’으로 불린 곳이다. ‘흥부전’에선 ‘제일 주포 제이 법성’으로 살기 좋은 땅을 들었고, 고을살이 원님도 ‘북안악(해주 안악), 남옥당(법성)’이라 해서 부러워했다.

    2001년 12월21일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영광 톨게이트에서 우회전해 법성포로 들어가면 숲쟁이 마을인 굴비촌에 닿는다. 해안통에 바로 식당이 즐비한데 그중 18년째 ‘굴비 한정식’만 고집해 온 일번지식당(김영식ㆍ061-356-2268)이 있다. 이름 높은 오가재비(최상품) 굴비구이와 함께 차려지는 맛깔스런 반찬들은 접시를 포개놓고도 모자랄 지경이다. 오동 잎새만한 꽃게장하며 고추장굴비(장아찌), 찜 등 굴비 음식들을 한 상에서 모두 만날 수 있어 즐겁다. 그중에서도 쌀보리밥에 물말아 가닥가닥 찢어 얹어먹던 ‘통보리 굴비구이’가 오르는 2만원짜리 정식엔 활어회, 병치찜, 쇠고기육회, 떡갈비, 갈치구이, 박대(서대)찜, 장대(양태)찜, 새우찜 등이 푸짐하게 오른다. 이 정도면 광주나 서울 한정식집에선 5만원을 상회할 차림상일 터다.

    김영식 사장이 밝히는 노하우에 따르면 꽃게만 해도 미리 4톤 정도를 구입해 저장하고, 조기도 1톤 이상을 구입ㆍ저장하기에 이런 가격대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가짜 굴비를 쓸 수는 없는 일이다.

    요즘 영광 굴비는 부서나 백조기(보구치), 수조기(반어) 등 가짜 굴비로 노랑물을 들이는가 하면, 수입산 조기와 섞여들어 말썽도 많고 탈도 많다. 알이 탱탱한 참조기는 산란 직전 ‘조구 둠벙’이라 일컫는 칠산 본바닥 것이 제일이었다. 그 시절 30층 걸대에 조기를 걸고 숯불을 피워 건조한 것인데 지금이야 3~4층이 고작이다.

    흔히 조기를 ‘관자’에 나오는 사유(四維)와 비유해 사덕(四德)이라 칭하기도 한다. 첫째는 머리에 2개의 이석(石首魚)을 가지고 있어 수평을 유지하니 예(禮)가 바르고, 소금에 절여도 굽지 않으니 의(義)가 있고, 내장이 깨끗하여 염(廉), 비린 것 옆에 가지 않으니 부끄러움(恥)을 안다고 했다. 또 한자어로는 ‘정주굴비’(靜洲屈非)란 유래를 가지고 있어 ‘비굴하지 않다’는 뜻을 지녔다. 그리고 조기(朝氣ㆍ助氣)라 하여 한방에서는 비장과 위장의 기를 돕는다 하였다.

    통보리 항아리에 묻어둔 오가재비 굴비 한 마리를 찜하여 참기름고추장에 ‘물만밥’을 먹던 여름날의 그 입맛이야말로 이젠 가닥가닥 서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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