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6

2001.10.25

“참을 수 없는 세금, 정말 열받네”

‘유리지갑’ 김과장의 세금 이야기 … 자영업자와 비교 ‘상대적 박탈감’ 더 문제

  • < 성기영 기자 > sky3203@donga.com

    입력2004-12-31 1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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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을 수 없는 세금, 정말 열받네”
    올해로 중견 의류회사에 8년째 다니는 김인표 과장(가명·34)의 내년도 결심 중 하나는 이제부터라도 기필코 자신이 내는 세금을 꼼꼼히 챙겨보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얼마 전, 내년부터 봉급생활자들의 세금을 10%씩 깎아준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봉급생활자 1인당 평균 22만 원이 경감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나라살림 걱정보다 당장 단돈 1만 원이라도 세금을 깎아준다니 일단 신나는 일이다. 그러나 도대체 내가 내는 세금이 얼마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마당에 20만 원을 깎아주든 200만 원을 깎아주든 그게 무슨 상관이랴. 지난 8년 동안 세금은 회사에서 다 알아서 내주는 것이고 자신은 해마다 한 번씩 연말정산 서류만 작성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해 온 김과장으로서는 자신이 내는 세금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근로자 54% 소득세 한푼도 안 내

    김과장은 자신의 세금명세서를 들여다보면서 억울하다는 생각부터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근로소득자들의 세금을 깎아주었다고는 하지만 주변의 부하직원들 중에는 자신과 달리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는 사람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현행 소득세 체계상 근로소득자의 면세점은 4인 가족 기준 1317만 원. 이 기준을 적용하면 대한민국 전체 근로자의 46%는 소득세를 한푼도 내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게다가 이러한 정부 발표에는 일용직 근로자들이 빠져 있다는 함정이 있다. 조세 전문가들은 정부가 통계에서 빼놓은 일용직 근로자까지 포함할 경우 세금을 한푼도 안 내는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절반이 넘는 54%에 이른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근로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준다고 해봤자 결국 소득수준으로 따져 상위 46% 근로자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셈이다.

    정부의 세제개편안에 대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세율 인하’라는 정부 주장과 달리 오히려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 감면으로 서민층과의 차이가 더욱 벌어지리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김과장 역시 졸지에 ‘허울만 좋은’ 중산층이 된 자신의 신세를 보고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연세대 윤건영 교수(경제학)는 이러한 불공평을 개선하기 위해 “각종 공제 혜택을 줄여 가능하면 세금을 안 내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교수는 “우리나라는 재산에 대한 과세가 빈약한 현실이다. 소득세를 소득세답게 거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나마 김과장이 억울함을 달랠 수 있던 것은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보다 소득세율이 높은 것이 아니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다. 우리나라 월급쟁이들이 갖다 바치는 소득세가 전체 국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5.7%. 미국 23.9%, 영국 20.8%니까 이들 나라와 비교해도 우리나라 월급쟁이들이 내는 세금은 적으면 적었지 결코 많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소득세 금액도 금액이지만 세율을 보더라도 결코 ‘월급쟁이가 봉’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의 소득세 최고세율(지방세 포함)은 현재 44% 수준. 미국이 45%, 일본이 50%이니 우리보다 재정 형편이 훨씬 좋은 선진국보다도 적게 내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게다가 최고세율 51.2%를 부담하는 독일의 월급쟁이들이나 61.6%를 내야 하는 프랑스 샐러리맨들과 자신의 세금명세서를 비교해 본 김과장은 “난, 그런 세금 지옥에서는 못 살아”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기까지 했다. 게다가 내년도 세율을 10% 인하할 경우 최고세율은 39.6%로 떨어진다. 시민단체나 납세자단체를 포함한 대부분의 조세 전문가들 중 우리나라 월급쟁이의 근로소득세가 높은 수준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게다가 월급쟁이들의 세금을 이렇게까지 깎아주기까지 했는데 다른 나라의 샐러리맨들과 비교해 보고 자위한 김과장. 그러나 그 역시 불과 몇 년 전까지 입사 동기로 함께 근무하다 IMF사태 때 사표 내고 동대문에서 의류 소매상을 연 오과장의 세금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은근히 부아가 치미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월급쟁이 시절만 해도 자신과 똑같이 세금 문제에 문외한이던 오과장이 가끔씩 물품구매 관계를 상의하러 사무실에 들를 때마다 세금 전문가가 되어 나타나 ‘요즘 같은 세상에 버는 대로 신고하는 바보가 어디 있느냐’고 떠벌릴 때마다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오과장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매출의 절반도 제대로 신고하지 않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참을 수 없는 세금, 정말 열받네”
    현재 자영업자들의 과표현실화율은 50%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버는 돈의 절반밖에 신고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업종에 따라 천차만별이기는 하지만 조세 전문가들은 20%밖에 되지 않는 자영업자도 수두룩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쯤 되면 월급명세서를 받을 때마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차압당하듯’ 세금을 징수당하는 갑근세 대상자들로서는 장사하는 친구들이 적당히 신고하고 적당히 세금 내는 것 보면서 분통터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신용카드 복권제니 뭐니 해서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하고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업주들을 단속한다고는 하지만 그 효과가 자영사업자들의 과표현실화율을 얼마나 높일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할 상황이다.

    한국납세자연맹 김선택 회장은 “근로소득자들은 다수지만 세금문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응집력이 없는 데 비해 자영업자들은 소수지만 선거 때마다 각종 단체들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정부가 만만한 근로소득세를 더 많이 부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세금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은 김과장처럼 연봉 3000만 원짜리 샐러리맨들뿐만 아니다. 고소득자들은 또 고소득자들대로 불만이 쌓이고 있다. 특히 기업체 최고경영자나 고위 임원의 경우 지난해부터 판공비나 기밀비를 자신의 연봉에 포함시켜 지급받으면서 세금 부담이 크게 늘어났다. 99년까지만 해도 기업들은 판공비와 기밀비를 비용으로 처리하고 한도를 넘는 부분에 대해서만 회사에서 세금을 부담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기밀비와 판공비를 개인 연봉에 포함하면서 연봉이 8000만 원 이상으로 늘어나 최고세율(40%)을 적용받는 근로소득자들이 크게 늘어났다. 예를 들어 99년까지만 해도 6000만 원을 받던 기업체 임원이 30%의 세율 적용으로 약 1300만 원의 세금을 냈다면 판공비 2500만 원과 기밀비 500만 원을 연봉에 포함한 지난해부터는 연봉이 9000만 원으로 늘어나 40%의 최고세율을 적용받는다. 결국 이 임원이 내야 할 종합소득세는 2300만 원으로 늘어난다. 똑같은 판공비와 기밀비를 쓴다고 가정했을 때 연봉 계산 방식이 달라졌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1000만 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조세연구원 성명재 연구위원은 “기업체 임원들이 판공비를 포함한 금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물다 보면 오히려 실소득이 줄어드는 경우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성연구위원은 “이런 현실이 계속되다 보면 고급인력이 해외로 유출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며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우수 두뇌를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 소득세 인하 경쟁을 벌이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억 원을 버는 고소득자라 해도 연봉 2000만 원의 말단 사원과 똑같은 월급쟁이다. 직장에서 매일같이 상사 눈치 볼 것 없이 장사에 나선 동료들이 세금문제에 관해서만큼 부러운 것은 매일반이다.

    “참을 수 없는 세금, 정말 열받네”
    그러나 자영업자들도 세금 내는지 모르고 주머니에서 흘러나가는 각종 간접세 부담에서 자유로울 리는 없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간접세 비중이 월등히 높은 ‘소비세 공화국’이나 다름없다. 담배 한 갑을 피울 때마다 국가에 내는 돈이 담배소비세와 교육세, 부가가치세뿐만 아니라 각종 분담금까지 5∼6종류에 이른다. 또 자동차를 굴리는 사람들은 취득세, 등록세, 부가가치세, 자동차세, 교통세 등 모두 12가지의 세금을 내야 한다.

    1년 전 1500cc급 아반떼XD를 장만한 김과장의 경우를 보자. 그는 자동차를 구입하는 순간부터 세금에서 한발짝도 자유롭지 못했다. 814만 원을 주고 산 자동차값에 포함된 세금만 특소세 47만 원, 교육세 14만 원, 부가세 74만 원 등 135만 원에 이른다. 차값의 16% 정도가 세금인 셈이다. 여기에다 취득세, 등록세, 공채구입비 등을 합치면 구입 단계에서 내야 하는 세금만 모두 200만 원이 넘는다. 게다가 자가용을 굴린 지 첫해에 배기량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21만 원 내야 하고 자동차세의 30%를 내야 하는 교육세 6만2000원까지 합쳐 모두 27만2000원의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2000cc급 크레도스를 4년째 굴리는 옆자리 박과장과는 세금 차이가 꽤 났다. 속으로는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역시 세금 적게 내는 작은 차가 최고’라며 휘파람 불며 아반떼를 몰던 김과장으로서는 올해 7월부터 3년 이상 중고차에 대한 자동차세 감면조치가 시행되자 슬슬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올해 12월 날아올 고지서를 받아보면 1500cc를 몰고 다니는 자기나 2000cc를 굴리는 박과장이나 비슷한 액수의 세금을 내야 할 것 같다. “하필이면 내가 새 차 사고 나니까 중고차 세금을 깎아줄 게 뭐람.”

    그래도 기름 적게 먹는 차가 최고라며 가벼운 마음으로 주유소를 향하지만 여기서도 김과장은 악착같이 달라붙는 세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휘발유 40ℓ를 채우고 나니 기름값 5만2000원(ℓ당 1300원 기준)에 ℓ당 588원씩 따라붙는 교통세 2만3500원을 비롯해 교육세, 주행세, 부가세 등 모두 3만4000원의 세금이 포함돼 있었다. 기름값의 66%가 세금인 셈이다. 늘 차를 갖고 업무를 봐야 하는 김과장이 하루 평균 53.5km를 운행한다면 아반떼 한 대를 굴리면서 지난 1년 간 세금으로 낸 돈만 340만 원이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생각나는 것은 담배밖에. 아침마다 반복되는 아내의 채근에도 아직 담배를 끊지 못한 김과장은 담배 피울 때마다 ‘애국자’라고 자위해야 할 판이다. 담배 한 갑 피울 때마다 담뱃값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바치기 때문. 1300원짜리 ‘디스’ 담배 한 갑에는 담뱃값의 절반이 훨씬 넘는 765원의 세금이 포함되어 있다. 담배소비세가 510원, 지방교육세가 255원이다. 담배소비세는 지난해 460원에서 올 들어 510원으로 10% 가까이 올랐고 교육세 역시 지방세로 세목이 바뀌면서 20원 이상 올랐다. 뿐만 아니라 담뱃값에는 어김없이 10%의 부가가치세와 폐기물부담금, 국민건강증진기금 등 잡다한 분담금까지 포함돼 있다.

    “참을 수 없는 세금, 정말 열받네”
    퇴근길에 소주 한잔 걸치려 해도 세금 행진은 계속된다. 술이야말로 세금 천국이다. 김과장이 선술집에서 3000원 내고 마시는 2홉들이 소주 한 병 출고가는 640원. 할인점에서 790원이면 사는 소주 한 병을 3000원이나 내고 마시는 게 억울하기도 하지만 출고가격 640원 중 절반이 넘는 340원이 세금이라는 생각을 하면 술맛이 나려야 날 수가 없다. 소주에 대한 주세는 판매원가 300원의 72%인 210원 정도. 거기에 교육세가 60원, 부가세가 70원 정도씩 붙는다. 그나마 맥주나 위스키는 주세가 소주보다 30% 가까이 높은 100%를 적용하니 ‘소주 마시는 게 세금 덜 내는 길’이라고 위안삼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이처럼 높은 간접세 비율을 한눈에 확인하려면 자동차세나 담배소비세 등 다른 어떤 세금보다도 부가가치세만 보면 된다. 직접세주의를 채택한 미국에는 없는 부가가치세가 우리나라 국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25%가 넘는다. 그러다 보니 우리 재정 형편상 부가가치세를 깎아준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월급쟁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얼마 전부터 신용카드 영수증에 별도로 찍혀 나오기 시작한 부가세 항목을 보면서 ‘내가 이만큼 나라에 세금을 바치고 있구나’ 하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뿌듯해하는 일뿐이다.

    이쯤 되면 김과장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월급쟁이들이 세금에 대해 늘 갖는 불만은 결국 ‘배가 고픈 게 아니라 배가 아픈 게’ 아니었던가. 참여연대 조세개혁팀 하승수 변호사는 “자영사업자에게 세금을 제대로 거둬 직접 세수를 늘린다면 간접세 비중이 높더라도 월급쟁이들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세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자영업자와 월급쟁이들의 형평성이라는 말. 김과장도 마찬가지다. ‘까짓 굶어죽는 것 아닌 바에야 배아픈 것쯤 참아보지’ 하고 다짐해 본다. 그러면서도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혼잣말을 참을 수 없다. “배아픈 걸 참으려면 속쓰리지 않을 만큼 먹여나 줘야 할 것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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