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9

2001.11.15

보험도 ‘싼 게 비지떡’

카드사 권유 염가상품 ‘보장 범위 적고 예외조항은 많아’ … 약관 설명·본인 확인은 생략 일쑤

  • < 성기영 기자 > sky3203@donga.com

    입력2004-11-19 1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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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험도 ‘싼 게 비지떡’
    부천에 사는 A카드 회원 박모씨(39)는 지난 6월 카드회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월 보험료 3500원만 내면 교통사고로 사망하거나 후유장애가 발생할 경우 최고 5억원까지 보상받을 수 있는 보험에 가입하라는 영업사원의 전화였다. 보상액수에 비하면 매달 3500원의 보험료는 ‘거저 먹기’라는 생각에 별생각 없이 가입했고 박씨의 보험료는 매달 카드대금이 청구될 때 꼬박꼬박 빠져나갔다.

    박씨가 이 보험상품의 가입기간이 1년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가입기간이 끝났는데도 보험료만 꼬박꼬박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보험가입 후 1년이 지난 뒤였다. 보험료는 꼬박꼬박 내고 보험 혜택도 받지 못한 채 사고가 발생하면 보장받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씨는 카드사와 소비자보호원에 이의를 청구했고 카드사는 초과 납부 보험료 반환을 약속했지만 가입기간이 만료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초과 납부 보험료를 반환하지 않았다.

    또 다른 카드회사에서 비슷한 상품 가입 권유를 받은 최모씨(34)는 전화로 가입을 권유하는 영업사원에게 보험 약관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경우. 카드사의 영업사원은 월 9000원대의 보험료만으로 교통사고의 경우 본인 과실은 물론 뺑소니, 음주운전 등을 모두 보장한다는 ‘파격적’ 조건을 제시했다. 보장 내용에 마음이 끌린 최씨는 가입을 위해 약관을 보내달라고 요구했지만 “보험사가 아니라 약관을 보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듣고 가입 의사를 접었다. A카드사의 이 상품에 가입한 고객은 모두 25만명. 상해보험 단일상품 가입자치고 엄청나게 많은 규모다.

    이처럼 한 달에 1만원도 안 되는 저렴한 보험료로 수억원대의 보장을 내세운 염가 보험상품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1년 미만의 단기 보험이므로 보험금 지급 부담이 적고, 가입자 처지에서는 보험료가 얼마 되지 않는 데다 카드 대금이 빠져나갈 때 묻어서 빠져나가기 때문에 부담이 적어 시장 규모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계약이 본인 확인 과정도 생략한 채 전화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분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카드사들은 “주민등록번호 확인 등으로 본인을 확인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이런 염가 보험의 경우 대부분 보험 모집인 자격이 없는 텔레마케터들을 활용해 보험 가입을 권유하기 때문에 약관 설명이나 본인 확인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는 경우가 드물다. 특히 소비자단체들은 손해보험의 경우 과장광고를 남발하다 보니 정작 보험금 지급 사유가 발생했을 때 보장 대상 범위가 너무 적거나 예외조항이 너무 많아 낭패 보는 경우가 많다고 충고한다. 또 생명보험의 경우에도 가입자의 질환 여부나 과거 병력 등을 제대로 파악한 뒤 가입시켜야 하는데 최근 유행하는 염가 보험들은 대부분 전화로 가입받으면서 질병 확인 등의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보험금 지급 사유가 발생했을 때 ‘고지 의무 위반’을 들어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보험도 ‘싼 게 비지떡’
    최근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미끼보험’들도 소비자들이 약관 내용을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으면 선의의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 SK는 지난 97년 초부터 정유업계에서는 처음으로 SK 엔크린 보너스카드 회원들을 대상으로 무료 상해보험을 가입해 주고 있다. SK측은 동양·동부화재와 제휴해 엔크린 보너스카드 가입자 중 3회 이상 주유 고객을 대상으로 보험 가입 혜택을 준다. 이렇게 해서 상해보험에 자동 가입한 회원이 무려 570만명. 이들 상해보험 가입자는 교통사고로 사망하거나 후유장애가 발생할 경우 최고 1000만원까지 보상받을 수 있다. 회원 수 700만명에 이르는 LG의 시그마6 보너스카드 역시 포인트 적립 정도에 따라 교통상해보험 무료 가입 혜택을 주고 있다. 또 LG카드는 골프카드 회원을 대상으로 최고 1000만원의 골프보험과 휴일 골프장 왕복 교통상해보험에 각각 무료로 가입시켜 준다. 아멕스카드도 항공권을 구입할 경우 최고 10억원, 최장 45일간의 여행사고보험 무료가입 서비스를 해주고 있다. 일부 카드사에서는 최근 들어 여성전용 카드를 내놓으면서 무료 성형보험 혜택을 끼워팔기 상품으로 내놓아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기도 하다.

    미끼상품으로 무료보험 가입을 내세우는 것은 정유업계나 카드사뿐만이 아니다. 최근 통신판매로 의류를 구입한 주부 이경화씨(40)는 뜬금없이 차량탑승상해보험 가입 증명서를 받고서야 자신이 보험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씨가 물품을 구입한 회사가 외국계 B보험회사의 자회사로, 물품 구매와 동시에 B보험사의 보험에 가입하게 된 것.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작 보험에 가입한 사람들도 별로 관심이 없는 형편이다. 얼떨결에 보험 가입자가 된 주부 이씨는 “보험 가입 내용이 어떤 것인지도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말했다. 정유회사나 카드사, 통신판매 회사들이 제공하는 이러한 상해보험은 회원들조차 본인의 가입 여부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 게다가 어차피 자신의 주머니에서 보험료가 나가지 않는 이상 보험증권을 받고도 처박아두거나 폐기처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소비자단체에서는 자신이 회원으로 가입한 회사에서 보험료를 부담하는 이상 이 가격은 소비자들이 상품을 구매하는 가격에 포함되어 있는 만큼 꼼꼼한 확인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수라고 충고한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은 최근 이러한 무료·저가보험 가입으로 인한 분쟁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고 대비책 마련에 착수했다. 소보원 법무보험팀 관계자는 “광고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고 약관을 사전에 검토하지 않으면 싼 맛에 가입했다 나중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측도 카드사의 보험 가입 영업행위의 경우, 대부분 카드회사들이 계열 보험사들의 보험대리점으로 등록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삼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들이 주의하지 않는 한 나중에 피해를 구제받을 방법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싸구려 보험들 덕택에 ‘전 국민의 보험화’를 이루기는 했지만 정작 보험 가입자들이 이러한 명성에 걸맞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는 아직 의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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