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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이동인의 나라’ & ‘사카모토 료마’

잊혀진 선각자 vs 영웅 된 선각자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잊혀진 선각자 vs 영웅 된 선각자

잊혀진 선각자 vs 영웅 된 선각자
개화승 이동인(1849~1881). 낯선 이름이다. 역사책에서 본 적이 없는, 그러나 실존 인물이다. 독립운동가 서재필 선생은 회고록에서 이동인 선사가 개혁을 갈망하는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이렇게 적고 있다.

“그(이동인)가 가지고 온 서적이 많았는데 역사도 있고, 지리도 있고, 물리 화학과 같은 것도 있었다. 그것을 보기 위해 3~4개월간 그 절(봉원사)에 자주 들렀지만, 당시 이러한 책을 읽다가 적발되면 사학(邪學)이라 해서 중벌에 처해졌기 때문에…. 이동인이라는 승려가 우리를 이끌어주었고. 우리는 그러한 책을 읽어 그 사상을 몸에 익혔으니 봉원사가 우리 개화파의 온상인 것이다.”

김옥균, 박영호, 서재필 등 개화파 젊은이들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고 1884년 갑신정변의 불을 지핀 인물. 신봉승씨는 역사소설 ‘이동인의 나라’에서 잊힌 개화기 선각자의 불꽃 같은 31년 삶을 그렸다.

소설의 시작은 1866년 고종 3년.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 두 척이 강화도를 침략했다(병인양요). 이때 서울 봉원사에서는 열다섯 살 까까머리 소년 이동인이 법국(프랑스)의 함선을 타겠다며 무공선사를 조르고 있었다. “바다 건너에 법국, 덕국(독일), 영길리(영국)와 같은 새로운 문명국이 있다 하옵니다.”

이동인은 강화도로 가던 중 미모의 여인 박진령의 부탁을 받고 세인들이 백의정승(白衣政丞)이라 부르던 개화사상가 유홍기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유홍기는 일찍이 친구이자 역관인 오경석이 청나라에서 가져온 ‘해국도지’ ‘영환지략’ 등을 읽으며 서구문명의 우수성을 깨닫고 조선이 통상에 응하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한 개화파였다. 유홍기, 오경석, 박규수 등 개화 1세대의 영향으로 개화사상에 눈뜬 이동인은 견문을 넓히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한다.



당시 일본은 메이지 유신과 근대화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이동인은 조선인 최초로 가쓰 가이슈(사카모토 료마의 스승)와 같은 메이지 유신 주역들과 교류하고 어니스트 사토 경과 같은 서양 외교관들과 만나며 임명받지 않은 외교관으로 활약한다.

잊혀진 선각자 vs 영웅 된 선각자
귀국 후 이동인은 고종과 명성황후에게 서구문물을 전하고 개화를 주장하여 총애를 받았다. 고종의 밀명을 받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 이동인이 조선의 개항과 수교 문제를 의논하는 단계에 이르자 조선의 훈구세력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죽여 없애지 않고서야!”

1881년 2월 이동인은 고종을 배알하고 돌아가는 길에 실종됐다. 흥선대원군이 보낸 자객의 칼에 맞아 죽었다는 소문, 민영익의 소행이라는 소문만 난무할 뿐 그의 자취는 사라졌다. 이로부터 3년 뒤 이동인의 영향을 받은 개화사상가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가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 가운데 박진령을 빼고는 모두 실존 인물이다. 저자 신봉승씨는 “15년에 걸쳐 모은 자료로 이 책을 썼다. 특히 영국이 공개한 외교문서 ‘사토 페이퍼’를 통해 일본에서 이동인의 활약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동인의 삶은 굳이 각색이 필요 없을 만큼 드라마틱하다.

그러나 저자를 안타깝게 한 것은 일본이 1853년 미국 군함과 맞닥뜨린 지 16년 만에 젊은 선각자들이 앞장서 성공적으로 근대화를 이룬 데 반해, 우리는 1866년 이후 같은 16년 동안 걸출한 선각자 한 명을 죽이고 개화의 중요한 시기마저 놓쳐버렸다는 점이다. 그 16년의 성공과 실패가 21세기 한국과 일본의 격차로 나타났다.

근대사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 또한 일본과 크게 비교된다. 시바 료타로는 역사소설 ‘료마가 간다’에서 일본 근대화의 주역인 사카모토 료마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료마라는 인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아사히 신문’이 독자들에게 지난 1000년 동안 일본 정치지도자 중 가장 좋아하는 인물을 조사한 결과, 사카모토 료마가 1위를 차지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시바 료타로 외에 야마오카 소하치, 도몬 후유지 등 일본의 주요 작가들이 앞다퉈 료마의 일대기를 펴내면서 끊임없이 일본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부끄럽게도 우리는 일본 근대화의 영웅 료마의 이름은 기억하면서 우리의 선각자 이동인을 잊어버렸다. 이제라도 이동인이라는 이름을 기억해내고 개화기 그의 활약상을 복원했다는 게 다행일 뿐이다.

이동인의 나라/ 신봉승 지음/ 동방미디어 펴냄/ 각 358쪽/ 각 8000원

사카모토 료마/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솔 펴냄/ 각 300쪽 내외/ 각 8000원





주간동아 317호 (p84~85)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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