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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패륜게임이라니

  • < 임기용 / 한국통신 멀티미디어 연구소 선임연구원 >

아니, 패륜게임이라니

아니, 패륜게임이라니
‘일본산 패륜게임 인터넷 확산’ ‘패륜게임 모방 친구 누나 성폭행’ ‘검찰, 패륜게임 사이트 단속’ 최근 일주일 사이에 한 신문에서 보도한 기사 제목들이다.

‘패륜게임’은 본래 일본에서 유행하는 음란성 성인 오락물의 일종으로 일본에서는 H게임(‘변태’의 일본식 발음인 ‘헨타이’의 알파벳 첫 글자를 딴 것)이라 불리며, 국내에선 야겜(야한 게임)으로 불렸다. 국내에서 최근 불법 복제한 일본 성인용 강간게임이 인터넷으로 급속히 유포하자 국내 언론에서 이를 염려하여 반사회적 게임이라는 딱지를 붙인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리고 검찰의 신속한 대응으로 자살 사이트, 폭탄 사이트에 이은 또 하나의 사이트 폐쇄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사실, 스타크래프트나 리니지 등의 게임을 두고 폭력성 운운하는 데에 대해 ‘뭐, 그 정도야…’라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필자에게도 이 강간 시뮬레이션 게임은 좀 곤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게임이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패륜게임’으로까지 매도될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간다. 몇몇 사람의 의견처럼 ‘게임에 중독되면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게임에서 하던 행동을 현실에서도 하게 된다’든가 ‘패륜게임에 빠지면 여성을 단지 성욕 분출의 대상으로만 인식한다’는 말에는 수긍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에는 불건전한 게임의 내용이 곧 현실에서도 인륜이 마비하는 사태로 이어질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 게임을 제작해 유통시킨 일본은 벌써 전 국민적인 패륜과 강간 행위로 나라 전체가 흔들려야 하지 않았을까? 아니, 그 전에 이미 국가 기관에서 단속의 칼을 휘둘렀을 것이다.

시뮬레이션 게임이 다른 장르의 게임보다 현실에 반영될 가능성은 높지만 현실과 어느 정도의 연결고리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 게임도 청소년들에게 어떤 메카니즘에 의해 어느 정도의 해악을 미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인간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적인 행위만 하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성은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사이버화하고 있다. 야동·야설 등의 훔쳐보기, 인터넷 성인방송의 상호작용적 자위행위,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과 같은 매개체에 의한 대리행위, 그리고 머지 않아 데몰리션맨이나 론머맨에서 보여준 현실감 나는, 아니 현실보다 더 사실적인 사이버 섹스가 등장할 것이다. 성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집착이 인터넷 기술과 결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인간의 성욕은 끝이 없고 현실에서 이를 모두 충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의 사이버화를 거부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일지언정 기존의 관습에만 근거해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이러한 현상이 기술의 발달과 인간의 욕망-인간에게 욕망이 있는 한 곧, 인간이 사이보그가 아니고 생리와 본능을 지닌 육체를 지닌 한-이 빚은 합작품이란 점을 생각해 볼 때 이미 성의 사이버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사회라는 공존의 그릇을 깨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개인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가능한 많은 부분을 개인에게 맡기는 것이다. 국민은 국가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가르치려 하거나 간섭하는 것을 싫어한다. 개인도 그만한 판단력은 가졌기 때문이다. 인터넷 내용 등급제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이제 거품만 걷으면 오염된 호수가 깨끗해지리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깨달아야 할 사실은 인간은 1급수 맑은 물에 사는 산천어라기보다는 탁한 호수에 어울리는 붕어류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머릿속에서는 늘 1급수를 상상하지만 우리의 육체는 이끼와 거품이 낀 호수에 적합한 종(種)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몸에 대한 인식부터 제대로 하고 우리가 뛰어놀 곳을 정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주간동아 2001.07.19 293호 (p71~71)

< 임기용 / 한국통신 멀티미디어 연구소 선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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