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5

2001.12.27

극소수만 즐겼던 풀 코스 ‘프랑스 정식’

  • < 백승국/ ‘극장에서 퐁듀 먹기’의 저자·기호학 박사 > baikseungkook@yahoo.co.kr

    입력2004-12-14 15: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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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소수만 즐겼던 풀 코스 ‘프랑스 정식’
    덴마크 바닷가의 작은 마을. 이 마을 사람들은 인간의 오감 중에서도 특히 미각을 억압하며 평생 살아온 사람들이다. 미각을 느낀다는 것이 이들에게는 곧 쾌락을 의미하기 때문에, 식사할 때도 음식에 소금조차 넣지 않고 조리법도 그저 단순하게 끓이는 것만으로 음식을 만들 정도다. 이 마을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는 맛을 느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영양 공급인 셈인데, 이들에게 맛을 음미한다는 것은 악마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요, 감각이 주는 기쁨을 누리는 것은 죄악이었던 것이다.

    폭풍우가 치는 어느 날 한 여인이 지친 모습으로 마을을 찾아온다. 그녀의 이름은 ‘바베트’. 그녀는 마을 사람 모두를 초대하는 만찬을 준비하고, 식탁에서 코스 요리가 하나둘 진행되면서 사람들의 굳은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화해와 해후하는 기적이 벌어진다. 만찬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헐뜯고 다투던 이들은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면서는 서로의 손을 잡고 노래부르는 것으로 그 특별한 만찬에 감사를 표한다.

    19세기의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은 “당신이 무엇을 즐겨 먹는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리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은 식성을 알면 그 사람의 인간성과 직업까지도 알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영화 ‘바베트의 만찬’을 보면 이 말을 공감하게 된다.

    영화에서 바베트가 마련한 만찬 풀 코스 요리의 이름은 ‘카이유 엉 사쿠파쥬’인데, 이 요리는 풀 코스 프랑스 정식 요리 중에서도 가장 고급요리에 속해 극소수의 왕실 귀족만 즐겼다는 얘기가 있다. 만찬이 끝난 뒤에야 바베트는 자신이 파리에서도 이름난 레스토랑 ‘카페 엉글레’의 수석요리사였다고 고백한다.

    영화의 배경이 된 19세기 프랑스는 혁명으로 귀족이 몰락하고, 그와 함께 귀족의 음식을 만들던 요리사들도 일자리를 잃게 된다. 수입이 없어진 그들은 돈벌이를 위해 시내로 나와 식당을 열고 귀족이 먹던 요리를 만들어 일반인에게 팔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프랑스에서의 레스토랑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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