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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우리 사회의 얼굴 없는 테러리스트들

  • < 이재열 / 서울대교수·행정학 >

우리 사회의 얼굴 없는 테러리스트들

우리 사회의 얼굴 없는 테러리스트들
미국에서 일어난 테러참사에 대해 충격을 느끼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한번도 공격을 받아본 적이 없는 미국의 경제와 군사의 심장부가 공격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경제력이나 군사력으로 유일한 강대국으로 올라선 미국에 대한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의 공격과 이에 대한 보복이 문명간 전쟁으로 비화하지 않을지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러나 보통사람이 몸서리치는 것은 죽기를 각오한 테러리스트가 비행기를 4대나 납치해 통째로 공격 무기로 활용해 수천 명이 희생되었고, 탑승자들은 모두 몰살했다는 사실이다.

예상하는 위험의 크기는 사고 발생률과 사고 발생시 피해를 곱한 값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사고 발생률이 낮더라도 사고 발생시 피해가 파국적인 것이라면 예상하는 위험률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낮은 확률과 파국적 피해가 결합한 새로운 위험이 ‘위험사회’의 본질이 되어가는 것이다. 실제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의 수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는 사람 수보다 훨씬 많은데도 비행기 사고를 더 위험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전체 자동차 사고 중 사망 사고의 비중은 일부분인 반면, 비행기 사고는 생존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적 위험은 자동차형 사고보다는 비행기형 사고의 특징을 갖는다. 발생률이 낮은데도 일단 사고가 나면 재앙으로 귀결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우리가 만든 문명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복합적 체계의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수만 분의 일에 해당하는 확률일 것으로 생각했으나, 정작 사건이 터지자 파국적 재난이 된, 보팔에서의 폭발사고나 체르노빌의 원자력발전소 사고 등이 이에 해당한다. 미국에서의 테러참사도 자살테러라는 생각지 못한 방식의 공격이 곧 우리의 문명을 ‘위험사회’로 순식간에 전화할 요인이 된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사람이 전율과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영화의 상상력 이외에는 한번도 대형사고와 연관지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현대성이 원시적 야만성으로 너무도 어이없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맨해튼에 밀집한 마천루 숲은 미국 자본주의적 번영의 상징이며, 펜타곤은 팍스아메리카나를 뒷받침하는 군사력의 상징이다. 그러나 원시적 칼과 종이커터로 무장한 테러범들이 탈취한 민간 항공기로 공격 받아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미국이 생각한 안전망이 초현실적 미사일방어체제(MD)였음을 비웃기나 하듯.

부실과 부패로 한국적 현대성 상징 무너져



반면 아프간의 탈레반에 대한 미국의 보복공격은 수만 달러의 미사일로 사막과 고원에 산재한, 몇십 달러에 지나지 않는 나무다리나 참호를 파괴하는 데 그칠지 모른다. 또는 수단에서의 오폭사고나 유고에서의 중국대사관 폭격과 같이 무고한 피해를 가져올 수도 있다. 고도의 현대적 전자전 무기로 미개국을 공격하는 것은 그만큼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가미가제식으로 죽기를 각오한 얼굴 없는 자살테러 앞에서 문명권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몸서리치는 이유는 한강의 기적이라 일컫는 한국의 경제적 성취와 풍요를 하루 아침에 세상의 비웃음으로 만든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그리고 대구지하철공사장의 폭발사고가 맨해튼의 쌍둥이빌딩과 겹쳐 떠오르기 때문이다. 미국적 현대성의 상징은 자살테러로 무너졌지만, 한국적 현대성의 상징은 우리 내부의 부실과 부패로 인해 무너졌다.

미국민은 악의 배후세력을 찾아 보복하기 위한 성전(聖戰)을 치른다고 나섰다. 한국도 그 성전을 거들어 참전할 모양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런 식의 테러는 용납할 수 없다. 외부의 적을 찾아 나서는 미국민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금 뒤를 돌아보게 된다. 자살공격을 받지도 않았는데 건물들이 무너져 내려 무고한 인명이 무차별로 살상된 대형 사고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악의 배후세력을 찾아나서 제대로 성전을 치렀는가? 우리 내부에 스며들어 있고, ‘한국적 위험사회’를 만드는 얼굴 없는 테러리스트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용서하고 타협한 것은 아닌가? 혹시 우리 자신이 그 얼굴 없는 테러리스트는 아니었는가?



주간동아 2001.09.27 303호 (p104~104)

< 이재열 / 서울대교수·행정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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