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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방안은 또 면피용?

국민 불신 위기 때마다 “잘 해보겠다” 발표 … 제도 개선보다 ‘의식 개혁’ 선행돼야

  • < 이명건/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 gun43@donga.com

검찰개혁 방안은 또 면피용?

검찰개혁 방안은 또 면피용?
이용호 게이트’와 ‘국정원 김형윤 전 경제단장 금품수수 사건 은폐의혹’ 등으로 촉발된 검찰의 신뢰상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검찰개혁방안이 지난 10월12일 발표됐다.

핵심 내용은 특별수사검찰청 설치와 부당한 명령에 대한 항변권, 검찰인사위원회에 대한 외부인사 참여 등이다. 그러나 이들 개혁방안은 지난 99년부터 검찰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나온 것으로 실현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지 미지수다.

특별수사검찰청의 경우 대통령이 청장을 임명하게 돼 있어 ‘정치권의 입김을 배제한 수사의 독립성 강화’라는 설립 취지에 얼마나 부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사제도 개선안도 간부급 검사 인사에 대한 청와대 등 정치권의 개입을 막을 장치를 전혀 마련하지 않았다는 견해가 많다. 이 같은 제도상의 미비점을 메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검사 개인과 검찰 간부들의 의식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검찰 내 자성(自省)의 목소리가 높다.

검찰개혁방안의 허상을 조목조목 짚어보자.

지난 99년 3월 당시 박상천 법무부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정치인 및 고위공직자 관련 사건에 대해 독립적으로 수사를 전담할 ‘공직비리수사처’를 설치하겠다”고 보고했다. 공직비리수사처는 현재 논의중인 특별수사검찰청과 비슷한 성격과 구조를 가진 기구.



당시는 ‘대전법조비리 사건’ 수사과정에서 심재륜 고검장이 검찰 수뇌부의 동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해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하늘을 찌를 듯했던 때다. 법무부 장관의 개혁안 제시는 위기 타개책이었다. 대검 중수부 해체를 기정 사실로 여겼고 공직비리수사처장의 임기와 직급, 수사처의 예산과 인사 등에 관한 구체적 논의까지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실제 수사처 신설은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개혁 방안은 또 면피용?
‘검찰인사위원회에 대한 외부인사 참여’와 ‘부당한 명령에 대한 항변권’은 지난 99년 12월 법무부가 주도적으로 참여해 만든 사법개혁 최종안에도 들어 있다. 개혁안이 마련된 시점은 ‘옷로비 사건’으로 김태정 전 법무부 장관이 구속되고 검찰 출신의 박주선 전 대통령법무비서관이 구속되기 직전이었다. 역시 위기상황이었고, 두 가지 개혁안 모두 실현되지 않았으며 이번에 다시 등장했다. 법무부는 “지금까지는 ‘논의’ 수준이었지만 이제 그것을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지켜볼 일이지만 실천한다 해도 따져볼 점이 많다.

이번에 제시된 개혁방안 가운데 권력형 비리사건 수사를 전담할 특별수사검찰청 신설은 그 취지가 무색해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고검장급인 특별수사검찰청장에 대한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 특별수사검찰청장이 검찰총장에게 사후 보고하게 돼 있지만,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수사를 진행하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한 간부급 검사는 “지금까지 검찰이 국민의 불신을 받은 근원을 살펴보면 검찰총장이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의중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라며 “특별수사청장이 그런 부담을 갖지 않도록 임명절차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개혁 방안은 또 면피용?
특별수사검찰청장뿐 아니라 검찰 간부 및 수뇌부 인사에 청와대 등 정치권의 개입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 검찰개혁의 요체란 주장도 검찰 내부에서 나온다. ‘이용호 게이트’ 등 검찰 위상을 추락시킨 대형 사건들을 보면 대부분 정치권과 밀접한 관련을 맺은 사람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이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미진하다는 이유로 되풀이해 국민적 의혹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사들이 정치권과 연계될 수 있는 실마리를 아예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서울지검의 부장급 정도만 되면 인사와 관련해 정치권에 줄대려 노력하는 것이 관행으로 알려졌다. 특히 고검장과 검사장급 검사들은 권력 핵심과 밀접하게 지내지 않으면 수뇌부 진입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움직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검사는 “검찰 내 주요 보직 인사는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이 최종 결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며 “권력 핵심의 뜻이 작용해 총장과 장관이 만든 안이 변경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 검사는 “만약 총장과 장관이 철저하게 독립적 인사를 할 수 있는 제도가 강구된다면 정치권 눈치를 보느라 수사가 방해받는 경우는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총장이 최종 결정하는 인사가 일선 검사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정치적 편향성이 있는 인물이 총장이 돼서는 안 되며, 이를 위해 인사청문회를 통해 검증된 총장이 선임돼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법무부의 한 검사는 “총장 퇴임 후 공직 진출을 일정 부분이라도 제한하는 규정을 마련하면 검찰 전체가 훨씬 독립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 제시된 인사제도 개선안은 이런 의견과 거리가 멀다. 검찰인사위원회에 대한변협, 법학교수협의회 등의 추천을 받은 외부인사가 참여하고, 자문기구인 인사위원회를 심의기구로 성격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개선안의 요지. 법무부는 외부인사가 참여해 심의하는 내용을 실제 인사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혔으나 검사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인사위원회 역할 자체가 간부 승진 기수를 결정하는 등 구색 맞추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높고, 현실적으로 검사 개개인의 자리 이동에 영향을 미치기 힘들기 때문에 주요 보직의 지역편중 현상 등의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을 것으로 예견하는 검사들이 많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만약 인사위원회가 개인의 자리 이동을 직접 결정해도 문제”라며 “외부인사가 검사 개인의 근무태도와 수사능력을 평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외부 청탁이 개입할 가능성도 있어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제도의 효용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비등하다 보니 제도 개선을 논하기 이전에 검사들의 의식이 변해야 한다는 원론적 주장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용호씨 비호 의혹 검찰 간부들에 대한 특별감찰본부의 조사 결과도 바로 이런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다. 특감본부는 이씨가 지난해 석방되고 불입건되는 과정에서 외부 및 내부의 압력은 없었다고 발표했다. 다만 당시 수사 지휘라인에 있던 이덕선(당시 특수2부장) 전 군산지청장과 임양운(당시 3차장) 전 광주고검 차장, 서울지검장이던 임휘윤 전 부산고검장이 직무 태만 또는 부적절한 언동을 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사법처리되거나 징계 대상이 되는 데 공통적으로 작용한 문제점은 사적 관계를 수사과정에 개입시켰다는 것이다. 동향 등의 이유로 부탁을 받고 이를 거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번 개선안에 ‘부당한 명령에 대한 항변권’이 포함돼 있으나 이는 검사들의 의식만 바뀐다면 불필요한 제도라는 지적도 있다. 검찰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지금까지 우리가 부당한 명령에 항변하지 않고 그대로 따랐다는 말이냐”며 “잘못된 지시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내 의견을 내고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특감본부도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검사에겐 상명하복 의무가 있지만 검사가 모든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정당한 명령에 대해서만 복종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 김형윤 전 경제단장 사건 처리를 둘러싼 의혹이 불거지는 이유도 ‘항변권’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릇된 의식을 가진 개인들 때문이라는 견해가 많다. 올해 상반기 내내 김 전 단장의 사법처리를 주장하며 검찰 수뇌부와 대치했던 수사검사는 말이 없다. 하지만 당시 이를 지켜본 많은 검사들은 말한다.

“강하게 항변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위에서 더 강하게 눌렀기 때문이다. 당시 지휘라인에 있던 간부 중 단 한 명이라도 수사검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오늘 같은 위기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주간동아 2001.10.25 306호 (p22~23)

< 이명건/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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