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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마리 이야기’

가슴 찡한 성인 동화로의 초대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가슴 찡한 성인 동화로의 초대

가슴 찡한 성인 동화로의 초대
용산이나 청계천을 누비며 일본 애니메이션 비디오와 CD를 사 모으던 애니메이션 마니아들. 적지 않은 팬층이 있는데도 그동안 국내에선 이렇다 하게 내세울 만한 작품을 찾아볼 수 없었다. 변신로봇이나 귀여운 동물을 등장시킨 어린이물은 어른들이 함께 즐기기엔 함량 미달이었고, ‘블루 시걸’처럼 노골적으로 성인용임을 내세운 작품들도 극장으로 관객을 불러모으는 데는 실패했다.

그런데 어쩌면 올해가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다시 쓰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마리이야기’ ‘원더풀 데이즈’ ‘바리공주’ 등 3∼4년에 걸쳐 제작된 대작들이 줄줄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 국내 애니메이션의 척박한 토양에서 피어난 이들 작품은 색다른 질감의 이미지와 풍부한 상상력, 치밀한 제작공정과 작가정신으로 높아진 관객의 기대치에 부응하며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 장을 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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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두에 ‘마리이야기’가 있다. 이 작품은 국내 최초로 앙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본선에 초청되어 화제를 모았던 이성강 감독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보는 이를 아름다운 꿈속으로 안내하는 ‘마리이야기’는 SF나 학원물에 치중된 이전의 애니메이션들과 달리 ‘러브 팬터지’라는 새로운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 한 소년이 만난 환상적인 사랑과 그 사랑 속에서 성장하고 어른이 된 후, 아름다운 추억과 조우하는 감동이 어린이들은 물론 성인까지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정서의 세계로 안내한다.

아담한 바닷가 마을에 사는 소년 남우. 뱃사람이던 아버지가 사고로 죽은 뒤 그의 곁에는 어머니와 할머니, 고양이 ‘요’와 친구 준호,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 경민이 있다. 어느 날 낡은 등대에 들어가 놀던 남우는 낯선 환상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곳에는 물고기새가 날아다니고 구름처럼 큰 개가 살고 있다. 그곳에서 만난 소녀 마리는 온몸이 보드라운 흰털로 뒤덮인 신비한 모습으로 남우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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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도 몇 번쯤 남우는 이 환상의 세계를 드나든다. 무릉도원인 양 아름다운 풍경에도 입이 벌어지지만, 이에 못지않게 남우의 일상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목욕탕에서 친구와 물장구치고, 모기장 안에서 밤늦도록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엄마를 좋아하는 아저씨에게 괜히 무뚝뚝하게 굴면서 남우는 점점 성장해 간다.

시간이 흘러 도시의 샐러리맨이 된 남우. 어느 날 옛 친구 준호가 찾아온다. 어릴 적 얘기를 하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이들에게 추억은 어떤 의미일까. 별 감동 없이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우리 모두에게 이런 소중한 추억은 하나쯤 있는 것 아닐까. 그리움처럼, 희미한 꿈처럼 남아 있는 오래된 기억을 꺼내 보여주는 ‘마리이야기’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서랍을 정리하다 발견한 한 장의 사진처럼 그렇게 반갑고 또 그리운 ‘그 무엇’이 이 영화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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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액션 위주 애니메이션의 자극적인 원색을 배제한 새로운 영상미는 ‘마리이야기’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성강 감독 스스로 색상표에서 꼼꼼하게 조합해낸 색조로 영상을 채색해 파스텔톤 팬터지를 만들어냈다. 유화와 수채화를 섞어놓은 듯한 ‘마리이야기’의 색은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청회색, 녹회색, 황회색 등 잿빛을 기조로 파스텔톤 음영을 덧입힌 환상적인 색채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색의 향연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조명 : 실사영화에서는 조명 기자재를 사용해 실제의 빛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데 반해 애니메이션에서 빛은 어려운 과제 중 하나다. ‘마리이야기’는 3D 작업을 통해 실사영화 같은 입체적인 조명을 구현했다. 비 오는 날, 맑은 날 등 장면의 느낌에 맞게 빛을 모으거나 퍼뜨렸고 주인공의 감정 상태에 따라 조명의 은은함을 조절했다.

★캐릭터 : ‘마리이야기’의 인물들은 이제까지 우리가 익숙했던 애니메이션 캐릭터들과 전혀 다르다. 눈, 코, 입이 과장되지 않고 늘 만나는 얼굴처럼 친근하고 정겹다. 고양이 ‘요’는 제작팀 스튜디오에서 키우던 고양이의 모습에서, 마리의 얼굴은 스태프 중 한 여자 애니메이터의 얼굴에서 따왔다. 캐릭터 작업 이전에 이감독은 스태프들에게 캐스팅 디렉터의 역할을 주문했는데, 그들이 촬영해 온 수십장의 사진 중 선발된 사람들을 캠코더로 촬영해 영화 속 인물을 하나씩 창조해냈다.

★로케이션 : ‘마리이야기’에 등장하는 풍경들은 그저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실제 스태프들이 전국을 발로 뛰어 발굴해낸 장소들. 영화의 배경에 걸맞은 한적한 어촌을 찾기 위해 스태프들은 전국 각지의 어촌을 헤매다 포항 인근의 감포 바닷가 마을을 선택했다. 그러나 집 모양은 주택가의 따뜻한 모습이 필요했기에 서울 주택가를 수배한 끝에 백련사 주변 동네를 촬영해 배경작업을 했다.



주간동아 317호 (p80~81)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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