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7

2002.01.10

유럽엔 숨을 곳이 없다

EU 15개 회원국 공동체포영장 사용 합의 … 주요 32개 범죄 혐의자 신속 인도키로

  • < 안병억/ 런던 통신원 > anpye@hanmail.net

    입력2004-11-04 13: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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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엔 숨을 곳이 없다
    유로화 도입으로 경제통합이 이루어진 유럽이 사법통합을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지난해 12월14일부터 이틀간 벨기에 라켄에서 열린 EU 정상회담 직전, 15개 회원국의 내무·법무 장관들은 특정범죄 용의자에 대해 공동체포영장을 사용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유럽연합 15개 회원국은 범죄인 인도협약을 맺은 회원국끼리만 범죄 용의자를 인도해 왔다. 이는 어디까지나 두 나라 간의 합의에 바탕을 둔 양자관계에 불과하다. 그래서 지난 1995년 마약과 테러용의자 등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유럽 경찰, 즉 유로폴(Europol)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개인정보 누출에 대한 우려와 범죄인 인도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소재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어 유로폴의 활동은 적잖은 제약을 받아왔다.

    이번에 채택한 공동체포영장을 통해 이 같은 문제점은 일단 사라지게 되었다. 테러리스트와 금융사기, 부패, 조직범죄, 아동에 대한 성적 학대, 무기거래, 마약밀매 등 32개 범죄 용의자에 대해 한 회원국이 발부한 체포영장이 다른 모든 회원국에서 그대로 통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장을 실행하는 데는 시일이 더 필요하다. 현재 독일과 포르투갈의 헌법이 자국민의 타국 인도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회원국은 상충되는 법률을 수정하고 의회의 비준을 받아 2004년 1월1일부터 이를 도입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유럽연합에서 사법분야의 통합은 범죄 혐의자에 대한 정보교환 정도에 머물렀다. 그러나 지난해 9월11일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테러는 사법분야에서 유럽통합을 촉진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테러 직후 긴급 회동한 15개 회원국 정상은 각국의 내무·법무 장관에게 공동체포영장 채택 문제를 신속히 합의하도록 지시했다. 이후 공동체포영장 도입은 급류를 탔다.

    공동체포영장 도입에 장애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 정부는 32개 대상 범죄 가운데 금융사기 등을 제외한 6개 항목에만 공동체포영장을 도입하자는 입장을 취했다. 표면적 이유는 인권침해 우려. 하지만 언론은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EU 통합에 반대하는 연립정부 내의 정당이 공동체포영장 도입을 반대했다고 분석했다.



    이탈리아의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는 베를루스코니 총리 자신이 부패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에 금융사기 등 대상 범죄를 대폭 줄이려 한다며 비판했다. 독일 등 다른 회원국에서도 이탈리아에 대해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이탈리아 정부는 결국 국내외 압력에 굴복해 공동체포영장 도입에 찬성했다.

    사실 공동체포영장이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은 이탈리아에서만 제기된 문제가 아니다. 영국에서도 이 영장의 도입이 인권침해와 주권상실로 가는 길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유럽통합에 반대하는 의원들의 모임인 브뤼제 그룹은 ‘경제분야에서 유럽통합이 너무 많이 진전된 상황인데 국가의 고유 영역으로 간주돼 온 내무·사법 분야까지 유럽통합이 진전되는 것이 경악스럽다’는 반응이다. 이처럼 도입단계부터 갖가지 우여곡절과 우려의 목소리가 큰 공동체포영장이 시행에 들어가면 그 파장과 부작용은 한층 커질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공동체포영장이 사법분야에서의 유럽통합을 한 단계 앞당겼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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