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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조폭마누라

식상한 ‘조폭 영화’에 대한 뒤집기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식상한 ‘조폭 영화’에 대한 뒤집기

식상한 ‘조폭 영화’에 대한 뒤집기
터미네이터’ ‘에일리언’ ‘롱키스 굿나잇’ ‘미녀 삼총사’ 같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멋진 언니들’의 모습에 환호한 관객(특히 여성)은,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사랑에 웃고 이별에 눈물짓는 여리디 여린 우리 영화 속 여주인공의 모습에 얼마간은 짜증을 느꼈을지 모른다. CF에서, 또 평소 이미지대로라면 남자 몇은 잡을 듯한 팜프파탈형 여자 스타들이 유독 영화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남자의 품에서 ‘순정’을 맹세하고, 아이를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캐릭터를 주로 맡아온 데는 사회의 뿌리깊은 가부장의식, 주류 남성 제작자 및 감독의 편견, 여주인공을 관음의 대상으로만 여긴 관객의 시선 등 여러 요소가 동시에 작용해 왔을 것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심은하가, 그전까지의 곱고 가녀린 모습을 벗고 화장기 하나 없이 털털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나왔을 때 관객들이 박수를 보낸 것도 이제 우리 영화에서도 새롭고 현대적인 여성상을 발견했다는 기쁨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자들의 세상인 군대에 뛰어든 이영애의 모습(‘공동경비구역 JSA’)이 결코 ‘G.I. 제인’의 데미 무어처럼 용맹한 여전사 모습은 아니었다 해도, 이제 우리 영화에서도 카리스마 넘치고 강인한 여성을 만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남자에게서 ‘형님’으로 불리는 여자. ‘조폭마누라’는 넘보지 못할 카리스마를 가진 여자 조폭을 내세워 ‘판 뒤집기’를 시도한다. 영화의 장르는 분명 남성영화로 불리는 ‘갱스터 무비’인데, 여성을 전면에 배치해 남녀의 성역할을 바꾸고 시작한다는 데서 영화는 기존의 ‘조폭영화’와도 차이가 있다.

충무로 휘어잡는 ‘女전사’ 선언

식상한 ‘조폭 영화’에 대한 뒤집기
조폭계의 살아 있는 전설 차은진(신은경). 가위 하나로 암흑가를 평정한 그녀지만 어린시절 고아원에서 헤어진 언니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다. 우여곡절 끝에 언니를 다시 만나지만 그녀는 위암 말기 환자다. 은진은 언니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팔자에도 없는 결혼을 감행한다.



동사무소 말단 직원으로 수십 번 맞선을 보고도 딱지만 맞은 남자 강수일(박상면). 어느 날 은진의 부하들과 우연히 마주친 그는 어수룩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보스의 남편감으로 발탁된다. 신부가 조폭인지도 모르고 마냥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던 수일. 그러나 그를 기다리는 것은 집안 살림은 고사하고 잠자리마저 거부하며 걸핏하면 발차기로 대응하는 새 신부였으니…. 설상가상으로 언니가 조카를 보고 싶다고 부탁하자 은진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시도 때도 없이 수일을 ‘덮친다’. 그녀의 폭력적 말투와 행동에 의심이 가기 시작한 수일이 결국 은진과 헤어질 결심을 한 날 밤, 은진은 평소 자신들의 사업에 눈독을 들인 백상어파와 대대적 싸움을 벌인다. 싸움 도중 상대방의 공격에 은진이 유산하는 일이 발생하자, 순진하기만 한 수일이 격분해 백상어파가 있는 술집으로 쳐들어가는데….

식상한 ‘조폭 영화’에 대한 뒤집기
어떻게 보면 유치하기 그지없는 설정과 스토리지만, 앞서 말한 ‘뒤집기 전략’의 성공으로 영화는 이상하게 매혹적이고 또 재미있다. ‘엽기코미디’로까지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막 나가는’ 영화지만 주연을 맡은 신은경의 매력은 영화의 온갖 단점을 덮어버릴 정도로 강력하다. 이전의 영화 ‘젊은 남자’에서는 오렌지족 여대생으로, ‘노는 계집 창’에서는 온몸을 내던진 창녀 연기로 인기를 끈 그녀지만 역시 신은경의 매력은 어떤 남자라도 까불면 때려눕힐 것 같은 씩씩함과 보이시함이다. 94년 MBC드라마 ‘종합병원’에서 후배 의사들을 병원 옥상에 집합시켜 놓고 정강이를 걷어찬 모습으로 스타덤에 오른 그녀 아닌가. 이젠 ‘에일리언’의 시고니 위버가 부럽지 않다.



주간동아 2001.10.04 304호 (p172~173)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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