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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

사양길 양잠사업 되살린 ‘누에박사’

농촌진흥청 류강선 과장 … 20여 년 누에 연구, 당뇨병 치료제·누에그라 등 개발

  •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사양길 양잠사업 되살린 ‘누에박사’

사양길 양잠사업 되살린 ‘누에박사’
누에는 청결·끈기·정력의 상징으로 봐도 무방하다. 누에는 농약을 조금이라도 먹으면 금세 죽는다. 누에가 산다는 것은 그 땅이 오염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누에의 일생은 45일. 그 중 20여 일은 총 연장 1.7~2km에 이르는 실에 온몸을 둘둘 만 번데기로 살아간다. 누에는 뽕잎만 먹고 산다. 그것도 10여 일만 먹고 나머지 일생은 입이 붙어 버려 굶어야 한다. 껍질을 뚫고 나방이 되어서는 단 3일을 산다. 그런데 3일 내내 암수 누에는 교미만 하며 500여 개의 알을 낳은 뒤 둘 다 죽는다.

농촌진흥청 잠사곤충과 류강선 과장(서울대 곤충병리학 박사)은 20여 년 간 누에만 연구해 온 ‘누에박사’다. 류박사의 주된 과제는 누에의 이러한 특징을 이용해 누에를 원료로 한 새로운 상품을 발명하는 일이었다.

지난 1974년 한국의 양잠 농가는 48만8000가구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았다. 전통적 양잠 농가들은 누에고치에서 비단의 원료가 되는 실을 뽑아내 판매하면서 수입을 올렸다. 당시 양잠산물이 농산물 수출의 절반을 차지했다.

그러나 합성섬유 기술이 발달하고 한복·이불 등에 비단 수요가 급격하게 줄면서 1992년께 양잠 농가들은 사실상 양잠으로 수익을 내지 못하였다. 양잠업 자체가 국내에서 사라질 상황이었다.

류박사는 그때부터 누에의 분말을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하는 새로운 실험에 착수했다. ‘동의보감’ 등 고서를 연구한 결과 무공해 청정 곤충인 누에가 당뇨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누에에서 실을 뽑는 사업은 포기한다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당시의 심정을 류박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대학 잠사학과에 입학한 이래 누에만 연구하면서 살았는데 누에가 쓸모없는 존재가 되면 내가 보낸 시간이 너무 허무하지 않나. 그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고 결심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누워 있을 때도 천정에서 누에가 스물스물 기어가는 착시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나의 관심은 온통 누에 살리기뿐이었다.”

3년여의 노력 끝에 류박사는 95년 ‘누에분말 혈당강하제’를 특허 출원했다. 혈당이 소장에서 혈액으로 천천히 들어가게 함으로써 혈액 내 혈당을 낮추는 제품이었다. 류박사는 알에서 부화한 지 20일째 되는 누에를 냉동 건조해 분말로 만들면 최선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혈당강하 효과를 내는 DNJ라는 물질을 누에 분말에서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류박사의 혈당강하제는 여러 사람이 복용한 결과 당뇨병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입증되기 시작했다.

이는 몇 년만 더 지났으면 몰락해 없어질 뻔한 국내 양잠업을 극적으로 되살린 사건이었다. 양잠 농가들은 해마다 200~280t의 누에분말을 생산하며 수입을 올렸다. 국내 300만 당뇨환자의 10%가 누에분말을 복용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류박사의 혈당강하원리는 1300만 명이 당뇨를 앓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에 책으로 소개되면서 큰 반향을 불렀다. 그는 해마다 2~3차례 일본을 방문해 일본의 당뇨 환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다. 98년부터 2001년 9월까지 국내에서 7.3t의 누에분말을 일본으로 수출하였다.

사양길 양잠사업 되살린 ‘누에박사’
그러나 96년 7월 류박사는 위암 3기 선고를 받았다. 위를 모두 절개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안산1대학 식품영양학 교수인 부인 이병순씨(44)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며 1년 반 동안 암과 싸운 끝에 그는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병상에서 일어난 그가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농촌진흥청 누에실험실. 새로운 누에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려는 생각에 그는 병중에도 몸이 달아 있던 것이다.

그는 2001년 9월 현재 항당뇨 음료, 뽕잎 아이스크림 등 누에와 관련된 8개의 특허를 출원했다. 지난해엔 양잠업의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공로로 공직자 부문 대산농촌문화상을 수상했다. 현재 그는 누에를 이용한 암 치료제 연구를 하고 있다.류박사의 신개발품 ‘누에그라’의 탄생 과정은 누에에 대한 그의 집념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그는 3일 간 교미하는 수컷 누에의 정력을 상품화하기로 했다. 겉으로 봐서 거의 구별되지 않는 수컷과 암컷을 구별해 내는 것이 첫번째 관문. 그는 암컷 누에는 띠를 갖도록 특정 유전자인자를 입혔다. 그런데 관계 당국은 누에의 성충인 나방은 식품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류박사는 고민 끝에 껍질을 벗기 직전 번데기 상태의 수컷만 이용하기로 했다. 번데기는 혐오식품이 아니므로 관련 법규에 저촉하지 않을 뿐더러 저절로 교미 전 수컷을 구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누에그라의 동물실험 결과 남성호르몬은 33% 증가했고 운동지구력은 60%가 향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첫번째 인체실험대상자는 류박사 본인이었다. 흔한 식품인 번데기의 최적 단계에서 진액만 추출해 만든 것이므로 이론적으로 몸에 나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누에그라는 매일 복용해야 하는데 5일째부터 효과가 나타나며 평균 10% 정도 성적 능력이 향상된다”고 말했다.

누에 암컷은 혈당강하제, 수컷은 누에그라로 이용할 경우 양잠 농가는 연간 뽕밭 300평당 400만 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누에 재배를 전국 농가, 특히 상수도 보호구역 일대로 확산시킬 꿈을 갖고 있다. 농촌 소득도 높이면서 주변 오염 여부를 가늠할 척도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몇몇 자치단체들이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류박사는 10cm 남짓한 곤충 하나에 자신의 삶을 바친 집념의 사나이다. 한편으론 농가 소득증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생물 연구는 무의미하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20여 년에 걸친 그의 누에 연구도 이런 현실론적 원칙 아래에서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그는 ‘함께 큰 돈을 벌어보자’는 제약회사의 스카우트 제의는 거절했다. “맞벌이하고 안산에 아파트도 있어 돈이 더 필요할 것 같지 않다”는 게 이유. 류박사는 “퇴임 후엔 택시를 운전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 (누에 때문에) 머리를 너무 많이 썼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1.09.27 303호 (p84~85)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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