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6

2001.10.25

“우린, 한국영화 마니아예요!”

젊은 관객 붐 타고 아시아 영화시장 급변 … 내리막길 일본 뛰어넘어 한국·중국 일대 약진

  • < 김의찬/ 영화평론가 > sozinho@hanmail.net

    입력2004-12-31 15:0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우린, 한국영화 마니아예요!”
    요즘 전례 없이 기묘한 집단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 하면 김치와 한복 정도만 알던 아시아권 젊은이들 사이에 한국영화 ‘붐’이 형성된 것이다. 가까운 일본과 중국의 청춘들 사이에선 한글을 배우려는 사람이 늘고 있는데, 이들의 공통된 관심사는 한국영화다.

    마니아를 자처하는 이들은 한국영화에 대해 여러 반응을 내놓는데 대체로 “재미있고 흥미롭다”는 중평이다. 사실 아시아에 번지는 ‘한국영화 유행’의 흐름은 중요한 현상이다. 그만큼 국내 영화인들의 노력이 인정받고 있으며, 한국영화의 완성도가 차츰 높아지고 있음을 반증한다.

    할리우드 영화가 아시아에서도 여지없이 위력을 발휘하는 와중에 한국영화의 선전은 의미심장하다. 물론 이제까지 아시아에서 주목받는 특정한 영화장르, 스타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영웅본색’ 세대를 만든 홍콩의 액션영화나 판타지영화가 있었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 등 일본 애니메이션의 위력도 여전히 살아 있다. 그런데 최근 한국영화에 쏠리는 아시아권의 유례 없는 호감과 관심은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특정 장르나 스타들의 영향력 대신, 한국의 영화시장이 갖는 ‘파워’가 중국과 일본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시아 영화시장은 현재 어떤 식으로 움직이고 있을까. 그리고 그 속에서 한국영화의 잠재력은?

    “우린, 한국영화 마니아예요!”
    “일본의 영화산업은 이제 확실히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일본영화의 전성기는 막을 내렸다.” 한국을 찾는 일본 영화인들의 한결같은 고백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사정은 달랐다. ‘러브레터’의 이와이 슌지, ‘쉘 위 댄스’의 수오 마사유키 등 영화감독들의 작품이 유럽이나 미국 등지로 소개되어 호평받았고, 일본영화는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기타노 다케시 등의 영화작가들이 ‘하나비’와 ‘소나티네’ 등으로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일본 영화계는 세대교체 움직임이 자리를 굳힌 듯했다.

    그 당시 부활의 조짐을 보인 일본 영화계는 최근 다시 바닥으로 가라앉은 인상이다. 일본영화의 침체는 복합적 요인을 갖고 있다. 일본의 영화산업은 몇몇 메이저 영화사가 좌우한다. 쇼치쿠와 도호 등의 영화사들로, 이들 메이저 영화사는 1950년대까지 최전성기를 구가하다 이후 점차 배급이나 영화 제작에서 산업적으로 와해되고, 침체를 되풀이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제작이나 배급에 힘있는 메이저사들이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다.



    2000년을 기준으로 본다면, 일본의 한해 영화 제작 편수는 어림잡아 (성인영화를 제외하고) 150편에서 200편 정도. 이중 쇼치쿠와 도호 등 메이저 영화사들이 제작에 투자하는 작품은 고작 30여 편 정도에 그친다. 지나치게 소극적인 투자행태를 보이는 것. 일본 메이저 영화사들은 일본영화에 투자하느니 안전한 할리우드 영화를 배급해 수익을 올리는 것을 선호한다. 대신 영화작가들은 영화 한 편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밖에 없다. 이미 칸영화제 등에서 ‘작가’로 인정받은 스와 노부히로 등 영화감독들은 스스로 영화제작비를 확보하고, 독립적인 방식의 영화상영을 통해 관객을 만나는 험난한 길을 걸어야만 한다. 다른 선택의 길이 없으니까.

    “우린, 한국영화 마니아예요!”
    이에 비하면 중국영화는 행복하다. 첫번째 이유는 유례 없이 참신한 영화작가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선 중국의 전통 미학을 계승하면서 정치적으로 문화혁명에 반감을 지닌 이른바 ‘5세대’ 감독들이 있다. 장이모 감독은 ‘인생’과 ‘귀주이야기’ 등으로, 그리고 첸 카이거 감독은 ‘패왕별희’로 80년대 이후 해외에서 인정받았다. 5세대 감독에 이어 이젠 ‘6세대’ 감독들의 시대가 왔다. 영화배우 출신이면서 최근 ‘귀신이 온다’로 칸영화제에서 수상한 강문 감독 등이 좋은 예.

    사실 중국영화는 다른 어느 나라 영화보다 정치적 상황에 민감하고, 또 예민할 수밖에 없다. 1989년 톈안문 사건 이후 중국영화는 국가의 엄격한 통제 아래 조금 주춤하는 양상을 보였지만 1990년대 초반 들어 다시금 봄을 맞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가 영화 작품의 개별적인 ‘수익’을 인정하는 정책, 그리고 영화배급에 관한 시스템에서 부분적인 ‘자율화’를 인정하면서 영화산업이 조금씩 기지개를 켠 것이다. 물론 중국영화가 장밋빛 청사진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영화 제작 편수는 한 해 80여 편 정도에 머물며 영화에 대한 정부의 통제와 간섭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중국영화가 가능성을 보이는 두 번째 이유는 다양한 합작 가능성이다. 최근 한국영화 ‘아나키스트’와 ‘비천무’ ‘무사’ 등이 중국 영화인들과 부분적 합작 형태로 영화제작을 마친 사례들. 한국영화뿐 아니라 중국은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 영화인들과 교류의 폭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중국영화 시장은 최근 변화를 겪고 있다. 중국영화뿐 아니라 해외영화의 중국 상영에 관한 결정권을 지닌 중국전영(中國電映)공사를 중심으로, 중국 대륙 규모의 거대한 배급망을 구축하려는 시도가 있으며 중국에서 급부상하는 다양한 자본들이 각기 극장과 배급 분야에서 새로운 투자세력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중국의 영화시장은 단순하게 아시아권 시장의 팽창뿐 아니라 시장 자체의 성격과 개념을 바꿀 수도 있는 핵심적인 시장으로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

    최근 한국영화는 이른바 ‘대박’이 터지면 몇 백만의 관객이 드는 게 예사다. 여기엔 다양한 자본의 힘이 한국영화 경쟁력에 한몫 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다양한 자본, 다시 말해 전통적인 영화자본뿐 아니라 창투사 등의 금융자본, 그리고 여러 가지 펀드의 형태로 영화 제작비가 형성되고 활발하게 만들어지는 건 현재 아시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영화 배급과 영화관람 방식에서 급속도로 변화가 진행되는 것도 한국영화가 힘을 키울 수 있는 중요한 요소. 물론 다양한 작품세계를 추구하는 영화작가들이 빠질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상업영화의 성장과 함께 홍상수 허진호 등 ‘작가’라 할 수 있는 감독들이 함께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한국영화의 소중한 자산이라 할 만하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떨까?

    한국영화는 이제 세계 무대에서도 자신감을 얻고 있다. 97년 49만 달러에 불과한 한국영화 수출액은 4년이 지난 올해 1000만 달러를 넘는 가파른 성장세가 기대된다. 상업영화 시장은 커졌지만, 해외 3대 영화제에서 수상작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것을 들어 한국영화의 경쟁력에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세계 유수 영화제 심사위원들과 프로그래머들의 공통된 의견은 “한국영화가 세계 영화제를 석권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영화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아시아권 영화인들과의 ‘합작’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국의 영화인력, 그리고 일본의 테크놀로지, 한국의 영화자본과 영화인력이 하나로 결집될 때 한국영화는 아시아의 진정한 ‘강자’로 떠오르지 않을까? “영화의 중심은 이제 할리우드에서 아시아로 넘어왔다”는 어느 평자의 이야기는 더 이상 허무맹랑한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니다.

    *참고자료: 영화진흥위원회 ‘아시아영화산업 현황과 지역내 협력방안연구’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