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1

2001.09.13

지능 갖춘 ‘슈퍼맨 옷’ 멀지 않았다

첨단 섬유로 온도 조절, 냄새 제거 척척 … 저절로 세탁, 수륙양용 의류도 눈앞

  • < 이 식 / 과학칼럼니스트·이학박사 > honeysik@yahoo.com

    입력2004-12-17 15:2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지능 갖춘 ‘슈퍼맨 옷’ 멀지 않았다
    한여름 무더위에 골치 아픈 것 중 하나가 ‘옷‘이다. 아무리 짧고 얇은 옷을 입어도 금방 땀이 흐르는가 하면, 장마비에 흠뻑 젖으면 물이 뚝뚝 떨어지기 일쑤다. 만약 비나 땀에도 옷이 젖지 않는다면, 더 나아가서 옷이 더위와 추위를 조절한다면 얼마나 편할까.

    이러한 가정이 황당한 상상만은 아니다. 온도가 올라가면 저절로 반팔 셔츠나 반바지로 모양을 바꾸는 옷, 아무리 땀을 흘려도 냄새가 나지 않고 저절로 세탁이 되는 옷, 향내를 배출하는 옷, 꿰맨 자국이 없어 100% 방수가 되는 옷, 수륙양용으로 입을 수 있는 옷 등 …. 최근 이러한 기능을 갖춘 특수 천을 개발하고 있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섬유회사와 연구소에서 실험 제작하고 있는 특수재질의 섬유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지만 아직은 가격이 너무 비싸 실생활에서 쓰이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머지 않은 장래에 이러한 옷들이 우리 생활에 이용될 것임은 틀림없다.

    형상기억합금은 일정한 온도가 되면 원래 프로그램 되어 있는 모양으로 되돌아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이 형상기억합금은 주로 공업용도로 쓰여 왔다. 또 많은 사람은 형상기억합금이라는 이름을 여성의 속옷과 연관지어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여성의 체형을 보조한 역할에 머물던 형상기억합금의 새로운 응용가능성이 제시되어 화제다. 영국에서 발간하는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는 최근 이탈리아에서 개발한 첨단 섬유업체의 신제품을 소개했다. 자동 형상기억합금인 니티놀과 나일론을 1 : 5로 섞어 짠 형상기억합금섬유는 우리의 일상생활에 무궁무진하게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형상기억합금섬유 무한한 가능성

    예를 들어 형상기억합금섬유로 셔츠를 한 벌 만들었다고 가정해 보자. 기온이 높은 낮에는 셔츠가 저절로 접혀 반팔 셔츠가 되었다가, 밤에는 다시 긴 팔 셔츠의 모양으로 바뀔 것이다. 특히 일교차가 심한 봄·가을이나 사막에서 훌륭한 옷감으로 사용할 수 있다. 또 단순히 입기만 하면 저절로 다림질한 효과가 나타난다. 뉴사이언티스트지는 “여행객의 오랜 꿈이 이루어질 것이다”는 한마디로 이 새로운 섬유의 장점을 표현했다. 옷뿐만이 아니다. 형상기억합금섬유로 커튼을 만들면 온도에 따라 저절로 열리거나 닫히는 자동 커튼이 될 것이다.



    세탁이 쉽고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염려가 없다는 것도 형상기억합금섬유의 장점이다. 하지만 이 섬유로 만든 옷이 대중화하기에는 좀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셔츠 한 벌에 무려 450만 원이라는 가격은 단시간에 넘기에는 너무 큰 걸림돌임이 틀림없다. 또 한 가지 곤란한 문제가 있다. 이 섬유는 금속으로 직조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금속의 색깔을 띤다는 것이다.

    세제가 필요 없는 세탁기가 등장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앞으로는 아예 세탁기가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섬유과학자들은 옷감에 서식하는 박테리아를 죽이기 위해 수백만 달러의 연구비를 써왔다. 박테리아는 옷에서 나는 냄새와 부패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박테리아의 생장을 막기 위해 섬유에 은가루를 집어넣거나 염소를 섞는 방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캘리포니아의 한 섬유업체에서는 박테리아를 박멸하기는커녕, 오히려 박테리아를 옷감에 주입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회사의 연구 목표는 유전공학을 이용해 사람의 땀이나 냄새의 원인이 되는 물질을 먹어 치우는 박테리아를 개발해 옷감의 올 사이에 집어넣는 것이다. 박테리아가 땀이나 냄새의 원인이 되는 물질을 먹어 치우기 때문에 단순히 옷을 입는 것만으로도 세탁 효과가 난다. 그렇다면 계절이 바뀌어 오랫동안 옷을 입지 않으면 기껏 넣어둔 박테리아가 굶어 죽지 않을까? 그럴 경우 스프레이로 먹이를 뿌려줄 수도 있고, 가끔 잠시 옷을 입고 땀을 내 박테리아를 ‘먹여 살리면’ 된다. 이 재미있는 기술은 쉽게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방수물질을 분비하는 박테리아를 만들어 섬유의 올 사이에 넣어주면 방수효과가 뛰어난 천이 탄생한다. 소독제나 방부제를 분비하는 박테리아를 천에 주입하여 별도의 약품이 필요 없는 훌륭한 붕대로 쓸 수도 있다. 땀을 먹어 치우고 대신 향을 내는 박테리아를 주입하면 별도로 향수를 쓰지 않아도 옷에서 늘 향기가 날 것이다.

    첨단장비와 무기가 등장하는 스파이 영화에서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등장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수중으로 침투한 특수요원이 잠수복을 벗고 마른 옷으로 갈아 입는 모습이다. 옷을 채 갈아 입기 전에 악당이 등장하면 007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물 속에서 물의 접근을 막아 체온을 유지하고 땅 위에서는 땀을 충분히 잘 배출하는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가진 섬유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미군 연구소는 최근 두 가지 특성을 가진 섬유를 개발했다. 이 연구소는 현재 미 해군 수중침투부대와 함께 실제 실험을 진행중이라고 한다.

    수륙양용섬유의 비밀은 폴리우레탄을 이용한 특수섬유에 있다. 이 섬유는 형상기억 고분자물질을 안팎으로 코팅한 3층짜리 특수섬유다. 18℃ 이하의 물 속에 들어가면 중앙부분에 있는 고분자물질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물이 천을 통과하는 것이 100% 방지된다. 물의 통과를 완전히 차단해 잠수부의 체온이 떨어질 염려가 없다. 온도가 18℃ 보다 높아지면 고분자물질이 느슨해진다. 때문에 땀이 천을 지나 외부로 배출된다. 특수 섬유로 만든 잠수복을 입으면 물 밖에 나와 옷을 갈아 입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해군의 전투력이 상당히 증강할 것이다.

    군은 물론이고 민간에서도 이 특수섬유의 응용은 무궁무진하다. 수시로 물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윈드서핑이나 제트스키 등의 수상 스포츠 동호인들, 해수욕장의 수상안전요원, 농부들에게도 이 섬유로 만든 옷이 꼭 필요할 것이다.

    한편 영국 케임브리지의 과학자들은 재봉틀 대신 레이저 광선을 이용하여 옷감을 꿰매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레이저로 바느질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옷감 사이에 적외선을 잘 흡수하는 화학물질을 첨가한 후 적외선 레이저를 쬐어주면 된다. 레이저가 옷감 사이로 흡수되면서 옷감은 바느질보다 훨씬 더 감쪽같이 ‘꿰매진다’. 이 기술을 응용하면 바느질 자국이 없는 매끈한 옷을 만들 수 있다.

    레이저 재봉 기술은 특히 방수천을 만드는 데 유용하다. 기존의 바느질을 사용한 천은 꿰맨 부분에 별도로 방수처리해야 물이 새어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레이저로 꿰맨 천의 경우 별도의 방수 처리 없이 한 번의 바느질(?)로 방수천을 만들 수 있다.

    흔히 섬유산업을 사양사업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연구에 따라서는 섬유의 새로운 가능성을 얼마든지 개척할 수 있다. 또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섬유산업의 부가가치는 엄청나다. 하나의 신기술을 여러 분야에 무궁무진하게 응용하기 때문이다. 다른 과학분야와 마찬가지로 섬유산업을 첨단산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우선 필요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