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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련 “이렇게 될 줄 몰랐어유”

거대 양당 틈새서 우왕좌왕하는 소수파 … 공중분해 위기감 “얻은 건 없고 잃기만 했다”

  • < 김시관 기자 > sk21@donga.com

자민련 “이렇게 될 줄 몰랐어유”

자민련 “이렇게 될 줄 몰랐어유”
JP계산기가 고장 난 것 같다. 아니면 바이러스 먹은 컴퓨터로 계산했거나….”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사퇴와 관련해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JP)의 초강수를 지켜본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의 한 참모가 내놓은 비아냥 섞인 촌평이다. DJP 공조 파괴라는 부담에도 보수 깃발을 들고 일어선 JP의 결단이 사실은 무모한 ‘패착’이라는 것이 이 측근의 진단이다. DJP 공조 파괴 및 교섭단체 붕괴, 이한동 총재 제명, 당내 혼란 등이 JP의 패착을 웅변으로 말해준다는 것. 과연 JP의 승부수는 패착인가.

입에 올리기를 꺼리지만 자민련 인사들은 ‘해임안 정국’ 이면에 당 지도부의 전략 부재가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한 당직자는“우리는 임동원 장관 사퇴까지만 생각했지, 그 이후(DJP 공조 파괴 및 교섭단체 붕괴 등)에 대해서는 논의한 적이 없다”는 말로 지도부의 전략 부재를 꼬집는다. JP가 임 전 장관 사퇴 문제를 밀어붙일 경우 청와대와 민주당이 결국 손을 들어줄 것으로 생각한 낙관적 전망이 1차 패착이라는 진단이다. 이 인사는 “상황이 종료(임장관 표결)된 후 정신을 차려보니 뭔가 이상했다.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청와대와 여권이 뭔가 함정을 파놓고 기다렸다는 강한 의혹이 들었다”고 전한다.

이 인사에 따르면 여권이 햇볕정책을 더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 보수의 상징인 JP와 연말을 전후해 갈라서기로 세밀한 계획을 세웠고, 임장관 사퇴문제가 불거지자 전격적으로 이를 앞당겨 준비한 ‘모범답안’을 꺼내들었다는 것. “자민련은 결국 울고 싶은 사람 뺨 때린 꼴이 되었다”는 것이 DJP 공조 붕괴에 대해 그가 내린 결론이다.

자민련 “이렇게 될 줄 몰랐어유”
JP와 교감하에 당내 기류를 강공으로 몰고 간 이완구 총무도 공조 파괴 배경에 여권의 보이지 않는 음모가 숨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총무는 “(일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었고 그 배경에 플랜이 있던 것 같다. 내가 순진하게 당했다”며 안이한 대여협상에 대한 참회의 진술도 꺼냈다. ‘정치 9단’ JP도 자신의 패착을 은연중 거론했다. 그는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지난 3일 “(민주당의) 즉각적 논평과 성명을 보고 매우 계획적임을 알 수 있었다”고 말한 것. 지도부와 가진 대책회의에서는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다니…”라며 격한 감정을 토로한 것으로 한 참석자는 전했다. 물론 JP나 이총무의 이 같은 언급은 DJP 공조 붕괴에 대한 당내 일각의 책임론에서 자신들을 지키고, 공조 파기의 책임을 여권에 떠넘기기 위한 성격도 없지 않다.



자민련의 전략 부재는 여권 인사들도 짚고 있다. 민주당 K의원은 지난 4일 자민련 이완구 총무에게 “12월에 올 일을 몇 달 앞당겼을 뿐이다”고 조롱 섞인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 인사는 정진석 의원에게도 같은 내용의 말을 전달했다. “판을 잘못 읽었다”는 자민련의 자괴감은 이런 여권의 기류와 맞물리며 증폭되고 있다.

정치 9단들의 수 싸움을 배경으로 하는 얘기도 있다. 상도동 주변에서는 “더 이상 DJ하고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JP가 결별 수순을 밟자, DJ가 이를 눈치채고 선수친 것이다”고 설명하는 사람이 많다.

DJ가 JP를 버리고 임 전 장관을 선택한 것은 JP를 안고 가봐야 언젠가는 떠날 사람임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정치 9단들의 고공 수 읽기에서 JP는 최후 승자 자리에 앉지 못했다는 것. JP는 “DJP 공조는 파기되었다”는 민주당 전용학 대변인의 논평이 공개된 후에도 한동안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이는 “표결정국 이후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당내 인사들의 지적과 맥을 같이한다.

DJP 공조 파괴는 자민련을 생각 이상으로 위기로 몰아넣었다. 기세를 올린 ‘JP 대망론’은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내우외환에 몰린 자민련은 생존을 위협 받는다. 국회법 개정을 암시한 한나라당은 공조 파괴 후 즉각 “총선 민의에 어긋난다”며 입장을 바꿨다. 당초 이재오 총무는 이완구 총무에게 교섭단체에 대한 언질을 준 것으로 자민련 인사들은 알고 있고 자민련의 강공 드라이브는 한나라당의 이 같은 언질에 힘입은 바 큰 것도 사실. 이회창 총재는 조만간 JP와의 회동을 계획하고 있지만 당 지도부는 자민련을 원내교섭단체로 만들어 주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 시들어가는 JP를 살려내 대선 정국에 지난 97년과 같은 변수가 생길 여지를 두느니, 차라리 ‘자민련 궤멸’로 변수 자체를 없애는 것이 낫다는 것이 한나라당 지도부의 판단인 셈.

이한동 총리는 JP에게 또 다른 충격을 주고 돌아섰다. ‘보수세력’의 지지도 당초 기대치에 못 미친 것으로 보인다. 변웅전 대변인은“전국에서 격려 전화와 편지가 쇄도하고 있다”며 경남·북 각각 1000통, 전남·북 각각 200통의 격려 전화 내용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시급한’ 충청권의 지지는 신통치 않아 보인다. 변대변인은“원래 충청도는 ‘너무 염려 마세유’가 최고의 지지 표시다”며 저조한 반응을 지역특색 탓으로 돌렸지만, 이회창 총재와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 등의 3각 패권 경쟁에 휘말린 충청권이 더 이상 JP의 보수깃발에 연연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자민련 “이렇게 될 줄 몰랐어유”
양당 구도로 짜인 정치 지형도 DJP 공조 파괴의 최대 상처다. 이회창 총재는 영수회담을 발 빠르게 제의해 JP와 자민련을 정국 중심에서 배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민주당은 물론 한나라당도 자민련을 종속 변수 또는 세 불리기 대상으로 볼 뿐 정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따라서 정계개편론은 쉼없이 자민련 상공을 맴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각각 4~5석 정도의 자민련 의원을 빼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지 이미 오래다.

이 같은 위기감 속에서 자민련은 물론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한 생존논리를 모색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JP는 당분간 독자노선으로 활로를 모색할 전망이다”며 등거리 정책을 1차 전략으로 거론했다. 어느 당도 원내 과반수를 획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자민련 고유의 역할과 위상은 존재한다는 것.

JP는 내년 양대선거에서 자민련 부활을 위한 승부수를 던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선거에서 생존기반을 확보한다는 전제하에 이념적으로는 보수층, 지역적으로는 충청권에 집중적으로 ‘베팅’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념면에서 한나라당과 차별화가 쉽지 않은데다 지역적으로도 이인제 최고위원과 이회창 총재 등 대선주자들이 이미 충청권 일부를 접수해 과거와 같은 기득권을 누리기는 힘들어 보인다. 입각이나 정부 산하기관 등의 지분이 사라진 이상 자민련 선호도는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혼란 속에 당내에서 자중지란 움직임이 싹트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공조파기 사태를 놓고 갈등을 보인 강경파와 온건파는 향후 진로 및 여야 관계 등을 놓고 또 다른 각을 형성하고 있다. 이완구 총무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는‘정체성 확보가 다른 어떤 사안보다 우선하는 과제’라는 명분하에 “민주당과의 관계를 논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관계복원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정진석·이재선 의원도 이총무와 뜻을 같이한다.

그러나 온건파들은 “민주당과 뜻이 같으면 (앞으로) 같이 갈 수도 있다”며 실리론으로 공조 복원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조부영 부총재와 김학원 조희욱 의원이 온건파로 분류된다. 이들 중 일부는 자민련이 연말까지 무소속 정당으로 표류할 경우 새로운 선택과 결단을 놓고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이미 자민련의 공중분해를 거론한다. 경우에 따라 양당은 자민련 소속의원들을 적극적으로 견인해 자민련의 붕괴를 앞당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변웅전 대변인은 이런 당내 상황이 우려스러운 듯 “(9월, 10월에) 정상회담이니 체육행사니 하는 기사의 홍수 속에 자민련이 동면에 빠진 곰처럼 잊힌 당이 되지는 않아야 할 텐데…”라고 탄식했다. ‘어, 어’ 하다 밀려간 ‘준비 안 된 이별’은 자민련을 생사의 기로에 서게 만들었다.



주간동아 2001.09.20 302호 (p22~24)

< 김시관 기자 >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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