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6

2001.05.31

“경제만 뭉치나” … 이혼절차 통합한 유럽

EU 內 이혼 절차 간소화 법령 3월부터 시행 … ‘生活통합’ 첫번째 조치

  • < 이효숙/연세대 유럽정보문화센터 전문연구원 HYOSOOKL@chollian.net >

    입력2005-01-31 14: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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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만 뭉치나” … 이혼절차 통합한 유럽
    1970년대 유럽에서는 네 쌍의 부부 중 하나가 이혼을 했다. 지난 90년대 들어서는 세 커플 중 하나로 그 비율이 높아졌다. 한편 지난 3월 유럽연합(EU) 차원에서 본국이 아닌 회원국 어디에서든 이혼할 수 있도록 하는 법령이 시행에 들어가기도 했다. 과연 EU의 이번 법안은 이혼을 권장하기 위한 도구인가. 이 문제의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아이를 둘러싼 양육권 문제와 진정한 유럽통합의 의미라는 뒷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80년 덴마크-스웨덴-영국 등 3개국에서 이루어진 조사에 따르면 결혼한 커플 중 20% 이상이 결혼 후 10년 이내에 이혼했다. 이 수치는 1995년 이루어진 조사에서 30%로 늘어났다. 유럽의 ‘사거리’에 위치한다는 프랑스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 세 커플 중 한 커플이, 특히 파리에서는 두 커플 중 하나가 이혼한다는 통계도 발표된 바 있다. 물론 이는 법적으로 결혼한 경우만 따진 것이다. 젊은 층에는 결혼한 수보다 더 많은 ‘자유결합’(동거) 커플이 있지만 이들의 만남과 헤어짐은 통계에 포착되지 않는다.

    여성은 영국, 남성은 스웨덴이 유리

    “경제만 뭉치나” … 이혼절차 통합한 유럽
    이렇듯 이혼이 일상화하는 추세보다 다소 복잡한 이혼소송 절차가 유럽인들을 성가시게 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소송으로 인해 일상의 리듬이 깨지는 것에 짜증스러워하던 유럽 15개국들이 이혼 절차의 간소화에 관한 법령을 유럽연합 전체 차원에서 마련했다. 지난 99년에 입안하고 2001년 3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이 법령의 내용은 설사 국적이 다르더라도 거주지가 있는 국가에서 이혼소송 절차를 받을 수 있는 것을 포함하였다.

    부유한 사업가라면 위자료나 양육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스웨덴에 가서 이혼소송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만약 남편이 의무는 제대로 하지 않고 밖에서 허튼 짓이나 하고 다니는 것에 지긋지긋한 주부라면 여성 쪽에 훨씬 관대한 영국에 가서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을 고려할 만하다. 반면 이혼절차를 질질 끌고 싶다면 소송과 공무집행이 느리기로 소문난 아일랜드로 가야 할 테고. 이렇듯 유럽인들은 이제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이혼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를 선택해 소송을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조건은 있다. 소송을 제기하고자 하는 국가의 영토에 직장이나 주거지, 하다 못해 별장이라도 갖고 있어야 한다. 다른 나라에 별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혼할 경우 자신의 집이 있는 국가의 이혼 절차와 별장이 있는 국가의 이혼 절차를 비교하여 자신에게 더 유리한 쪽을 택할 것이다. 이도저도 없는 사람은 해당국가에서 6개월 이상 거주하는 우회로를 사용할 수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혼을 위해 프랑스를 찾는 영국인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 이혼소송비가 영국보다 훨씬 적게 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유럽연합의 이번 조치는 단순히 이런 ‘이기적인 취사선택’만을 위해 마련한 것일까. 거시적으로 볼 때 이 법령은 유럽인들의 가족문제를 포함한 생활 전반에서의 통합을 점진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다. 애초 경제통합에서 시작한 유럽연합이 정치-사회 등 다른 차원의 통합으로 발전하고자 하는 초석인 셈이다. 특히 이 법령의 가장 큰 이슈는 그동안 많은 문제를 일으킨 양육권 문제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는 다른 국적을 가진 부부가 상당히 많다. 서로 가깝게 이웃하고 있으며, 교류가 활발한 유럽국가들이다 보니 이는 아주 자연스런 현상이다. 프랑스 젊은이들은 주말이면 카풀을 통해 두세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벨기에나 네덜란드의 테크노 디스코테크에 가서 밤을 새우며 춤추고, 때로는 자기 나라에서 허용하지 않는 가벼운 마약의 맛을 보기도 한다. 또한 부활절 방학이나 여름 휴가철이 되면 파리의 거리에서는 프랑스어보다는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가 더 자주 들린다.

    에라스무스 같은 장학금 프로그램의 교환학생제도는 1~2년씩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이웃 나라에 체류할 기회를 준다. 이들은 체류기간 동안 이웃 나라 젊은이와 사랑에 빠지고, 개중에는 미래를 약속하기도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생활이 그들을 속이고, 마침내 이별을 결심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아이가 없는 경우는 문제가 비교적 간단하나, 아이가 있고 둘 중 하나가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갈 경우 문제는 복잡해진다.

    “경제만 뭉치나” … 이혼절차 통합한 유럽
    지난해 여름 프랑스의 크자비에 티넬이라는 젊은이는 법적 권리가 있음에도 딸을 볼 수 없는 황당한 경우를 당했다. 독일인 전 아내가 딸 둘을 억지로 뮌헨으로 데리고 간 뒤 전 남편에게 자식들을 만나게 해주지 않은 것. 이미 프랑스 법원에서 양육권을 일임받은 상태이에 있던 ‘불행한 아빠’ 티넬은 온갖 수단을 다해 아이들을 만나려 하다가 실패하자 급기야는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1980년 프랑스와 독일 간 인준한 헤이그 규약에 따르면 아이들은 즉각 티넬에게로 돌아가야 하지만, 티넬의 전 처가 거주하는 독일의 랜더 재판소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관련 단체들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150건 이상 계류중이고, 프랑스와 독일인 커플 사이에 태어난 약 2만 명 가량의 아이들이 국제법 규정과는 무관하게 독일에서 ‘갇혀 살고’ 있다.

    새로 시행에 들어간 EU 법령에 따르면 앞으로는 이 부분에 관한 한 EU 법이 회원국들의 자국 법보다 우위를 점하게 된다. EU 법령에서 다루지 않는 사안, 명시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자국의 법을 따르면 된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의 국내법도 이혼 절차를 보다 간소화하기 위한 개혁을 추진중이다. 이혼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갖가지 논란을 최소화하자는 것이 기본 취지. 이미 이혼이 일상화한 만큼 법적 절차 역시 보다 일상적인 일로 만들자는 셈이다.

    프랑스의 경우 그동안 법적으로 이혼은 세 가지로 분류되어 있었다. 상호 동의하에 이루어지는 이혼, 오랜 결별로 인한 이혼, 부부 중 한쪽의 과오로 인한 이혼 등이 그것이다. 프랑스 정부가 검토중인 개혁안은 이중 42.7%의 경우에 해당하는 ‘과오로 인한 이혼’을 폐지하자는 것을 주내용으로 한다. 다시 말해 양자가 모두 출석해 과오 여부를 따지는 복잡한 소송 과정 대신 부부 중 한 쪽만이라도 이혼을 신청하면 헤어질 수 있도록 하자는 ‘급진적인’ 대안이다.

    그러나 이렇듯 안팎으로 간소화하고 편리해진 이혼소송 절차는 가뜩이나 지나치게 많이 헤어지는 유럽의 커플들로 하여금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더욱 쉽게 포기하도록 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낳는다. 어쨌든 상대에게, 자신에게,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힘든 결혼생활의 유지보다 이혼이 보다 정직한 태도라고 생각하는 유럽인들의 자유분방함은 갈수록 가속화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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