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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족이 무슨 죄가 있나요”

성범죄자 신상 공개 후 상당수 직장 잃고 가정 붕괴 … 정부측 “부분공개여서 직접 피해 없을 것”

  •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내 가족이 무슨 죄가 있나요”

“내 가족이 무슨 죄가 있나요”
법적 형평성과 위헌 여부 등의 논란 속에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의 신상이 인터넷과 관보를 통해 지난 8월30일 전격 공개되었다. 이날 국무총리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공개한 169명의 성범죄자들은 지난해 7~12월에 범죄를 저지르고 이미 사법부가 내린 죄의 대가를 치른 사람. 하지만 이번에는 행정부가 이들의 이름(한자 포함)과 직업(직능으로 한정), 생년월일, 주소(구ㆍ군까지), 범죄사실을 포함한 신상 명세를 공개함으로써 이들의 ‘인격’은 사실상 영구 매장되었다.

특히 이 중에는 13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성추행범이나 강간범 등 사회적 파렴치범과 함께 형량의 잣대를 두고 사법부에서조차 말이 많은 ‘원조교제’ 대상자들도 27명이나 포함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극도의 불안감 … 자살 생각하기도

“내 가족이 무슨 죄가 있나요”
‘한국판 주홍글씨’ ‘사회적 살인’ 이라는 신상공개 반대론자들의 비판에 대해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주소와 직업을 정확하게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이 직접적인 피해를 볼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여성단체들은 오히려 완전한 공개를 요구하는 상태.

하지만 정부의 이런 주장과 달리 성범죄자의 신상은 인터넷상의 전화번호 검색 시스템만으로도 전화번호는 물론, 주소의 번지까지 일부 검색이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한 원조교제 신상 공개자의 대부분은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였고, 이미 가정이 와해했거나 붕괴 일보 직전에 놓였다. 심지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가장 큰 고통으로 느끼는 것은 “한 개인이 저지른 범죄로 왜 가족 전체가 성범죄자의 가족이라는 멍에를 짊어져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원조교제 대상자를 중심으로 신상공개 된 당사자와 가족들이 처한 현실을 들어봤다.



O씨(46, 회사원)=지난해 16세 소녀 2명과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법원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O씨는 신상공개 이후 회사 직원이 인터넷에 들어가는 모습만 봐도 깜짝깜짝 놀란다. 지난달 집에서 쫓겨난 후 이제 믿을 곳은 회사밖에 없는 그로서는 자신의 성범죄 사실이 드러날까 봐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셈.

특히 그는 부인에게 쫓겨난 것이 아니기에 아픔이 더하다. 부인은 “한번 실수”라고 넘겼지만 지난 6월 위원회에서 배달된 신상 공개 통지서를 본 딸(17ㆍ고2)이 “도저히 얼굴 보고는 못 살겠다”며 아버지에게 별거를 제의한 것. 딸은 아버지의 신상이 공개될 경우 학교에서 모든 것을 다 알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몹시 괴로워했다. 딸은 “아빠가 나가지 않으면 내가 집을 나가겠다”고 다그쳤고, 그는 결국 지난 달 집을 나와 단칸 셋방 신세를 졌다.

“(영업직 사원이라) 뿌려놓은 명함을 보고 (아이들이) 밥 사달라, 술 사달라, 새벽이고 낮이고 전화를 해댔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만난 날… 너무 술에 취했습니다. 그 후 가출 청소년 일제 단속에 걸린 여학생의 지갑에서 제 명함이 발견되었고….” 그날의 사건을 술회한 그는 “죽고 싶은 심정이다”고 말했다. 60일 간을 감옥에서 보낸 후 70시간을 재활용분류센터에서 사회봉사활동을 한 그는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었다. 그는 “여고생인 딸아이가 시집갈 때까지는 얼굴을 보지 못할 것 같다. 회사에 소문이 나면 영업 쪽이기 때문에 용서가 안 됩니다. 그럼 어떡하죠?” 그는 기자가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아낸 것에 더욱 초조해하며 다가올 미래를 불안해하였다. 그는 회사에서마저 쫓겨나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노숙’(露宿)밖에 없다고 암담해했다.

P씨(38, 사업)=후배가 경영하는 단란주점에 놀러 갔다 만 16세 여학생과 잠자리를 함께한 P씨는 지난해 징역 12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신상 공개 통지서가 날아오면서 부인과 다툼이 잦아졌고, 끝내 별거에 들어갔다. 부인이 이혼을 요구한 것. 최근에는 10여 년을 넘게 해온 슈퍼마켓 문도 닫았다. 동네에 그가 성범죄자라는 소문이 나면서 손님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방황한 그는 갈 곳이 없어 역시 슈퍼마켓을 하는 부산의 형 집을 찾았지만 신상 공개 당일인 8월30일은 형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밤거리를 헤매었다. 손님들이 자신의 정체를 알아볼 경우 형 가게마저도 망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신상 공개를 중단해 준다면 감옥살이나 사회봉사활동, 그 어떤 것이든 다시 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다.

“내 가족이 무슨 죄가 있나요”
“집사람이 아파 누워 있어도 가보지도 못합니다” 그는 무엇보다 부인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식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괴로워하였다.

“개학했는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있어요.” 박씨의 부인(33)은 이번 신상 공개를 성범죄자에 대한 또 하나의 ‘연좌제’로 비유했다. 그녀는 “사회적 평판과 이목, 가문과 출신, 이런 것이 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성범죄자의 이름을 공개한다는 것은 아이와 그 부인에게 성범죄자의 자식·부인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평생 괴롭히는 꼴이다”며 신상공개를 격렬히 비난했다.

그녀는 화대를 받고 윤락을 한 여학생 부모와 합의하기 위해 경찰서에 갔다가 겪은 일을 말하며 또 한번 흥분했다. “여학생은 깔깔 웃으며 잡담하고 있고, 학부형들은 합의금을 더 타내기 위해 언성을 높이며 저를 죄인 취급하더군요. 경찰도 마찬가지고요.” 그녀는 그 후 우울증에 걸려,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신상 공개 당일 결국 다시 앓아 누웠다. 그녀는 납치하거나 강요에 의한 것도 아닌 상태에서 상습적으로 윤락을 한 여학생이 과연 세상에 대한 판단력이 없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L씨(33, 회사원)=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18세, 15세 소녀와 각각 한 차례씩 원조교제하다 적발되어 처벌 받은 L씨의 부인(31)은 신상 공개 당일인 30일 오후 남편에게서 충격적인 전화를 받았다. “이제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 없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날 그는 정상적으로 회사에 출근했으나 그의 특이한 이름이 화를 불렀다. 인터넷 회사인 관계로 신상공개된 명단은 금세 직원 사이에 퍼졌고 사는 곳과 이름 한자까지, 더구나 생년월일까지 똑같은 그는 금방 들통이 났다. 한 달 동안의 구속기간에 병가를 내며 범죄 사실을 숨겼지만 결국 헛수고였다.

“아내는 자세한 내용을 몰라요. 어쩌다 제가 실수한 것으로 알고 있죠. 아내가 인터넷에 들어가 범죄 사실을 아는 날이면 부부관계는 끝장입니다.” 그러나 L씨의 부인은 이미 남편의 범죄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남편을 믿습니다. 가뜩이나 힘들고 괴로운 사람에게 저까지 부담을 지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자세한 사연은 알 수 없지만 남편이 먼저 원조교제를 제의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녀는 남편에 대한 깊은 이해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살아갈 일에 대해 걱정이 태산인 것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 친척이나 일반인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부부와 아이에게 다가올 시련이 너무 끔찍하기 때문이다.

L씨의 부인은 “인터넷 신상 공개를 빨리 중지하지 않을 경우 소송을 준비하겠어요. 아무리 행정처분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해당자뿐 아니라 가족에게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실질적으로 주고 있다면 이는 이중 처벌에 해당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반발하였다.

“이름 밝힌다고 성범죄 근절되겠나”

J씨(43, 사업)=“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서 제 이름 석자를 떳떳이 못 쓰는데 살아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선후배들과 기계 부속품 생산 공장을 함께 운영하는 J씨는 자신의 이름이 인터넷에 오르자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다. 자꾸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 것이다. 지난해 전화방에서 만난 여자들과 잠자리를 한 그는 얼마 안 되어 경찰에 연행되었다. 그녀들이 만 13세, 14세에 지나지 않는 미성년자였기 때문. 상습적으로 매춘을 한 여학생들은 또 다른 상대남자의 손지갑을 훔치다 적발되었고, 그녀들의 수첩에서 그의 이름이 발견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 때문인지 집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지루한 합의과정과 재판이 끝날 때까지 참고 견뎌줬지만 이제는 제가 부끄러워 안 되겠습니다.” 그의 경우도 집으로 배달된 신상 공개 통보서가 문제가 되었다. 아들이 아버지의 원조교제 사실을 알았고, 그 사실이 인터넷에 오른다는 것을 안 후 “학교 가기가 싫다”며 극도의 증오심을 드러낸다는 것. “이렇게 신상을 공개한다고 저 같은 사람이 없어질까요?” 그는 욕망을 참지 못하고 미성년자의 성을 사는 성인에 대한 처벌은 당연하지만 근본적으로 청소년들이 거리에 나와 성을 팔지 않아도 되는 근본 대책을 병행하지 않는 신상 공개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주장한다. “백 번 죽어도 마땅한 죄인이지만 이런 잔혹한 짓은 그만 두는 게 옳습니다. 가족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는 “죽고 싶다”는 말을 반복하며 정부의 성범죄자 가족에 대한 배려를 호소했다.

L씨(35, 사업)=“아이들이 예뻐 그냥 머리를 쓰다듬는다는 게 그만….” 지난해 13세 미만 미성년자 성추행 혐의로 구속된 L씨는 자신의 죄를 차분하게 모두 인정했다. 그리고 그는 “이제 모든 것을 포기했기 때문에 오히려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자신이 운영한 업소도 모두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다. 부인과도 이미 이혼했다. 도저히 당신 같은 사람과는 살지 못하겠다는 말에 그도 수긍했다. 정신병원도 다녔다고 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L씨는 “이름을 공개함으로써 성범죄를 근절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잘못된 것이다. 상습적인 성범죄, 특히 미성년자에 대한 성추행은 일종의 병적 현상이기 때문에 사회에서 격리하지 않는 이상 막기가 힘들다”고 주장한다.



주간동아 2001.09.13 301호 (p40~42)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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