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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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에 찾아든 ‘불안한 평화’

전란 끝났지만 종족간 반목·치안 부재·지뢰 등 당면 과제 산더미

  • <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 kimsphoto@yahoo.com

    입력2004-11-03 15: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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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간에 찾아든 ‘불안한 평화’
    20년 전란에 만신창이가 된 아프간 땅에 이제 평화가 깃드는가. 지난해 12월 말 수도 카불에 임시정부가 들어섬으로써 아프간은 전환점을 맞았다. 하자미 카르자이를 우두머리로 한 임시정부에 주어진 과제는 간단치 않다. 무엇보다 국가 재건이란 큰 틀 속에서 민생을 살리는 게 급선무다. 6개월 한시(限時) 정부의 태생적 한계를 지녔지만, 아프간 국민의 기대는 크다. 그러나 안으로는 파벌간 반목, 피폐한 국가체계의 재정비, 탈레반 잔재 청산과 치안확보, 지뢰 제거 등이 카르자이 임시체제가 짊어진 버거운 짐들이다.

    하지만 카르자이 과도체제는 출발부터 조짐이 좋지 않다. 카불 시내 내무부 청사에서 열린 임시정부 출범식에 참석하려던 아프간 남부 파크티아 지방 부족 지도자 등 65명이 미군의 오폭으로 떼죽음을 당한 사건 때문이다. 진상을 조사하고 있지만, 단순한 오폭이 아니라 아프간의 내부 갈등이 낳은 인재(人災)일 공산이 크다. 어떤 세력이 미군의 힘을 빌려 그들을 죽이려 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 사건 뒤 아프간 현지 CIA 요원들은 그동안 달러 뭉치를 안기며 고용해 온 외부 협력자들의 성향을 은밀히 재점검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 사건은 뿌리 깊은 종족간 반목과 불신이 카르자이 과도정권의 골칫거리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프간은 종족분쟁의 나라라는 악명을 지녔다. 최대 종족은 탈레반 정권의 지지기반이 돼온 파슈툰족(38%)이지만, 북부동맹을 구성했던 타지크족(25%), 하자라족(18%), 우즈베크족(8%) 외에도 여러 군소 종족이 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역사적ㆍ종교적 배경(하자라족은 시아파 회교도, 나머지는 수니파)을 바탕으로 지난 20년간 내전을 거치며 이합집산을 거듭, 유혈충돌을 벌였다. 이를테면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의 후예인 우즈베크계는 군벌인 압둘 라시드 도스툼 장군의 지휘로 이번 아프간전에서 전략 요충지인 마자르이샤리프를 점령해 탈레반군 패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우즈베크 군벌은 1980년대 구소련군과의 내전에선 소련군 편에 서서 아프간의 타 종족들과 맞서 싸운 전력이 있다.

    그동안은 북부동맹의 이름 아래 반(反)탈레반 연합전선을 펴왔지만, 탈레반이 사라진 마당에 북부동맹 내부에서 주도권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수반인 카르자이는 파슈툰족이지만, 과도정부의 주축은 북부동맹 주력군이었던 타지크족이 차지한 모양새다. 국방ㆍ외무ㆍ내무 등 주요 직책은 모두 타지크족 출신. 그래서 도스툼 장군은 “과도정부 지분 배정에서 푸대접을 받았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과도정부 출범 이틀 뒤 카르자이가 도스툼을 국방차관에 임명한 것은 이런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려는 뜻으로 풀이됐다. 그렇지만 반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카불 파괴자’란 악명을 지닌 도스툼을 요직에 앉힌 것은 지역 다수종족인 파슈툰족의 반감을 가져올 악수라는 분석이다.

    문제는 앞으로 줄줄이 있을 자리 배분에서 도스툼류(流)의 불만들이 잇따라 터져나올 가능성이다. 카르자이로선 인재를 제자리에 앉히기보다 세력 안배에 더 신경 써야 할 판이다. 군벌들이 사병으로 거느린 병력을 아프간 국군으로 재편하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다.



    군벌들 뒤엔 외세의 입김도 도사리고 있다. 파슈툰족은 탈레반 정권을 지지해 온 파키스탄이, 하자라족은 같은 시아파인 이란이, 타지크족은 타지키스탄ㆍ러시아ㆍ인도가, 우즈베크족은 우즈베키스탄과 러시아가 배후세력이다. 여기에 10·7 공습을 출발점으로 세계적 패권을 서남아시아에서 관철하려는 미국이 영국과 손잡고 아프간에 상륙했다. 큰 그림을 그린다면, 미국ㆍ파키스탄ㆍ러시아 3국이 아프간의 주도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셈이다. 선두주자는 미국. 1990년대 내내 버려뒀던 카불 시내 미 대사관 문을 연 미국은 전승국답게 카르자이 과도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들 기세다.

    어쨌든 카르자이의 최대 과제는 민생 안정이다. 그러려면 돈줄이 필요한데, 아프간 국영은행 금고는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약탈당해 텅 비었다. 지난해 12월 열린 아프간 복구지원 국제회의는 유엔개발계획(UNDP) 주도로 카르자이 과도정부의 초기 운영자금을 지원할 것과 장기개발계획을 수립할 것에 합의했다. 그러나 아직 구체화한 것은 아니다. 이 회의에서 카르자이 정권에 당장 필요한 사무집기, 컴퓨터 등을 사들이고 공무원 급료를 마련하기 위해 미국ㆍ영국ㆍ독일ㆍ이탈리아ㆍ일본 등이 각각 100만∼200만 달러씩 내놓겠다고 약속했지만, 아프간 재건을 위해선 턱없이 부족하다.

    아프간 재건엔 얼마나 많은 돈이 들까. 세계은행과 UNDP는 아프간 재건 비용으로 앞으로 30개월간 적어도 20억∼30억 달러가 들 것으로 본다. 전기ㆍ수도 등 인프라 건설을 비롯해 아프간 재건에 향후 5년간 90억 달러 이상이 필요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아프간보다 훨씬 작은 나라인 보스니아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보아 아프간 재건에는 그보다 훨씬 큰돈이 들 것으로 생각한다. 1995년 내전을 끝낸 보스니아의 경우 지난 5년간 국제사회에서 50억 달러가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그런데도 수도 사라예보에는 옛 국회의사당 건물을 비롯해 시커먼 포탄 구멍을 드러낸 채 버려진 공공건물이 수두룩하다. 일부 서방 평론가들은 보스니아 관리들의 부패가 그런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아프간 사회의 도덕 불감증도 널리 알려진 바다. 탈레반 정권이 한때나마 국민의 지지를 받은 것은 하급관리와 군인들의 독직(瀆職)과 부패를 일소하려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그런 노력이 너무 지나쳐 국민의 일상생활까지 옥죄는 쪽으로 흘러버린 게 탈이지만). 도덕 불감증은 국제사회의 원조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탈레반 구체제 청산이 장기과제에 속한다면, 치안 확보는 당장 시급한 문제다. 아프간전 취재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외국 기자는 8명. 이중 3명은 북부동맹과 탈레반군이 한창 공방을 벌인 지난해 11월 초 탈레반군의 기습공격으로 죽었지만, 나머지 5명은 카불 함락 뒤 소속을 알 수 없는 무장괴한들의 총에 희생됐다. 말하자면 떼강도를 만난 것이다. 이런 무장괴한들이 아프간 곳곳에 득실거린다. 과도정부 출범과 때를 맞추어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 따라 영국군을 주축으로 한 3000명 규모의 국제안보지원군(ISAF) 병력이 순찰활동을 강화할 채비를 하지만, 주둔지는 카불 시내로 제한돼 있다.

    아프간에 찾아든 ‘불안한 평화’
    지뢰 제거 역시 풀어야 할 숙제다. 유엔의 추산으론 700만∼800만개의 지뢰가 아프간 국토에 널려 있다. 20년 내전과정에서 구소련군과 무자헤딘(이슬람 전사)들이 묻어놓은 것이다. 매설 지점을 알려주는 지뢰지도조차 없다. UNDP와 세계은행이 2001년 6월에 펴낸 ‘아프간 지뢰의 사회·경제적 영향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간의 지뢰밭을 대충이나마 없애려면 7∼10년이 걸린다. 국제지뢰금지운동(ICBL)은 적어도 400년이 지나야 아프간 땅에 뿌려진 지뢰를 모두 제거할 수 있다고 추산한다. 10·7 공습 이래 미 공군이 아프간에 뿌린 집속탄(Cluster Bomb) 중 불발탄도 아프간 국민에겐 위협적이다.

    부시 행정부는 현재까지 아프간 재건보다 오사마 빈 라덴 추적과 알 카에다 잔당 처리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1980년대 내전에 개입한 소련군 패퇴와 더불어 미국은 아프간을 외면했다. 카불의 미 대사관 재개와 더불어 이제는 묵은 빚을 갚을 때가 됐다. UNDP를 통해서든, 미국 독자적으로 돕든 그 방식이야 부시의 선택 사항이다. ‘테러와의 전쟁’ 비용으로 계상한 달러의 10%만 떼어줘도 아프간은 눈에 띄게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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