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심은하가, 그전까지의 곱고 가녀린 모습을 벗고 화장기 하나 없이 털털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나왔을 때 관객들이 박수를 보낸 것도 이제 우리 영화에서도 새롭고 현대적인 여성상을 발견했다는 기쁨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자들의 세상인 군대에 뛰어든 이영애의 모습(‘공동경비구역 JSA’)이 결코 ‘G.I. 제인’의 데미 무어처럼 용맹한 여전사 모습은 아니었다 해도, 이제 우리 영화에서도 카리스마 넘치고 강인한 여성을 만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남자에게서 ‘형님’으로 불리는 여자. ‘조폭마누라’는 넘보지 못할 카리스마를 가진 여자 조폭을 내세워 ‘판 뒤집기’를 시도한다. 영화의 장르는 분명 남성영화로 불리는 ‘갱스터 무비’인데, 여성을 전면에 배치해 남녀의 성역할을 바꾸고 시작한다는 데서 영화는 기존의 ‘조폭영화’와도 차이가 있다.
충무로 휘어잡는 ‘女전사’ 선언

동사무소 말단 직원으로 수십 번 맞선을 보고도 딱지만 맞은 남자 강수일(박상면). 어느 날 은진의 부하들과 우연히 마주친 그는 어수룩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보스의 남편감으로 발탁된다. 신부가 조폭인지도 모르고 마냥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던 수일. 그러나 그를 기다리는 것은 집안 살림은 고사하고 잠자리마저 거부하며 걸핏하면 발차기로 대응하는 새 신부였으니…. 설상가상으로 언니가 조카를 보고 싶다고 부탁하자 은진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시도 때도 없이 수일을 ‘덮친다’. 그녀의 폭력적 말투와 행동에 의심이 가기 시작한 수일이 결국 은진과 헤어질 결심을 한 날 밤, 은진은 평소 자신들의 사업에 눈독을 들인 백상어파와 대대적 싸움을 벌인다. 싸움 도중 상대방의 공격에 은진이 유산하는 일이 발생하자, 순진하기만 한 수일이 격분해 백상어파가 있는 술집으로 쳐들어가는데….

주간동아 304호 (p172~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