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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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가 엽기의 상징?

  • < 강헌/ 대중음악평론가 happyend@donga.com>

    입력2005-01-31 15: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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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이가 엽기의 상징?
    2001년 한국 대중문화를 이끌고 있는 화두는 단연 ‘엽기’ 또는 영화 ‘넘버 3’ 이후 일상화한 ‘쌈마이’ 취향의 키치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이제는 브라운관의 주역이 된 래퍼 싸이(psy)가 있다. 그와 그의 말과 행동은 연일 신기록을 갱신하는 변방의 뒷골목 이야기를 담은 영화 ‘친구’와 더불어 문화담론의 쌍끌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싸이코’에서 앞부분을 따온 이름부터 수상한 함의를 드러내는 이 랩 청년의 전략적 기조를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그는 거침없이 솔직하다. 중의적인 전술을 구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서태지와 다르고 비속어를 구사하긴 하지만 자신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조PD와 다르다. 그에게 모든 신비화는 위선으로 보인다. 음악인에게 운명과 같은 천형인 음악에 대해서도 스스로 음악에 별로 재능이 없는 것 같으며, 앨범 2장 내면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고 공공연히 얘기할 정도다.

    하지만 싸이의 본령은 결코 ‘엽기’가 아니다. 그는 단 한 번도 ‘엽기’를 주장하지 않았음에도 언론과 세상의 눈길이 너무나 쉽게 그를 엽기로 몰아간 사실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랩의 주절거리는 산문성이 집중적으로 구현되어 있는, 예상 밖으로 탄탄한 그의 데뷔앨범을 곰곰이 들어보면 랩에 대한 그의 진지하고도 순정적인 신뢰와 헌신을 발견할 수 있다.

    클럽 댄스뮤직의 장식물로 전락한 이 땅의 랩 풍토에 대해 그는 스무 트랙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 DJ.doc가 숱한 시행착오 끝에 도달한 랩 정신의 구현이 이 뒤죽박죽인 ‘싸나이’의 머리와 입에선 마치 누에가 실타래를 엮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 나온다.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새’는 언급하지 않더라도 조PD가 개입한 ‘I love sex’나 영화 ‘친구’의 싸이 버전인 ‘동거동락’ 또는 ‘쇼킹! 양가집 규수’에 이르기까지 세태를 호방하게 뒤집는 그의 도도한 변설은 중세시대 저잣거리의 능청스러운 이야기꾼을 연상케 한다.

    그의 세계를 알수록 그가 ‘엽기’의 대표주자가 되어야 할 근거가 점점 희박해지는 것이 적잖이 당혹스럽다. 그는 주류의 브라운관에 겹치기 출연을 불사하면서도 립싱크를 수치로 여기며 라이브를 고집했고, 아이돌 스타가 되기에는 조금 나온 배를 숨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도 않았다.



    그는 엽기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반짝쇼의 주재자가 아니라 자신의 모든 곡을 스스로 만들고 프로듀싱한 주목할 만한 싱어송 라이터이며 랩의 명예를 오랜 만에 되살린 훌륭한 래퍼의 한 명일 뿐이다.

    그런 그를 엽기의 상징으로 몰고 가는 지금 여기의 상황과 논리가 정말이지 엽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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