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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생화학 테러 공포 미국 “나 떨고 있니”

핵 맞먹는 살상력, 구입 살포 용이 … 사람뿐 아니라 곡물에도 치명적 피해

  • < 이인식 / 과학문화연구소장 >

생화학 테러 공포 미국 “나 떨고 있니”

생화학 테러 공포 미국 “나 떨고 있니”
미국이 동시다발 테러 배후로 지목한 오사마 빈 라덴을 응징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복공격을 시작하면서부터 추가 테러에 생화학 무기가 사용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질병예방센터(CDC)는 파라티온(살충제)에서 겨자탄(독가스)에 이르기까지 20여 가지 화학물질을 테러리스트들이 공격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화학무기는 원재료를 구하기 쉽고 보관이 용이하므로 테러리스트들이 군침을 삼킬 수밖에 없다.

화학무기 테러의 위력은 1995년 일본의 신흥 종교집단인 옴진리교에 의해 입증되었다. 95년 3월20일 출근시간에 옴진리교 신도들이 신경가스인 사린을 도쿄 지하철에 방출해 수천 명이 병원에 실려갔으며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가 의외로 적은 까닭은 옴진리교가 신경가스를 살포하는 기술이 미숙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요컨대 화학무기는 기술적으로 넓은 지역에 피해를 주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인명을 대량살상하려면 농약살포 비행기 같은 수단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농약살포 비행기로 화학무기를 낙하하더라도 고도를 낮추어야 한다. 하늘 높이 비행할 경우 화학무기가 지상에 닿기도 전에 증발해 수천 명은커녕 수십 명도 해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공중 분무장치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생화학 테러 공포 미국 “나 떨고 있니”
비행기에서 화학무기를 분무해 본 경험이 있는 나라는 이라크다. 1980년대 겨자탄과 VX(신경가스)로 쿠르드족을 공격한 적이 있다. 96년 이라크는 수단에 VX 생산공장을 건설했다. 수단 수도인 하르툼 근처에는 빈 라덴의 지시를 받는 테러리스트들을 위해 화학무기를 개발하는 공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98년 8월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에 자살폭탄테러가 있은 후 미국은 이 화학공장을 폭파했다.



그러나 미국정부는 이 공장에서 화학무기를 생산한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자료를 끝내 내놓지 않았다. 어쨌든 미국 전문가들은 걸프전 직후 이라크가 겨자탄을 모두 수단으로 옮겨 놓았기 때문에 빈 라덴의 수중에 상당량의 화학무기가 있는 셈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빈 라덴의 테러조직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화학무기를 사용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생물무기는 화학무기보다 질량 대비 수십만 배나 강력한 파괴력을 갖고 있다. 미국질병예방센터는 국가 안보에 위협을 줄 만한 생물무기로 탄저병, 보툴리누스, 페스트, 천연두, 툴라레미아, 바이러스성 출혈열(VHF) 등 6가지 병균을 꼽는다. 이중 단연 인기가 높은 것은 탄저균이다. 탄저병은 원래 소나 양 따위의 가축에 발생하는 전염병이다. 탄저균에 감염된 가축은 입과 직장의 출혈로 심한 패혈증을 일으켜 2~3일 안에 죽는다. 탄저균 자체는 사람에게 전염성이 약하므로 거의 질병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탄저균이 만드는 포자를 사람이 흡입하면 탄저병에 걸린다. 약 1만 개의 포자가 허파 깊숙이 들어가는 림프절로 이동한 뒤 발아하여 증식한다.

이 세균들이 분비하는 독소로 말미암아 열과 기침, 가슴 통증이 시작된 뒤 차츰 호흡곤란과 오한 증세를 보이는데, 감염 뒤 24~36시간 이내에 사망한다. 탄저균이 생물무기로 각광받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살상능력이 위력적이다.

탄저병 발병 뒤 첫날 안에 항생제를 다량 복용하지 않으면 80% 이상 죽는다. 또한 핵무기에 버금가는 대량살상 능력이 있다. 탄저균 100kg을 대도시 상공 위로 저공비행하며 살포하면 100만~300만 명을 죽일 수 있다. 1메가톤의 수소폭탄에 맞먹는 살상 규모다. 빈 라덴이 보툴리누스균은 동부 유럽에서, 탄저균은 인도네시아에서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10월 초부터 탄저병에 감염된 환자가 잇따라 발생하고 정체불명의 하얀 가루가 우편으로 배달되는 사례가 미국 전역에서 연거푸 일어남에 따라 테러리스트들의 소행이 아닌지 긴장하고 있다.

이번 탄저균 감염 사태는 25년 만에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이 공포에 떨 만도 하다. 생물무기는 사람뿐 아니라 농산물을 대규모로 파괴할 수 있다. 곡물에 질병을 일으키는 생물무기는 오래 전부터 전쟁용으로 연구됐으며 테러용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갈수록 증대하고 있다. 농산물 손상 등 생물무기의 잠재력은 자연발생한 곡물 질병의 피해 사례에서 유추할 수 있다.

우선 인명 파괴 측면에서 여느 생화학 무기 못지않다. 1845년 아일랜드에서 감자의 엽고병(잎마름병)으로 기근이 일어나 100만 명이 죽고 100만 명이 나라를 떠났다. 1942년 인도의 벵골에서 벼의 질병으로 2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었다.

곡물 질병에 의한 경제적 손실 역시 만만치 않다. 예컨대 70년 미국 남부에서 엽고병으로 10억 달러 상당의 곡물이 고사했다. 생물무기로 개발되는 곡물 질병은 흑수병(깜부기병)과 녹병이다. 흑수병은 곡식의 이삭이 흑수균에 의해 검게 되어 깜부기가 되는 병이다. 녹병은 식물의 잎이나 줄기에 갈색의 가루가 덩어리로 생기는 질병이다. 미국은 1940년대부터 69년 닉슨 대통령이 생화학 무기 개발 중단을 선언할 때까지 소련 우크라이나 곡창지대의 밀과 중국 평야의 벼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녹병균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라크는 걸프전을 치르면서 깜부기병균을 무기로 상용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의 주식인 밀을 공격할 생각이었다.

생명공학의 발달로 곡물을 파괴하는 생물무기 개발이 용이해짐에 따라 테러리스트들의 수중에 이미 들어갔을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먹거리에 세균이 침투했다는 소문이 나돌 때 어느 나라든 큰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목적을 가진 테러리스트들이 노리는 것은 사회 불안이므로 곡물을 겨냥한 테러 무기를 외면할 까닭이 없을 터다.

지난 7월 하순, 미국의 국가안보 전문가들은 하원의원들에게 미국 영토에 대한 생물테러 공격으로 국가가 불과 수주일 안에 붕괴의 벼랑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생물테러를 가상한 모의훈련 이름은 ‘검은 겨울’이었다. 올 겨울 미국인들이 생물테러의 위협 앞에 전전긍긍하는 딱한 처지가 되지 않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주간동아 2001.10.25 306호 (p68~69)

< 이인식 / 과학문화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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