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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숲에서 농사일… “기분 끝내줘요”

호주 브리스베인시 도심농장 운영… 휴식공간·자연학습장 역할 ‘시민 발길 쇄도’

  • < 윤필립/ 시드니 통신원 > phillipsyd@hanmail.net

빌딩숲에서 농사일… “기분 끝내줘요”

빌딩숲에서 농사일… “기분 끝내줘요”
길 하나만 건너면 현대식 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선 도시 한가운데에 고향마을에나 있을 법한 닭장과 텃밭 등이 있다. 오이 호박 가지 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오렌지나무 사이로 토종닭들이 열심히 두엄더미를 파헤치고 있다. 호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브리스베인에 있는 도심농장(City Farm)의 풍경이다.

도시문명에 찌든 현대인에게 정신적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만든 이 도심농장은 퀸즐랜드주의 주도인 브리스베인 시당국의 소유로, 자연친화적인 삶을 원하는 시민의 자원봉사를 통해 운영된다. 농장에서 생산하는 채소·과일·달걀 등은 양로원 등에 보내 불우이웃 돕기에 쓰인다.

호주의 7월은 분명 겨울이지만 브리스베인은 아열대성 기후에 속한 도시라 도심농원의 햇볕이 마치 봄날처럼 느껴진다. 오전 학습을 마친 인근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자연 과목을 배우기 위해 도심농장을 찾았다. 학생들이 맨 처음 몰려간 곳은 닭장이었다. 철망으로 울타리만 만들어 놓은 닭장 안에는 오렌지와 올리브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학생들이 준비한 모이를 뿌리자 여기저기서 닭들이 몰려나와 열심히 모이를 쪼아먹었다. 잠시 후 닭장 안쪽에서 달걀을 발견한 학생들의 환호성 소리가 들렸다.

닭장 반대 쪽에는 채소를 심어놓은 텃밭이 있다. 텃밭의 이랑 사이로 넥타이를 맨 중년 남자가 씨앗을 묻기 위해 삽질을 하고 있었다. 상추·브로콜리 등을 심은 채마밭에서는 닭똥 냄새가 났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잡초를 뽑은 20대 여성이 잡초와 함께 딸려나온 지렁이 서너 마리를 손으로 잡아 지렁이를 키우는 나무상자 속에 옮겨주었다.

100% 유기농법으로 채소와 과일을 재배하고 닭 토끼 염소 등을 키우는 도심농장은 도시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연학습장이다. 염소똥을 모아 오렌지나무에 뿌리면 당도가 훨씬 높은 오렌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책이 아니라 농사 체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또 인분을 재와 버무려 거름으로 쓰면 화학비료보다 더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다는 것도 1년 내내 이어지는 자연학습의 현장에서 알게 된다.



수확 농산물은 불우이웃 돕기 활용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도시 근로자들에게는 도심농장이 추억의 공간이 된다. 자칫 바쁜 도시생활에 쫓기다 보면 정신적으로 각박해지는데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도심농장을 찾아와 한동안 일하다 보면 어느새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는 직장인도 있다.

도심농장의 한가운데쯤에는 원두막처럼 생긴 취사장이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날마다 음식을 준비해 도심농장을 찾는 시민에게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는 것. 음식 재료 역시 대부분 도심농장에서 수확한 것을 그대로 쓴다. 채소 위주로 만든 음식을 한 접시 먹어보니 맛이 좋았다. 그날의 취사당번 데이비드씨(34)는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채소들이라 훨씬 맛이 좋다”고 말했다. 취사장 옆의 허름한 창고는 주로 목공 일을 하는 곳이다. 거름통도 만들고, 닭을 키우는 계사도 이곳에서 직접 만든다. 그날은 축제용으로 쓸 장식품 등을 만들고 있었다. 두 달에 한 번씩 도심농장축제를 여는데 시민의 호응은 매우 뜨겁다고 한다.

특히 직장인의 참여도 아주 높아 주로 주말 오후를 택해 축제를 연다. 축제는 주로 음식 나누기와 강연, 세미나 등으로 꾸민다. 축제용 음식 역시 도심농장에서 거둔 재료를 사용한다. 강연과 세미나 주제는 다양하지만 유기농법과 관련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얼마 전에는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위협’이라는 주제를 놓고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도심농장 관리사무소 앞 칠판에 쓰인 ‘인간이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지 않으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는 경구는 도심농장을 찾는 브리스베인 시민이 늘 가슴에 새기는 금과옥조다.



주간동아 2001.09.13 301호 (p62~62)

< 윤필립/ 시드니 통신원 > phillipsy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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