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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자세 중국 외교부 “만만한 한국”

차기 주한대사 40대 중반 리빈 참사관 내정 … 탈북자 처리 외교통상부 입도 ‘뻥긋’ 못해

  • < 홍순도/ 문화일보 베이징 특파원 > mhhong@munh

고자세 중국 외교부 “만만한 한국”

고자세 중국 외교부 “만만한 한국”
대부분의 한국인은 한국과 중국이 명실상부하게 대등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또 중국이 북한보다는 한국을 더 중시할 게 확실하다고 지레 짐작하는 경우가 많다. 겨우 국교 수립 10여 년 만에 교역액 400억 달러, 상호 방문객 200만 명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는데다가 양국의 경제협력이 비교적 한국이 시혜를 베푸는 형식으로 진행한 만큼 그럴 만도 하다. 여기에 한국의 대중(對中) 차관 공여 총계가 올해 2억 달러를 넘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까지 더할 경우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최근 중국 외교부가 단행한 외교관 인사(人事)는 이것이 ‘중대한 착각’임을 보여준다. 한국인의 희망 섞인 생각과는 달리 한국을 아예 눈 아래로 내려다볼 뿐 아니라 아직은 북한과의 관계를 더 중시하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살 수 있는 인사를 최근 중국 외교부가 내부적으로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 한국 언론이 보도한 대로 중국 외교부가 북한 주재 중국 대사관의 서열 4∼5위에 지나지 않는 리빈(李濱, 45) 공사급 참사관을 이임하는 우다웨이(武大偉) 주한대사의 후임으로 내정한 게 바로 그것이다. 겨우 40대 중반의 나이로 부국장에 지나지 않는 ‘새파란’ 중견 외교관에게 한국 대사라는 중책(?)을 맡기는 파격적 인사를 단행하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리빈 대사 내정자는 벌써부터 ‘황제의 소년 칙사’라는 말을 들을 정도다.

주재국 대사에 누구를 보내는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파견 국가의 전권 사항에 해당한다. 그러나 대사 내정자에 대한 다양한 반응을 염두에 둬야 하는 것 또한 주재국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그동안의 주중 한국대사가 초대 노재원(盧載源) 대사에서부터 현재의 홍순영(洪淳瑛) 대사에 이르기까지 전원이‘초중량급’ 장관급이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중국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더구나 초대 장팅옌(張庭延) 대사와 2대 우대사는 모두 임명 당시에는 부사장(부국장)급이었다. 이번 리대사 내정자에 대한 인사도 ‘주한 대사에는 부국장급을 보임한다’는 외교부의 기본적 원칙 아래 이뤄졌다는 사실을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그의 대사 내정을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중국 외교부와 한국 대사관의 일부 관계자들이 내세우는 이런 주장은 리대사 내정자가 상당한 역량의 ‘한국통’이라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1980년대 초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로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외교부의 한국 담당 부서인 아주사(亞洲司, 아주국)의 조선처 처장을 30대 중반 때인 90년대 초반에 일찌감치 역임했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그 정도의 전문가는 현재 외교부 내에 없다고 해도 좋다”는 주중 한국 대사관의 한 고위 관계자의 말이 공연한 칭찬만은 아닌 듯하다.

중국이 ‘파격적’으로 그를 주한 대사에 내정하면서 수차례 격렬한 내부 토론을 거쳤다는 점 역시 한국이 이번 인사를 굳이 불쾌하게만 바라볼 필요가 없음을 시사한다. 원래 중국 외교부는 주한대사 인선을 놓고 두 가지 카드를 검토했다고 한다. 한국의 체면을 고려해 한반도 문제와는 별 관계가 없는 국장급을 임용하는 카드와 직급은 낮지만 한국통인 리빈을 밀고 나가는 카드를 쥔 채 최종 순간까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것이다. 외교부 내부에서 “이번 인사는 마지막에 실무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느니 “직급에서 그는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으나 실무에서는 최선이었다”는 얘기가 꾸준히 흘러나오는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리빈 대사내정자를 보는 중국 내 한국인 사회의 시각과 주중 한국 대사관을 중심으로 하는 베이징 외교가의 시각은 아무래도 부정적인 쪽으로 더 많이 쏠린다. 여기에는 너무나 분명한 두 가지 수긍할 만한 이유가 있다.

고자세 중국 외교부 “만만한 한국”
먼저 다 알다시피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점에서는 굳이 다른 예를 들 필요조차 없다. 160여 명에 이르는 중국의 재외 주재 대사에 40대가 거의 없다는 사실 하나만 봐도 충분하다. 게다가 그가 겨우 40대 초반을 막 지나 중반으로 접어드는 점까지 감안하면 더 이상의 얘기는 사족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젊다는 사실은 바람직한 측면도 없지 않다. 참신한 발상과 적극적 사고 및 추진력이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중국이 최근 외교부를 비롯한 모든 당-정(黨政) 기관의 간부들을 젊은 층으로 대폭 물갈이하는 이른바 ‘연경화’(連輕化)를 더욱 정력적으로 추진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외교에는 상대가 있다. 딱 맞을 필요는 없겠지만 같은 직급이라면 나이 차가 크게 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 외교통상부 직원들이 그의 나이 정도에는 평균 과장이고, 승진이 빨라야 심의관 정도의 직급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중국 정부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주중 대사관의 한 중견 외교관은 “한국 주재 주요국 대사에서 40대는 찾아볼 수 없다. 나이로 볼 때 한국의 과장급에 지나지 않는 그가 대사로 간다는 것은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면서 그를 인선한 것에 대해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직급이 너무 낮다는 것도 간과할 성질의 것이 아닌 것 같다. 원래 중국은 미국·러시아·일본·유엔·북한·영국·프랑스·독일 주재 대사에는 부부장급을 임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도 현직인 왕궈장(王國章) 대사를 비롯해 차오중후이(喬宗淮), 완융샹(萬永祥) 등 두 전임 대사들이 모두 원로 부부장급이다. 이들은 부사장인 리빈 대사 내정자보다는 무려 3계급이나 높은 고위급으로 직급만 놓고 보면 북한과 한국에 대한 대접이 얼마나 다른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중국의 대한(對韓) ‘고자세 외교 ’는 근본적으로 역사 깊은 중화주의(中華主義)에서 말미암은 것이지만 ‘중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정치권의 ‘대(對)중국 저자세 외교’가 초래한 측면도 있다. 이를테면 여야를 막론하고 중국을 찾는 정치인들이 무조건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 주룽지(朱鎔基) 총리, 리펑(李鵬) 전인대 상무위원장 등 이른바 ‘빅3’ 중 한 명을 만나려고 엄청난 로비를 한다는 것은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 그래서 ‘빅3’와 만나 기념사진 한장 찍으려는 정치인들은 오기 전부터 중국 내 인맥을 활용해 중국 고위층 인사 누구를 만날 수 있을지부터 사전에 점검하고 중국 방문을 결정할 정도다.

지난 6월 말에 중국 공산당 초청으로 중국을 공식 방문한 김중권(金重權) 민주당 대표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의전은 오히려 ‘이례적’인 경우. 지난 92년 한-중 수교 이후 처음 이뤄진 집권당 대표의 공식방문이어서 그런지(93년 당시 민자당의 김종필(金鍾泌) 대표가 중국 방문을 계획했으나 무산되었음), 김대표는 당시 방중 기간중 장쩌민 국가주석은 물론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 받는 황쥐(黃菊) 상하이 당서기와 다이빙궈(戴秉國)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그리고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부장 등 당정의 수뇌부와 연쇄 면담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김대표의 방중에 극진한 대접을 한 것은 김대표의 위상보다는 그가 김대중 대통령의 뜻이 담긴 친서를 소지한 ‘특사’임을 고려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이처럼 중국이 고자세를 취하는 데는 우리 정부의 대중국 외교력 부재도 한몫을 한다. 근래에는 한국 대사가 탕자쉬안 외교부장을 만난 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이에 대해 베이징 주재 한국 대사관 관계자들은 “우리 대사가 부장(장관)을 만날 이유(일)가 없다”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해 ‘안 만난다’는 것보다는 ‘못 만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 때문에 한-중 외교관계 파트너십은 ‘한국 대사-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 한국 공사-중국 외교부 부사장(부국장)’으로 굳어지는 듯하다.

한국의 ‘저자세 외교’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야는 한국과 중국에게 모두 골치 아픈 탈북자 문제. 한국의 대중국 외교는 ‘한수 접고 들어간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탈북자 문제의 경우, 우리 외교부는 말도 꺼내지 못할 만큼 중국 정부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문제다. 지난 6월 장길수군 일가족 7명이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 베이징 사무소에 진입해 제3국을 거쳐 한국 망명을 실현한 것은 중국 정부가 허를 찔린 극히 예외적인 사례다. 한국의 일부 보수언론은 지난해 1월 중국 정부가 탈북자 7인을 북한으로 강제 송환한 것과 대비해 이번 사건을 ‘극적인 쾌거’로까지 묘사했지만 한국 정부와 수만 명을 헤아리는 중국 내 탈북자들에게 미칠 ‘후환’을 감안하면 현명한 해법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사실 그런 ‘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UNHCR 베이징 사무소가 주중 한국 대사관 영사부 건물 바로 아래층에 있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 베이징 외교 소식통들은 장군 가족도 다른 탈북자들처럼 일단 한국 대사관 영사부에 가서 한국 귀순을 신청했다가 난색을 표하자 ‘2층(UNHCR 사무소) 진입’을 감행한 것으로 관측했다. 사실 베이징까지 들어온 탈북자들은 대개 한 번은 한국 대사관에 찾아가 귀순을 신청하지만 중국 정부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대사관 직원들의 역할은 고작 이들에게 중국돈 200위안을 쥐어주는 것뿐이다. 그래서 한국 대사관측은 이번 ‘사고’로 UNHCR 사무소와 영사부가 위아래층에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될 경우 중국 내 탈북자들이 이곳으로 대거 몰려올 것을 걱정해 쉬쉬했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안상수·황우여 의원 등 한나라당 인권위 소속 의원들이 베이징을 방문해 탈북자의 규모와 생활실태 등을 파악하고 인권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기로 한 것은 그 의도가 어떻든 오히려 정부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더 크다. 장길수군 가족의 UNHCR 망명 신청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정치권의 요란한 한건주의식 접근은 더욱더 중국의 고자세를 부추기고, 그에 순응하는 한국의 저자세 외교를 고착화하는 데 기여할 뿐이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01.07.19 293호 (p18~20)

< 홍순도/ 문화일보 베이징 특파원 > mhhong@mun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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