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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사춘기의 블랙홀 ‘청소년 우울증’

위험한 도피 ‘자살’을 꿈꾼다

성적 압박·가정불화 등 스트레스 극한 결정으로 … 현실에 대한 반항심리도 작용

  • < 박은경/ 자유기고가 > siren52@hanmail.net

위험한 도피 ‘자살’을 꿈꾼다

위험한 도피 ‘자살’을 꿈꾼다
제대로 학교를 다녔다면 고등학교 3학년일 재영이(가명, 18, 여). 지금 그는 9개월째 휴학중이다. 수차례에 걸친 자해와 자살 기도 후유증으로 재영이는 아직 세상에 발들이기를 망설이고 있다.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재영이를 더욱 두렵게 만든다.

아버지가 사업을 하는 재영이네 경제사정은 부유한 편. 하지만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못해 집안엔 항상 냉랭한 공기가 감돌았다. 어릴 때부터 자존심이 유달리 강하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인 재영이는 부모의 불화를 감당하기가 몹시 힘들었다. 아버지와 다툰 날이면 엄마의 화풀이 대상은 언제나 재영이였다. 고집 센 재영이도 지지 않고 대들어 엄마의 미움을 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재영이는 처음으로 어른 흉내를 내며 ‘유서’를 썼다. “우리집은 가난하지도 않은데 엄마 아빠는 왜 맨날 싸우기만 할까. 정말 창피하다. 엄마가 싫다. 왜 엄마 기준에 날 끼워 맞추려 할까.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자신을 미워하는 엄마, 늘 싸움만 일삼는 부모 사이에서 재영이가 찾은 탈출구는 오로지 공부였다. 그러나 ‘강북의 날라리 학교’로 소문난 고교에 진학하면서 재영이는 학교 분위기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부모를 졸라 강남으로 학교를 옮긴 재영이는 가족과 따로 떨어져 입시전문 기숙학원에 들어가야 했다. ‘일류대학 진학’이 목표인 자신의 욕심도 있었지만 부모가 재영이를 위해 이사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

기숙학원에 처음 들어갔을 때만 해도 재영이는 끔찍이 싫어하는 집안 분위기에서 탈출했다는 해방감에 들떴다. 그러나 그런 기분도 잠시, 학원은 아이들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떠들거나 시험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매를 피할 수 없었다. “먹고 잠자고 공부하는 시간, 어느 것 하나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다. ‘나’라는 인간은 없고 마치 기계처럼 학원이 정해준 시간표에 맞춰 움직여야 했다. 너무 살벌하고 답답해 숨이 막혔다.”

어두운 가정환경으로 인해 어릴 때부터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성격의 재영이는 갈수록 고민과 갈등에 시달렸지만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럴 만한 친구도 없었다. 부모에게 이야기하면 “네가 원해 한 일인데 이제 와서 왜 투정을 하느냐”며 핀잔을 들을 게 뻔했다. 그렇게 욕심을 부린 공부나 성적도 더 이상 탈출구나 위안이 되지 못했다. 재영이는 결국 손목을 그었다. 자살 시도의 ‘흔적’은 지금도 선명하다. “제대로 잘 기르지도 못할 거면서 자식은 왜 낳았나. 부모도 귀찮고 세상도 싫었다. 날 너무 힘들게 하는 것뿐이었다. 공부도 부모도 전부 잊고 정말 단 하루만이라도 마음이 편해지고 싶었다.”



위험한 도피 ‘자살’을 꿈꾼다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와 부모의 억압으로 반항과 가출, 정신병원 입·퇴원을 거듭한 혜미(가명, 17, 여)는 얼마 전 대안학교로 전학해 겨우 안정을 찾고 있다. 그의 부모는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 양친 모두 전문직 종사자다. 특히 혜미의 아버지는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로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자식에게도 자신의 기대치에서 벗어나면 엄한 꾸지람으로 일관했다. 자식 교육만큼은 어머니 역시 아버지 편이었다.

항상 ‘최고’만을 바라고 성적으로만 자식을 평가하는 ‘잘난’ 부모 밑에서 ‘전교 10위권’인 혜미의 성적은 보잘것없고 초라했다. 부모 등쌀에 떠밀려 ‘일류’고교에 진학한 혜미는 중학교 때보다 성적에 대한 압박감을 더욱 심하게 느꼈지만 아버지가 무서워 감히 힘든 내색조차 못했다. 대신 혜미가 찾은 유일한 도피처는 음악이었다.

일본의 유명 록그룹에 푹 빠진 혜미는 매일 밤 방문을 잠그고 그들의 노래를 들었고 그때마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렸다. 어느날 기척도 없이 자신의 방으로 불쑥 들어온 아버지에게 노래를 들으며 우는 모습을 들킨 혜미는 미처 변명할 틈도 없이 따귀를 맞았다. 그날로 혜미는 책가방만 든 채 집을 뛰쳐나왔다. “아버지가 너무 무서웠다. 엄마는 차갑고 냉정했다.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학교도 가기 싫었고 집이 너무 숨막혀 무작정 도망치고 싶었다.”

가출한 지 열흘 만에 아버지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온 혜미는 다음날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해 그곳에서 2개월 동안 갇혀 지내야 했다. 퇴원 후에도 혜미를 둘러싼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자신을 조금도 이해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집안 망신이라며 펄쩍 뛰는 부모를 혜미로서는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혜미의 자살 기도에 부모는 또다시 정신병원 강제 입원으로 맞섰고, 팽팽하던 부모 자식간 줄다리기는 가까스로 대안학교라는 타협점을 찾았다. 비로소 혜미는 ‘일류’와 ‘최상의 성적’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고교 3학년인 다혜(가명, 18, 여)는 어릴 때부터 하나밖에 없는 두 살 위 오빠와 사사건건 경쟁해야 했다. 장남에 아들이라는 이유로 늘 오빠에게만 쏠린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이 다혜는 몹시 부러웠다. “어떻게 해서든 오빠보다 공부를 잘해 엄마 아빠한테 칭찬을 받고 싶었다”는 다혜. 고교에 진학하고 치른 첫 시험에서 다혜는 죽을 힘을 다해 매달렸고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전교 1등을 차지했다. 하지만 부모의 칭찬을 기대한 다혜는 그 대신 뜻밖에도 ‘친구를 죽인 아이’가 되어 버렸다.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전교 1등 자리를 놓치지 않은 한 학생이 다혜한테 뒤져 2등을 하자 자신의 아파트에서 몸을 날린 것이다.

다음날 학교에서 소식을 전해 들은 다혜는 충격을 이기지 못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책과 교복을 찢어 불태우며 자살을 기도했다. “난 부모님께도 사랑 받지 못한 못난 인간이다. 이런 나 때문에 같은 학교 친구까지 죽었다”는 자책감에 사로잡힌 다혜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도대체 성적이 뭔가, 학교가 뭔가. 친구도 선생님도 부모님도 오빠도 모두 꼴 보기 싫었다”는 그는 결국 학교를 그만뒀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다혜는 지방 학교로 전학했다. 그러나 친구의 죽음은 다혜에게 죽을 때까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주간동아 2001.08.23 298호 (p36~37)

< 박은경/ 자유기고가 >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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