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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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말리는 ‘성형수술’ 경품 공세

인터넷업체·성형외과 연합 이벤트 범람 … 구전 효과·회원정보 노린 마케팅에 반응 폭발

  •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입력2004-11-03 1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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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 말리는 ‘성형수술’ 경품 공세
    ‘사람은 첫인상이 중요한데, 제 눈이 사납게 생겼습니다’(ID 김쭛쭛) ‘학생인데, 그것도 중학생… 그러면 이유야 어떻든 제외죠? 진짜 하고 싶은데…’(ID 백쭛쭛) ‘이벤트 당첨되면 어찌해야 하나요? 집으로 티켓이 날라오나요?’(ID 생크오렌지)

    성형전문사이트 ‘체인지’(www. change.co.kr) 게시판에 네티즌들이 올린 경품 이벤트 관련 질문이다. 경품은 다름 아닌 무료 성형수술. 성형수술은 요즘 여성 마케팅에선 부동의 ‘0순위’를 고수하는 ‘경품 중 경품.’ 평소보다 2∼3배 많은 환자가 몰리는 성형 성수기인 방학과 매출 극대화에 총력을 다하는 인터넷 업체들의 ‘연말 대전(大戰)’이 겹치면서 최근 성형수술을 경품으로 내건 이벤트들이 인터넷에 범람한다.

    그중 압권은 e현대백화점(www.e-hyundai.com)의 ‘신데렐라 대축제Ⅱ’. 2001년 12월10일∼2002년 1월13일까지 실시하고 있는 이 이벤트의 응모자는 12월28일 현재 3만여명. 2001년 2월 치른 1회 행사 때 무료 수술을 받은 당첨자 5명의 소감을 사이트에 올려놓은 덕에 당시보다 응모자가 10배 늘었다. 이번 이벤트의 당첨자 1명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성형을 받을 수 있고, 175명은 눈ㆍ코ㆍ입ㆍ얼굴윤곽ㆍ피부ㆍ가슴 등 희망부위 한 곳의 성형수술을 무료로 시술받는다.

    이런 경품 수술엔 문제가 없을까. 현대백화점과 공동으로 ‘신데렐라 대축제’를 진행하고 있는 병원마케팅컨설팅 업체 윌비닷컴(www.willbi.com) 관계자는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이들은 이벤트에 비판적인 ‘보수적’ 시각에 개의치 않는다”며 “수술은 희망자에 한하고, 사전에 전문의 심사를 거치므로 후유증 등 수술 부작용은 걱정없다”고 공언한다.

    2000년 11월 개설 이후 매월 가입회원을 추첨, 병원경품을 제공하는 경품사이트 우아넷(www.wooa.net)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안과 및 성형외과와 연계해 라식(300만원 상당)ㆍ코성형(150만원)ㆍ쌍꺼풀(120만원)ㆍ유방확대(500만원 중 본인부담 150만원) 수술 경품권을 주는 이 업체는 한걸음 더 나아가 제휴한 회원사(병ㆍ의원)에게서 홍보비 명목으로 받은 돈으로 경품 비용을 충당한 뒤 사이트상에서 모집한 희망회원의 단체할인 성형수술을 ‘회원사’에 주선하는 ‘의료 공동구매’까지 실시하고 있다. 우아넷측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할 뿐”이라며 “‘공구’(공동구매)는 120만원대인 쌍꺼풀 수술비를 50만∼60만원대까지 낮추는 등 ‘거품’을 빼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고 자찬한다.



    진료행위가 ‘경품화’한 사례는 이 밖에도 많다. 2001년 7월 유방축소수술 경품 이벤트를 벌인 뷰티클리닉(www.beauty.clinic.co.kr)은 개설 1주년을 기념, 같은 해 9월24일∼12월30일까지 자체 추천 성형외과에서 성형수술을 받은 회원에게 수술비 일부를 지원해 주는 이벤트를 열었다.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26)가 발급받아 유명해진 국민카드의 여성전용카드 이퀸즈(eQueens) 역시 매월 현금서비스 고객 20명을 추첨해 라식ㆍ성형 수술비 등을 경품으로 준다.

    국세청 과세자료로만 연간 5000억원, 음성적 매출까지 감안하면 1조원대로 급팽창한 미용성형 시장답게 헤어스타일 바꾸듯 성형을 부추기는 이벤트는 그칠 줄 모른다.

    왜 이런 경품 이벤트가 성행할까. 윌비닷컴측은 “회원정보 수집이 목표”라고 답한다. 즉 사이트 운영업체는 이벤트를 통해 다수의 회원정보를 확보하고, 이벤트 참여 병ㆍ의원은 이들 업체가 설문조사한 고객 데이터를 건네받는 한편, 경품 수술을 받은 환자들에게 구전(口傳)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 따라서 이벤트에 참여하는 네티즌들에게 회원가입과 이벤트 참가 사연(주로 성형수술을 받으려는 이유) 기재는 필수사항이다.

    개원 경력 13년 된 한 성형외과 전문의(서울 청담동)는 “사무장 등 영업책을 고용한 기존 환자유치 경쟁에 대한 보건당국의 제재가 강화되면서 경품 수술이 동원되고 있다”며 “이해가 맞아떨어진 성형외과들과 인터넷 업체 간 ‘연합전선’ 구축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전망한다.

    이를 방증하듯, 성형컨설팅 회사를 직접 경영하는 전문의까지 있다. C사이트 대표이기도 한 K성형외과(서울 압구정동) J원장은 “최근 실시한 성형 이벤트 당첨자들과 수술일정을 잡고 있다”며 “수술비를 병원이 대지 않고 사이트 운영업체가 부담하므로 문제 될 건 없다”고 말했다. K성형외과는 한 통신서비스 업체가 주관하는 경품 수술 이벤트도 후원하고 있다.

    문제는 경품 수술이 적지 않은 역기능을 지녔다는 점. 가장 큰 문제는 불필요한 성형수술을 조장한다는 점이다. 별반 관심 없던 사람도 일단 성형수술을 받고 나면 다시 마음에 들지 않는 신체부위가 눈에 들어오게 되고 이는 곧잘 성형수술을 맹신하는 강박증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 실제 한 번 이상 성형수술을 받은 성형 환자가 상당수며, 구매력이 왕성한 20∼30대 여성 중엔 성형중독환자도 적지 않다는 게 전문의들의 귀띔이다.

    못 말리는 ‘성형수술’ 경품 공세
    또 다른 문제는 경품 수술엔 환자보호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점. 성형수술의 95%는 멀쩡한 몸에 칼을 대는 미용성형. 여기에 성형수술 의료사고 위험은 일반 외과수술의 1.6배로 알려져 있어 자칫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공짜 수술’인 탓에 원활한 피해보상이 쉽지 않다. 수술비를 환자가 부담하는 ‘공동구매’의 경우도 대량 수술로 인한 부작용의 위험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병ㆍ의원들이 이미지 실추를 우려해 쉬쉬하며 피해 환자와 ‘합의’를 서두르는 성형 의료사고의 특성상 성형수술의 부작용이 표면화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인터넷엔 수술결과에 대한 불만을 공유하는 동호회까지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의뢰된 성형 불만 상담은 2001년 12월27일 현재 1255건. 2000년 한 해의 789건에 비해 크게 늘었다. 그럼에도 아직 경품 수술 불만은 접수된 적이 없다. 왜 그럴까. 소보원 안현숙 상담팀장은 “경품 수술은 소비자가 직접 유료 대가를 지불한 소비행위가 아니므로 전혀 피해구제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 못박는다.

    사정이 이렇지만, 전국 600여 성형외과 개원의 중 95%가 회원으로 가입한 대한성형외과개원의협의회는 경고조치만 반복할 뿐이다. 경고란 말 그대로 ‘비윤리적 진료행위’에 대한 ‘주의’ 수준의 시정조치. 협의회 국광식 공보이사(43)는 “협의회 윤리위원회가 매월 허위ㆍ과대 광고 및 경품제공 행위를 적발, 심의한 뒤 해당 의원 및 전문의 성명 등을 협의회 소식지에 공개해도, 경험이 일천하거나 환자 유치를 일삼는 일부 전문의들이 경품을 상습적으로 제공한다”고 털어놓는다.

    보건복지부의 견해는 어떨까. 의료법 25조는 ‘누구든지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 또는 의료인에게 소개·알선 기타 유인하거나 이를 사주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자격정지 2개월의 행정처분과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복지부 의료정책과 관계자는 “병ㆍ의원이 직접 경품 이벤트를 개최하거나 이벤트업체에 병ㆍ의원명을 내걸고 경품을 제공하면 명백히 의료법 위반행위다. 그러나 이벤트업체를 중간에 끼고 병ㆍ의원명을 숨긴 채 경품 수술을 해주는 편법을 동원할 경우 사실법 위반의 잣대인 ‘영리 목적’의 유무를 가리기가 애매하다”고 밝힌다. 결국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판단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편법은 ‘업그레이드’될 수밖에 없다.

    경품 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공통된 소감은 “자신감을 되찾았다”는 것. ‘경품=자신감’이란 등식마저 성립하는 셈이다. ‘성형수술은 진료행위가 아니라 경품’이라는 광고카피가 등장할 날도 머지않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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