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3

2001.09.27

24시간 비상대기 ‘램프 요정’ 신세

  • < 임기용 / 한국통신 멀티미디어 연구소 선임연구원 >

    입력2004-12-23 15: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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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시간 비상대기 ‘램프 요정’ 신세
    ‘이제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지 말자~! 수호천사는 상대방 휴대폰의 위치를 알려주는 서비스입니다. 가족·연인·팀원간에 이용하면 효과 만점!’

    국내의 한 이동통신사에서 제공하는 위치확인서비스인‘수호천사’의 웹 광고문구다. 복잡하고 고단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은 누구나 한번쯤 지치고 힘들 때 늘 곁에서 자신을 지켜주고 몰래 도와주는 나만의 수호천사가 있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신을 지켜주는 무엇이 있다는 데 대한 믿음은 절망적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게 하는 커다란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호천사’ 서비스에서 보여지는 ‘수호천사’는 수호천사의 원래 의미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수호천사란 자신이 모르는 곳에 있으면서도 도움이 필요할 때 몰래 자신을 도와주는 것이지, 언제든지 어디에 있는지 확인 가능하고 자신을 도와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그런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치확인서비스 점차 확산

    위치확인서비스에는 이동통신망을 이용한 셀(cell)기반의 방식과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를 이용한 방식, 그리고 소출력 무선 랜을 이용한 방식이 있다. 이 기술들을 적절히 조합하여 사용하면 단말기 사용자가 어디에 있는지, 어느 건물에 있는지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 그리고 이 단말기에 지불기능이 포함될 경우 사용자가 어떤 곳에서 무엇을 했는지도 알아낼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나의 수호천사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감시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제 우리 중에서 아무도‘너의 수호천사가 되고 싶어’라고 외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동통신 기술의 발달은 순수한 마음의 수호천사를 한순간에 램프의 요정 ‘지니’로 전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안 보이는 곳에 있으면서 필요할 때 한 번씩 나타나 도움을 주는 수호천사를 흉내내기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내가 어디 있는지를 아는 주인이 부르면 언제든지 튀어 나와야 하는 램프의 요정을 흉내내기란 매우 피곤한 것이다. 사람은 아무리 친한 사람에게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저당잡히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한없이 베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언제나 착한 일만 할 수 있는 동물도 아니다. 인간은 나약하고 때론 이기적이며,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것도 남몰래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있게 마련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24시간 그 사람을 위해 ‘비상대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든든하고 믿음직해 보이는 친구나 애인일지라도 헤어져 골목길을 돌아서는 뒷모습에는 하얀 날개를 달고 빛을 발하는 천사가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축 늘어진 어깨와 퀭한 눈으로 나만큼이나 남루하고 지친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한 사람이 걸어갈 뿐이다.

    이동통신서비스가 없는 시절에는 친구나 애인과 헤어지면 다음에 만나기 전까지 전화나 메일로 연락할 뿐이었다. 마음을 전하고 싶어도, 친구나 애인이 뭐하는지 알고 싶어도 확인할 수 없었다. 자연히 떨어져 있는 시간이 재충전을 위한 휴식시간과 자유시간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그럴 수 없다. 나의 친구나 애인은 언제라도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스스로 원해서 선택한 수호천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강요에 의한 램프의 요정 지니가 되는 것이다.

    과학기술은 사용하는 인간의 태도에 따라서는 우리를 편안하고 유익하게 하기도 하지만 과욕을 부리면 오히려 우리를 해치기도 한다. 수호천사가 되느냐 램프의 요정 지니가 되느냐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선택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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