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5

2001.12.27

설원의 폭주족 ‘스릴 만끽’

  • < 허시명 / 여행작가> storyf@yahoo.co.kr

    입력2004-12-14 15:3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설원의 폭주족 ‘스릴 만끽’
    스노보드는 자유를 타고 간다. 스키처럼 백설 위를 놀지만, 스키가 감히 넘볼 수 없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 마력은 자유로움에서 생겨난다. 뛰고, 비틀고, 회전하고, 현란하고 용맹하다.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스케이트 보드의 기술이 그 안에 있고, 더 멀리는 파도타기 기술이 들어 있다.

    스노보드의 역사는 짧다. 스포츠 산업의 발달이 선사한 놀이이자 운동이다. 스노보드는 1960년경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원래 겨울 사냥을 하던 이들이 이동 수단으로 삼던 발판을 개량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견해도 있다. 서핑보드(파도타기)를 즐기던 사람들이 땅에서 놀고 싶어 스케이트 보드를 만들었고, 스케이트 보드를 타던 사람들이 눈 위에서 놀고 싶어 스노보드를 만들었다고 한다. 정확한 가계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기술력의 승계는 그렇게 이어져 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80년대 후반에 스노보드가 도입되었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스키장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힙합바지처럼 헐렁한 옷차림도 못마땅하고, 회전할 때면 부욱부욱하는 보드 마찰음도 거슬리고, 회전 동작도 커 접촉사고율도 높았다. 그래서 불청객으로 문전박대를 받았다. 그러다 90년에 무주리조트 스키장이 개장하면서 스노보드가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본격적인 스노보드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자 전국의 스노보더들이 무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시새워 경쟁하면서 독자적인 스노보드 문화를 형성해 갔다.

    그 즈음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스키를 배우러 무주를 찾아왔다. 그들은 처음 타는 스키라 서툴렀다. 벙거지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썼지만 팬들의 눈길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왕 웃음거리가 될 거라면 남들이 안 하는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자고 했다. 그게 스노보드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두 달 가량 무주리조트를 드나들면서 스노보드에 매료되었다. 그 스노보드가 마침내 그들의 마음을 지나 음악 속에까지 파고들었다. 그들의 무대복은 다름 아닌 스노보드 복장이었다. 화려한 원색에 헐렁한 스노보드 복장은 뛰고 흔들고 춤추기에 적합했고, 개성 있는 취향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거꾸로 스노보드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만나 한국 땅에서 자유와 젊음을 대변하게 되었다.

    설원의 폭주족 ‘스릴 만끽’
    스노보드의 판(플레이트)은 기능과 생김새에 따라 크게 프리 스타일 보드, 알파인 스타일 보드, 올 라운드 스타일 보드로 나뉜다. 프리 스타일 보드는 부드럽고 넓어, 뛰고 날면서 자유로운 동작을 취할 수 있다. 그에 견주면 알파인 스타일은 좁고 딱딱한데 속력을 내기에 좋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이러한 보드 개념의 하나인 ‘프리 스타일’(Free style)을 노래 제목으로 삼기까지 했다.



    “하얗게 내린 눈 위로 날아가듯 내 꿈에 큰 날개를 달고서/ 더 넓은 나의 미래를 약속하듯 세상은 눈부시게 빛나고 있어.”

    ‘프리 스타일’의 후렴구다. 서태지와 아이들 덕분에 스노보드는 젊은 층에 빠르게 보급되었다. 그래서인지 현재 스노보드를 즐기는 층은 주로 20, 30대다.

    설원의 폭주족 ‘스릴 만끽’
    스노보드는 전용신발과 판(플레이트) 그리고 신발을 고정하는 바인딩으로 구성돼 있다. 이 세 가지를 갖추면 스노보드를 탈 수 있다. 복장은 방수가 잘 되는 것이라야 한다. 스노보드는 멈추면 신발을 풀어야 한다. 신발을 다시 묶기 위해서는 바닥에 주저앉게 된다. 그래서 엉덩이나 무릎 부위는 스키복보다 더 방수가 잘 돼야 한다. 바지는 헐렁해야 한다.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기 위해서다. 그리고 안전을 위해 선글라스가 아닌 고글(잠수안경처럼 눈과 눈썹 부위를 넓게 덮는 안경)과 모자를 써야 한다. 스노보드는 게처럼 옆으로 움직이지만, 앞뒤로 쉽게 넘어지기 때문에 얼굴과 뒤통수를 다치게 된다. 고글은 얼굴을 보호하고 모자는 머리를 보호해 준다. 그리고 장갑을 낀다.

    초보자가 두 발을 보드 위에 올려놓고 설 수 있다면 일단 성공이다. 이때 머리와 어깨, 엉덩이와 무릎이 보드와 일직선에 놓여 있어야 한다. 바닥을 보려고 고개를 숙이거나 엉덩이를 뒤로 빼서는 안 된다. 양팔은 솔개가 날개를 편 것처럼 자연스럽게 벌린다. 그러면 균형을 훨씬 잘 잡을 수 있다. 좀더 능숙해지면 굳이 팔을 높게 들지 않아도 된다. 보드가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앞발에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 이때 시선은 진행 방향을 향한다.

    전문 강사에게 4시간 정도 지도받으면 회전하는 기술까지 배우게 된다. 회전은 머리에서부터 시작해 어깨와 허리 순서로 천천히 돌리면 발이 저절로 돌아가면서 이뤄진다. 다리로 보드를 무리하게 틀려 하지 말고, 체중을 자연스럽게 이동시키면 회전한다. 이 기술을 터득하면 비로소 슬로프에서 시계추처럼, 낙엽이 떨어지는 것처럼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내려올 수 있게 된다. 이쯤 돼야 비로소 혼자 탈 수 있고, 스노보드를 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적어도 이틀 정도는 훈련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점은 넘어지는 방법이다. 그 요령을 익혀두면 큰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뒤로 넘어질 때면 되도록 자세를 낮춰 엉덩이부터 닿게 하는데, 등 전체와 팔로 떨어져 충격을 줄이도록 한다. 앞으로 넘어질 때면 손을 먼저 땅에 짚지 말고 무릎부터 몸 전체로 떨어져 충격을 흡수한다.

    스노보더들은 속성상 속박되거나 틀에 묶이는 것을 싫어한다. 나만의 즐거움을 자유분방하게 향유하고, 늘 새롭게 도전 의식을 키우려 든다. 그래서 용평스노보드 학교 교장인 이용국씨는 “보드인 열 명이 모이면 열 명 다 의견이 다를 정도”라고 말한다. 그만큼 개성 있는 젊은이들이 심취하는 놀이다. 그래서 마니아들도 많다. 그렇다고 스노보드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젊은 열정을 불태우고 싶은 이라면 누구라도 도전해 볼 만한 매력 만점의 레포츠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