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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떡해” … 축출 위기 맞은 와히드

축재 의혹, 잇단 정치 실패로 민심 등돌려… 8월1일 탄핵 결정‘시한부 권좌’

“나 어떡해” … 축출 위기 맞은 와히드

“나 어떡해” … 축출 위기 맞은 와히드
시민의 힘’은 진정 ‘와히드’를 버렸는가. 인도네시아 사상 처음으로 민주적 절차에 의해 집권한 압두라만 와히드 대통령이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권좌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인도네시아 국회(DPR)가 지난 5월30일 와히드 금융 스캔들과 관련해 그의 탄핵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국민협의회(MPR) 특별총회를 오는 8월 1일 소집키로 함에 따라 최근 1년여간 벌여온 정치권의 권력투쟁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와히드 대통령은 탄핵을 모면하기 위해 6월 1일 기습적인 개각을 단행하고, 국회 해산을 위협하는 등 극약처방에 나섰으나 오히려 주변 지지세력이 이탈하면서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특히 와히드 대통령의 마지막 ‘히든카드’인 ‘비상사태 선포’를 물리력으로 뒷받침해야 할 군과 경찰마저 그에게 집단반발하며 등을 돌림으로써 그의 정치적 운명이 막을 내리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군·경 항명… 미국도 지원 주춤

와히드의 사임요구를 거부했다가 6월1일 직무정지 명령을 받은 수로요 비만토로 경찰청장이 “경찰은 더 이상 정권의 하수인이 될 수 없다”며 대통령의 부당한 명령에 항명토록 지시를 한데다, 전국 지방경찰청장 30명이 이에 동조하며 비만토로 청장을 지원하고 나서면서 경찰이 먼저 와히드를 배신했다. 여기에 군의 모든 권한을 장악한 위도도 아디수칩토 통합군(TNI) 사령관도 3군 참모총장을 비롯한 군내 핵심 실력자들과 함께 경찰청장의 사임 거부는 합법적인 대응이었다며 그를 전폭 지원하고 나서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사실상 반기를 들었다. 사면초가에 놓인 와히드에게 든든한 지원 세력이 될 것으로 예상된 미국의 반응도 매우 냉담하다. 미 국무부가 두 차례에 걸친 공식 성명을 통해 “민주적이고 헌법적인 방법으로 당면한 정치 위기 극복 방안을 도출한다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지지할 것”이라고 밝혀, 정치권의 탄핵 추진을 묵인할 것임을 강력하게 시사했기 때문이다. 한편 집권 초기 각종 인권유린 가담자 처벌과 관련해 와히드의 개혁에 측면 지원을 아끼지 않던 국내 언론들도 완전히 돌아섰다. 영자지 자카르타 포스트와 인도네시안 옵서버는 그의 탄핵결정을 위한 국민협의회 소집을 국회에서 결의한 다음 날인 지난 5월31일 “권좌를 고집할 경우 대규모 유혈사태가 촉발할 수 있다”며 국가 장래를 위해 와히드가 자진 사임할 것을 촉구했으며 다른 유력 일간지들도 비슷한 논조의 사설을 내보냈다. 결국 지난 98년 5월 폭동을 주도해 32년간 철권통치를 휘두른 수하르토 정권을 붕괴시키고 와히드 정권 수립을 이끈 시민이 와히드를 버린 것이다. 일부 시민은 오히려 독재정권 시절을 그리워하는 분위기다. 인도네시아 국민의 70% 정도는 수하르토 시절의 치안질서를 선호한다는 최근 여론 조사가 보여주듯, 악화하는 치안불안과 경제난에 대한 민심의 분노는 이미 수위를 넘어섰다.

그렇다면 지난 99년 10월 대통령에 당선된 뒤 독재 잔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질 것이라는 기대를 모은 와히드가 집권 20개월 만에 위기에 몰린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그의 축재 의혹이 권력 누수의 ‘방아쇠’ 역할을 했지만, 결국 ‘정치’의 실패가 근본 이유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와히드에 대한 정적들의 도전은 이미 지난해 4월부터 시작되었다. 전체 국회의석 500석 가운데 51석에 지나지 않는 집권 국민각성당(PKB)의 수적 한계를 감안해 여러 정파에 장관직을 배분, ‘무지개내각’을 출범한 와히드가 국부 수카르노의 맏딸 메가와티 수카르노 푸트리 부통령이 이끄는 최대 정당 민주투쟁당(PDIP, 153석)과 수하르토 시절 집권한 제2당 골카르당(130석) 출신 장관 2명을 부패 혐의로 전격 해임하면서 이들 정당이 강력 반발한 것이다. 이들 정당은 와히드가 장관들의 구체적인 부패 혐의를 밝히지 못하자 두 건의 금융 스캔들에 와히드가 연루된 의혹을 문제삼고 나섰다. 소위 ‘블록게이트’와 ‘브루나이게이트’가 바로 그것. 블록게이트는 와히드의 전속 안마사 출신인 수원도라는 인물이 지난해 1월 조달청(블록) 차장에게 “대통령의 심부름으로 왔다. 독립운동이 격화하고 있는 아체 구호자금 조성에 필요하다”며 350억 루피아(당시 46억 원)를 받아 챙긴 사건이며, 브루나이게이트는 앞서의 조달청 공금횡령 연루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와히드가 “브루나이 국왕에게서 200만 달러를 지원 받았기 때문에 아체 구호자금 조성이 필요 없었다”고 밝히면서 불거졌다.

정치권은 기부금을 받았다면 국고에 환수하거나 세금을 납부해야 함에도 이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며 정치공세를 퍼부었다. 혹 떼려다 오히려 혹 하나 더 붙인 꼴이 된 셈. 이런 과정에서 대선 당시 와히드 당선에 결정적 기여를 한 아미엔 라이스 국민협의회 의장이 이끄는 국민수권당(PAN)과 통일개발당(PPP)을 비롯한 다른 5개 정파마저 민주투쟁당과 골카르 진영에 합세, 그를 협공했다.

“나 어떡해” … 축출 위기 맞은 와히드
궁지에 몰린 와히드는 지난해 8월 반대 진영과의 물밑 접촉을 통해 메가와티에게 일상적인 국정운영권을 넘겨주고 자신은 외교에만 전념하겠다고 약속해 정적들의 포위망을 무사히 뚫고 나오는 듯했다. ‘권력분점 카드’를 통해 메가와티를 반대 진영에서 이탈시켜 집권을 연장해 보겠다는 발상이었다. 하지만 뛰어난 와이드의 임기응변과 ‘깜짝쇼’는 불과 수개월 만에 ‘자충수’로 막을 내렸다.

민주투쟁당은 수개월이 지난 12월이 되기까지 당 총재 메가와티가 매주 한 차례씩 대통령궁에서 열리는 각료회의를 주재하는 것 외에는 고위 공직자 인사 및 국가정책 결정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된 데 반발해 한동안 내렸던 총구를 다시 와히드 쪽으로 겨냥하고 압박전술을 펴기 시작했다. 국회 차원의 부패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를 가동해 와히드가 두 건의 금융 스캔들에 연루된 것을 확인하고, 올 1월30일 총회에서 이를 공식 승인한 뒤 해명 요구서를 발부, 본격적인 탄핵절차 밟기에 들어간 것. 급격한 상황의 변화에도 와히드는 이상하리만큼 태연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던 메가와티를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사실 와히드와 메가와티는 동부 자바지방의 동향 출신인데다 수하르토 시절 한때 반정부 진영에서 활동한 전력 때문에 정·부통령에 당선된 뒤 친남매 이상의 우애를 과시했다. 그녀는 수요일마다 자신의 공관에 와히드를 초대해 직접 차린 아침식사를 함께 먹으며, 국정을 논의하거나 대통령의 잦은 해외 순방을 비난하는 국민적 여론이 비등할 때도 직접 그를 배웅하고 마중나감으로써 두 사람 사이의 친밀함을 과시해 왔다. 메가와티는 와히드가 가끔 공개석상에서 무안을 주거나 명예를 실추시키는 농담을 하더라도 일절 대응을 삼가는 등 특유의 ‘무거운 입’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메가와티의 분노는 지난 5월 28일 드디어 폭발했다. 그녀를 믿고 느긋하던 와히드도 사태가 심상찮음을 감지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이날 소집된 비상각료회의에서 와히드는 옆자리에 앉은 메가와티에게 또 다른 권력분점안을 제시했다가 거부당하자 일방적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국회를 해산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얼굴이 일그러진 메가와티는 이때부터 와히드 반대 진영의 선봉장 역할을 자임했고, 두 지도자의 관계는 오누이에서 앙숙관계로 바뀌었다. 지난 5월30일 열린 G15 개발도상국 정상회담 개막식장에서 와히드에게서 연설문 대독을 요구받은 메가와티는 이를 즉각 거부했으며, 6월2일에는 신임 각료 임명식에 불참해 두 사람 사이의 관계 개선이 더 이상 힘든 상황임을 보여줬다.

현지 언론은 와히드가 임기 도중 하차해야 할 운명을 맞은 원인을 그의 독단적인 성격과 정치적 실수에서 찾는다. 메가와티와의 결별은 단지 표면적 원인일 뿐이라는 것. 와히드는 집권 4개월 만에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공산주의를 허용할 것을 전격 발표함으로써 국민적 지지 기반을 완전히 잃었다. 국민의 90%가 공산주의를 철저히 배격하는 이슬람교도인 점을 무시한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이 이슬람의 형제국 팔레스타인을 공격한 데 대한 규탄 여론이 확산되는 와중에 이스라엘과 국교수립 추진 의사를 밝혀 이슬람 단체와 정치권의 즉각적인 반발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수마트라 북단 아체에서 독립 요구의 목소리가 커지자 참모들과 사전 논의도 거치지 않은 채 독립 여부를 묻는 투표 실시를 약속했다가 반대 여론이 급등하자 발언을 번복하는가 하면 국내 문제가 급격히 악화하는 상황에서도 잦은 해외 순방을 강행해 반(反)와히드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와히드는 중부 칼리만탄에서 원주민 다야크족이 이주민 마두라족 수백 명을 살해한 뒤 머리를 자르는 끔찍한 유혈사태가 발생한 중에도 전 세계 50여 개국을 순방했다.

국가 정상이 내치를 등한시한 채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는 사이 국민의 생활고는 가중되었고, 전국에 걸친 분리독립투쟁과 종교 및 종족분쟁은 확산되었다. 무법천지 상황이 펼쳐진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위기에 몰린 와히드는 경찰과 군 수뇌부를 전면 교체해 비상사태 선포를 준비하고, 검찰을 통한 정적(政敵) 사정을 실시해 ‘비상구’를 찾으려 하였으나 성공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메가와티와의 극적 타협이 이뤄지지 않는 한 오는 8월 1일로 예정된 국민협의회 특별총회에서 탄핵 결정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정계는 탄핵 이후의 정국을 더 걱정하고 있다. 이 또한 새로운 문제의 시작일 뿐이라는 것. 탄핵 이후 대통령직을 자동 승계할 메가와티가 측근의 도움 없이는 대중 연설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데다 최대 이슬람 단체 나들라툴 울라마(NU)의 대규모 과격시위가 계속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립 이슬람대학 출신의 안성근 박사는 “탄핵은 와히드의 정치적 기반인 4000만 명의 NU 회원을 자극, 통제 불능의 무정부상태를 야기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의 위기국면을 극복할 ‘묘수’를 찾지 못한다면 와히드의 정치적 운명은 8월 초순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와히드의 탄핵 여부에 관계없이 동남아 군도국가 인도네시아의 혼미정국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간동아 2001.06.14 288호 (p58~60)

  • < 황대일/ 연합뉴스 자카르타 특파원 > hadi@yonha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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